‘골드미스’와 ‘칼린 신드롬’, 그리고 결혼은 없다
2011.03.23
‘칼린 신드롬’
‘칼린 신드롬’이 심상치 않습니다. 여기서 심상치 않다는 말은 과도하게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칼린은 합창단 지휘를 한차례 했을 뿐입니다. TV 프로그램에 나왔을 뿐이고 큰 호응을 얻었을 뿐입니다. 퍼포먼스나 도전 과정에 크게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 갖게 되는 도전-갈등-좌절-역전-감동의 드라마가 잘 드러났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유독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칼린은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고 당당히 오픈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스캔들까지 났습니다. 여타의 스캔들이, 감추려는 자신과 언론의 숨바꼭질 끝에 터트려지는 것과는 달리, 칼린은 역시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인 연애 감정을 당당히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캔들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가십거리가 하나 생겨나고 다음날 점심시간이나 커피 타임 때 즐겁게 “너 어제 봤어?” 할 수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당사자들한테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칼린은 이러한 스캔들에도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한차례의 이슈에 하루아침에 떠오른 스타처럼 CF도 찍고 여러 프로에 얼굴을 내밀고 ‘디스이즈 칼린’이라는 자신만의 공연까지 연다고 하는 군요. 누군가는 너무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린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템포를 조절하며 이미지를 유지해 갈 수도 있겠지만,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으라’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어쩌면 수많은 스타를 옆에서 보아왔을 그녀에게 지금의 행보는 작정한 듯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뭐 어때?’라는 당당함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 걸고 공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기회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저함이 어리석은 일일 수 있습니다.
칼린은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그녀는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합니다. 어릴 때부터 평생을 바쳐도 터득하기 어려운 ‘소리의 세계’에 늦깎이로 입문한 그녀는, 결국 명창 박동진 선생의 수제자가 됩니다. 박동진 선생은 그녀를 전수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국적 문제 때문에 그녀를 전수자로 삼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이미 명성이 자자한 음악감독입니다. 국내에서 아직 뮤지컬이 붐을 타기 이전부터 그녀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이력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남여고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첼로를 전공하고,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국악을 다시 공부하고, 대한민국 최고 명창의 수제자가 되었다가는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 뮤지컬계에 뛰어들어 국내 최초의 뮤지컬 음악감독이 되는 과정 하나하나에, 혼신의 노력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체를 가진 사람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1967년생으로 이제 40대 중반이 된 그녀가 뒤늦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이 거저 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녀가 살아온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와 조명이 사람들에게 좋은 도전과 큰 감명을 주길 기대합니다. 또한 그녀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의 여정을 통해, 결코 하루아침 스타들처럼 알량한 자신을 순식간에 소비한 채 사라져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압니다. 40여 년을 쌓아온 내공, 동서양을 넘나들며 차곡차곡 쌓아온 감각과 마인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칼린, ‘골드미스’의 영웅이 되다
그러나 ‘칼린 신드롬’에서 내가 진짜로 보고 싶은 이면은 그녀의 도전과 성취만이 아닙니다. ‘칼린’이 유독 조명 받는 이유는 무얼까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연을 열고,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까지 거론될 만큼, 사회와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이 부분에 현대 한국 사회의 주목해 보아야 할 이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칼린의 많은 이야기 중에 대중에게 가장 충격적이어야 할 부분은 무엇보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그녀가 대한민국 최고 명창의 수제자가 되었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고 심지어 충격적으로 여기는 부분은 그녀의 숨겨진 ‘남친’인 것 같습니다. 스캔들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와 댓글은 ‘칼린 신드롬’의 핵심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물론 ‘남녀 상열지사’가 재미있는 건 사실입니다. 네티즌들에 의해 상대로 지목된 남자배우와의 나이 차이나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주었던 친밀한 모습 등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대중들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소재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연령 차이에서 오는 호기심일까요?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칼린 신드롬’의 포지션이 ‘골드미스’의 이상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삶의 실체를 가진 40대의 당당한 싱글, 그리고 심지어는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연하 남과의 스캔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의 ‘골드미스’들이 열광하며, 동시에 시기 질투할 만한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습니다. 이제 매스컴이 ‘칼린’에 주목을 넘어, 열광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대한민국 사회의 소비의 핵심은 사실 ‘골드미스’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 낳고, 교육시키고, 집 사고하는 일에 얼마나 거액(?)이 들어가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기혼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한 달 한 달을 버텨가는 것조차 매우 버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택 대출이자, 자동차 할부금, 노후대비 자금 등으로 문화비 지출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한때 문화 소비의 핵심층이었던 20대는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지 오래고, 매일매일을 아르바이트에 쏟아부어도 등록금 대기에 벅찬 게 현실입니다. 이 마당에 대한민국에서 문화비, 여가비용 지출에 관대할 수 있는 계층은 좁히고 좁히다 보면 결혼하지 않은 ‘골드미스’들뿐입니다. 같은 미혼 싱글이라 할지라도 남성들은 여전히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진작에 ‘초식남’ 대열에 들어서지 못했다면, 이제까지 수입의 대부분을 결혼을 위한 집 장만에 쏟아부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기혼의 대열에 들어서기까지 멈출 수 없는 미련이자 밀린 숙제입니다. 반면에 ‘골드미스’들을 볼까요. 어쩌면 그들은 결혼을 이미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높아진 초혼 연령과 더불어 ‘골드미스’들의 선택의 기준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먹은 나이만큼이나 높아진 기준 때문에 선택의 폭은 갈수록 좁아진다는 말입니다.
일단 30대 중반을 넘긴 ‘골드미스’들은 연상의 미혼 남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위 시쳇말로 우리 정서에서 40이 넘도록 미혼인 남자의 하자(?) 여부는 의심받기 쉬운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괜찮은 수컷들은 다 채가고 씨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 자조 섞인 ‘골드미스’들의 푸념만이 아닙니다. 자연스레 연하 남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소수의 괜찮은 연하 남을 두고 벌여야 하는 20대의 팽팽한 절색들과의 경쟁이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이것저것 만만치 않은 현실을 목도한 ‘골드미스’들에게서 ‘결혼포기정서’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비 현장으로 뛰어듭니다. 이미 같은 연령대의 남성들보다 2~3년은 먼저 사회에 진출한 그녀들이기에 착실히 모아둔 혼수자금과 예금과 적금은 이제 자신을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40대의 직업 여성이라면 이미 어느 분야에서든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기 마련이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한계 수준까지 승진을 거듭했을 터입니다. 더 이상 도전하기도 마땅치 않고, 에너지를 쏟을 자녀도 가정도 없으니, 그녀들의 시선이 소비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어느새 막강한 소비계층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문화 산업은 ‘골드미스’들의 취향을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칼린 신드롬’의 이면에는, 이러한 ‘골드미스’들의 역할 모델로서의 ‘영웅의 등장’이란 측면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칼린은 알려진 바처럼 ‘골드미스’가 아니라 ‘돌아온 싱글’입니다. ‘이혼녀’라는 수식이 우리 사회에서 주홍글씨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연하 남과의 스캔들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녀를 보며 수많은 ‘골드미스’들이 어떻게 열광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삶이 궁금하고 자신들 또한 그녀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매스컴은 이미 그러한 문화권력층인 ‘골드미스’들의 정서를 간파하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영웅들의 스타덤보다 더욱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칼린 신드롬’이 우리 사회의 ‘골드미스’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기대합니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스스로 잠재적 루저처럼 생각하는 ‘골드미스’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제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혼녀’들에게도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도 원하면 스무 살 연하랑도 연애할 수 있어. 그래도 돼! 사람들의 눈치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자신의 삶으로 표현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스캔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려가 되는 것은 그녀들의 영웅을 그렇게 높이높이 띄워 놓고는 한순간에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일이 생길까 하는 노파심입니다. 여론이란 그렇지 않습니까? 떴나 싶으면 어느 날 한순간에 내치는 일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많이, 보아왔습니까? 추앙하고 떠받들던 영웅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것은 더더욱 흥분되는 일입니다. 여론이란 그런 위험한 롤러코스터 놀이를 주무기로 하는 집단이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의 ‘칼린 신드롬’에 조심스러운 우려를 나타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칼린은 자신의 삶을 잘 추슬러 갈 것입니다. 이미 연하 남과의 스캔들로 한번 스트레이트를 맞았음에도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입니다. 살아온 삶의 내공으로 앞으로의 일들도 계속, 잘, 헤쳐나가겠지만, 그런 일들이 애써 용기를 얻은 ‘골드미스’들의 각오에 흠집을 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골드미스’, 결혼은 없다 그러나 꿈이 있다
우리 사회의 유일한 잉여자본은 ‘골드미스’들에게 집중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88만원 세대의 20대, 교육과 생계유지에 허덕이는 기혼의 30~40대, 그리고 이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 어느 계층도 자신만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기가 녹록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다만, 폭풍의 눈처럼 ‘골드미스’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자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성 등으로 인한 비정규직 양산의 후폭풍으로 신규 ‘골드미스’들은 ‘골드미스’가 아닌 ‘푸어미스(poor miss)’가 될 공산이 큽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30-40대 ‘골드미스’들은 당분간 한국 사회에서 유일한 여유자금 확보 계층의 위치를 유지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에게 한국의 문화산업, 여가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 주변의 ‘골드미스’들은 더 이상 결혼에 미련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별로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나, 그녀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실패한 결혼생활의 자극적인 결과들, 미친 척 감행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육아와 생존의 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철이 들어버린(?) 이성관에 합당한 상대를 찾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워진 처지들이 그녀들에게 ‘결혼’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포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향을 상실한 ‘골드미스’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에는 히스테리가 쌓이게 됩니다. 그녀들이 외로움을 달래느라 마구 먹어대고, 마구 사들이면 이 땅의 환경파괴가 가속화될지도 모릅니다. 혼자 살아내느라 마음도 지쳤을 테고, 기분도 다운되었을 그녀들에게 ‘칼린 신드롬’은 한줄기 ‘구원의 빛’ 같이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들 ‘골드미스’들이 자신들의 잉여자본을 마음을 달래기 위한 소비에만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쏟아붓는 소비력을 자신의 삶과 미래를 위한 재투자로 전환해 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도 나오고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회의 리더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나 육아로 소진되지 않는 에너지를 모아 이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버리고 당당하게 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습니다. 그들 중에 여성 정치인, 대통령도 나오고, 테레사 수녀 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도 나오고,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멋진 활동가들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허한 것들로 채우지 않고,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감성으로 따뜻하게 품어 안는 ‘잉태하지 않았으나 모두를 잉태한’ 대지의 어머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들이 변하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그녀들이 이런저런 핑계와 미련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원래 살고자 했던 그녀들의 어린 시절 꿈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롭게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골드미스들의 자아 찾기가 일어나고 그녀들이 이룩한 열정과 도전의 결과물들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칼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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