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아름답고 슬픈 은메달

2014.02.24

Send in the clowns..

만인의 사랑을 받던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한때 그녀를 매우 사랑했던,
그러나 한때 그녀가 거절했던,
그를 만나고 다시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녀는 그에게 재결합을 원하지만
그에겐 이미 나이 어린 아내가 있습니다.
비록 자신을 아빠처럼 여겨 답답하긴 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감정이 한때의 추억임을
상기하며 그녀의 청을 거절하고 돌아갑니다.

무안해진 그녀
거절당하고 가슴 아픈 그녀를
대신하는 건
무대 위의 어릿광대..
어릿광대는 그녀를 대신해 
관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아디오스 노니노..

 

Send in the crowns..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녀의 꿈은 딸이 여왕이 되는 것입니다.
착한 딸은 엄마의 꿈을 이루려
자신의 유년시절을 송두리째 포기하고
기술을 연마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관을 쟁취하고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은퇴..
이제 소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면 어머니도 딸도 
행복했을 텐데
딸은 두 번째 왕관에 도전하기를 
요구받습니다. 

이미 여왕인 그녀에게 
두 번째 도전은 
잘해야 본전인
탐탁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션을 거두어주지 않습니다.

도전의 날이 가까워 오고
그녀는 두 번째 도전이 성공하기 어려움을 직관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운명의 여신이 자신에게 성공을 약속하고 있지 않음을
느껴가고 있는 소녀는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
마지막 무대를 준비해 갑니다.

두려울 수도 있지만 
이미 결핍을 채워버린 소녀는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합니다.

여왕의 상징인 파란색드레스는
운명의 여신에게 선택되지 못할
이번 무대에서 그녀의 복장이 될 수 없습니다.

소녀는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어릿광대의 노란 드레스를 입고는 
결과에 당황해할 어머니를
대신해 차분히 무대를 감당합니다.

‘어머니, 
이번 왕관은 저의 것이 아니에요
당황스럽겠지만 
무안하고 아쉬운 어머니를 대신해
어릿광대 짓은 제가 대신할게요.’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자신을 위해 죽은 이처럼 뒤로 물러나
응원해 주던 아버지를 그리며
마지막 세레나데를 바칩니다.

이제 어머니의 꼭두각시를 벗고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블랙스완이 되어
아름다웠던 지난 추억들에
안녕을 고합니다.

아디오스 노니노..

 

김연아의 아름답고 슬픈 은메달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운명의 여신은 김연아선수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은퇴를 번복하고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게 된 그녀는 아마도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어려울 것이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치열한 연습과 힘든 훈련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그녀가 다시 지옥 같은 시간을 살아내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아마 그녀의 어머니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자신은 결핍을 다 채우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부모의 소망 앞에 거절하지 못한 채 무거운 짐을 이고 거친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들은 자녀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아닌 엄마의 삶을 연기하다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그녀의 진짜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피겨는 아마도 꿈을 넘어선 운명이었겠지요. 피겨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피겨 여왕이라는 운명의 산을 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강한 의지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입니다. 태도가 좋지 않다고 벌로 아이스링크 100바퀴를 돌리는 어머니와 그것을 해내는 딸 간의 자존심 그리고 주위의 어떤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강한 멘탈의 어머니와 딸은 마침내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왕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요? 부와 명성.. 피겨의 여왕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과 돈연아라는 비아냥을 받을 만큼 획득한 부와 슈퍼스타로서의 보장된 미래.. 무엇이 부족해 잘해야 본전인 올림픽 출전을 결정해야 했나요?

“너무 힘이 들었는데.. 어떻게 시간들이 지나갔는지 모르겠고.. 이제 선수 김연아가 아닌.. 인간 김연아니까..” 

은퇴를 결정한 그녀는 아마도 이제야 비로소 자유의 몸, 20대 아리따운 꽃처녀로서의 삶을 만끽하고자 꿈에 부풀었을지도 모릅니다. 빼어난 미모와 황금비율의 몸매, 수준급의 노래 솜씨에 은반에서의 감동적인 연기 실력이라면 은막 위의 슈퍼스타는 원하기만 한다며 당장 실현될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일반이으로 돌아가든, 연예가로 뛰어들어 브라운관 스타로 살아가든 모두가 그녀에게는 그저 선택사항이었을 텐데 왜 하필 그녀는 은퇴를 번복했던 것일까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밴쿠버 올림픽 때와 달리 딱히 정해 놓은 목표가 없었다는 거였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죠. 밴쿠버 올림픽 땐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금메달이 목표였어요. 그 이후에는 간절함이 밴쿠버 올림픽 때보다 덜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훈련 때 동기부여가 인 되어 힘들었어요.”
 
판정이야 어찌 됐든 여왕은 운명의 여신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예감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여왕의 예복인 파란 드레스를 거부하고 마지막 무대를 고별무대로 채워갑니다. 누구보다 아쉬워할 어머니를 위해 어릿광대가 되어 대신 위로하고 당황스러운 결과를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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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여왕의 아름다운 대관식

오랜시간 뒤에서 드러나지않게 자신을 지지해준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마지막 세레나데를 마치고는 성숙한 여왕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무대를 내려서는 그녀를 울컥하게 만든 건 그녀를 발굴했건 류종현코치입니다.

“다 끝났다” 

그녀를 안으며 유코치가 건넨 말은 수고했다 잘했다가 아닌 ‘다 끝났다’ 였습니다.

그녀에게 운명의 키를 넘긴 장본인으로 지난 18년 동안 그녀의 여정을 바라보며 가슴 저몄던 순간들이 얼마였겠습니까. 성숙한 여왕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피겨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드리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세월을 함께 살아온 류 코치의 모든 것을 담은 말 한마디에 의연한 채 버텨내고 있던 그녀도 가슴 한구석을 울컷 무너뜨려 냅니다.

여왕의 긴 드라마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삶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여전히 우리는 그녀의 지난 도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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