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넌 처음부터 흑조였던 거야

2011.03.06

 

 

니나..

그래 넌 처음부터 검은 백조였어.
돋아나는 날개를 무슨 수로 막겠니?
살을 뚫고 돋아 나오는
검은 깃털들을 무슨 수로 막겠어?

엄마 때문에..
지겹도록 들은 엄마의 넋두리 때문에
너는 백조인척해야 했던 거야.

검은 너를 숨기고
백조로 살아가는 것이
엄마를 위하는 일이 아니야.
너를 찾아야 해.
너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거야.

엄마는.. 엄마는..
그래, 너의 말처럼
비겁했지.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스스로 삼류 발레리나의 삶을 멈추었지.
그리고는 너를 핑계 삼아
나약한 자신을 꽁꽁 숨겨두었지.

너를 사랑해서
너를 위해
발레를 포기한 게 아니야.
주인공이 될 자신이 없었던 거야.
최고가 될 자신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너를 낳은 거야.
네 뒤로 숨은 거야.
그리고는 네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덮어씌워 버렸지.

니나..
너는 꼭두각시가 아니야.
너는 욕망이 가득하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유할 수 있는
검은 새 이지.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면
네가 태어난 그대로 살게 했어야지.
너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면
검은 네가 검도록
놓아주었어야 해.
그런데 그러면,
그러면 너는
날아가 버리겠지.
나약한 엄마의 곁을
떠나 훨훨 날아가 버렸겠지.
꿈에서 도망 친 엄마가
너마저 떠나가면..
그것이 두려웠겠지.
그래서 단단히 곁에 붙들어 두고
새장 속 새처럼
이쁘다 이쁘다 하며
가둬두어 버렸지.

니나..
너를 구해 줄
백마 탄 왕자님 따위는 없는 거야.
너의 왕자님은 쟁취하는 거야.
너를 본 적도
너를 알지도 못하는 왕자님이
어느 날 백마 타고 나타날 거라는 환상은
아이들에 기대어 사는
나약한 엄마들이 지어낸 거짓말이지.

그런 일은 없지.
니나를 대마왕의 손길에서 구해 줄
폴은 만화 속에나 존재하지.
니나는 스스로를 구원해야 해.
왜냐면 너는 검은 백조니까.
너는 왕자를 유혹할 만큼
아름답고 빼어난 검은 새이니까.

너는 청순가련의 백조들처럼
왕자님의 동정을 살 이유가 없지.
너는 스스로 얼마든지
왕자를 유혹할 수 있어.
현실 속 나약한 백조들은 결국
신세를 한탄하며
절벽에서 떨어질 일만 남는 거야.
냐약한 백조들은 혼자 죽는 일이 없지.
가족들을 비탄에 빠져 죽게 하고,
친구들을 슬픔에 빠져 죽게 하고,
도전을 앞둔 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선사하지.

니나..
죽은 건 네가 아니라
백조인 척하던 네 속의 너의 엄마야.
그래 너는 검은 백조로 다시 태어났지.
이제까지의 너는 없는 거야.

어때, 온통 검은빛으로 강력하게 휘감은
너의 날개와 깃털이 자랑스럽지 않니?
원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너의 찬란한 능력이 감탄스럽지 않니?
너의 백조는
너를 비련의 주인공으로만 묶어두려던
너의 백조는
비명과 함께 절벽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얻었어.

엄마를 가여워하지 말려무나.
누구도 자신에게서 도망쳐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거야.
스스로 포기한 꿈을
아이에게 강요한 채
잔인한 양육을 거듭해 가는 엄마들은
더 이상 엄마가 아니지.
그들은 저주를 건 흑마법사들일 뿐이지.

너는 알고 있니?
엄마도 흑조였다는 걸
엄마도 자신을 백조 속에 감추어 두었던
흑조였다는 걸 말이야.
백조가 흑조를 낳을 수는 없는 거야.
흑조는 흑조를 낳을 뿐이지.
그러니 네가 흑조인 것을 다시 숨긴다면
너의 미래의 아이도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
저주에 걸린 인생을 대물림하면서 말이야.

니나..
엄마의 감옥에서 탈출한 네가
자랑스러워.
슬픈 백조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검은 날개를 번뜩이며
날아오를 너의 모습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울지..
얼마나 찬란하게 돋보일지..

너의 무대는 바로 그곳이야.
슬프도록 하얗기만 한 딸들의 무대를
온통 검은 너의 깃털로
강렬하게 채워 보렴.

부러워 질투하는 슬픈 백조들에게
검은 깃털 하나 뽑아
멋들어진 너의 사인을 날려주렴.

‘억울하면 너도 흑조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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