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곳, 그 선택
[시력검사 時歷檢査] Dec 20. 2020 l M.멀린
10년 전 그는 양보를 말했다. 그것은 양보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욕망이었음을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1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10년 전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10년 전 그때 그가 출마를 선언했더라면 이 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의 준비되지 않은 욕망을 받아 안은 또 다른 그는 치욕스런 종말을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 준비되지 않은 그가 열망하던 대통령은 누가 되었을까? 그 사이 대통령이 된, 18년을 준비했다던 그는 탄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의 10년 만의 출마 선언에 수많은 If가 떠오르지만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듯 오늘 마신 공기가 어제의 공기가 아니듯, 오늘의 선택이 10년 전의 선택과 자리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노력만 탓한다. 노력이 부족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 말하면서 선택의 책임에 대해서는 최대한 회피하려 든다. 그것은 너무나 가볍기 때문이다. 실패의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만 남기 때문이다. 선택의 책임을 물으면 시스템의 오류, 구조적 모순, 권력의 횡포로 도망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믿지 않으며 누군가의 뒤로 숨는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자신을 세뇌시키며 최대한 선택으로부터 벗어나려 든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회피하는 사람들은 고작 ‘누가 이거 시켰어?’라는 작은 책망조차 두렵다. 그래서 대신 내주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다. 타인의 선택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것으로 양산된 피해를 선뜻 뒤집어쓴 채, 어서 빨리 피해자 모드로 진입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는 저승에서 오늘의 그를 원망할까? 10년 전 그의 양보를 받고는 ‘이런 것이라면 나는 받을 수 없다. 나는 바닥으로부터 시작하겠다.’고 그 양보를 거절했더라면 그는 어떤 역사의 인물로 남게 되었을까? 선택하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이가 선택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런 거라면 오늘의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난 10년 동안 철저하게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욕이든, 헛된 야망이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큼은 정확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가 다시 찾아와 줄 것 같지는 않다.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기회였다. 그러나 10년 전 그에게 불어온 바람은 다음을 기약할 만큼 인내심이 길지 않았다. 기회란 놈의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다고 하니 그는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민머리만 연신 훑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 그는 선택해야 했다. 그는 양보를 선택했고 계속 양보만 했다. 선택의 결과로서는 백점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것은 양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10년 전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재보궐이라는, 기가 막히게 일치하는 똑같은 상황. 그러나 지지율은 그가 10년 전 양보했던 또 다른 그의 지지율만큼 떨어졌다. 실력으로 돌파하겠다면 박수를 쳐주마. 하지만 10년 전의 기회를 바란다면, ‘이봐! 여긴 다른 우주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두들 노력과 실력을 탓하지 말고 선택을 탓해라. 돈이 없어 저점매수를 하지 못한 게 아니다. 배짱이 없어 고점매도를 하지 못한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선택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모두가 산 뒤에 따라 샀을 뿐이고 모두가 판 뒤에 따라 팔았을 뿐이다. 선택의 결과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이 참혹한 베팅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미안하지만 노력과 실력은 아무 필요가 없다. 선택이 전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용기 만이 필요할 뿐이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아니라 후회해도 좋을 선택을 하란 말이다. 비겁한 변명장인들, 상처핥기충들, 피해자 코스프레 따라쟁이들은 모두 고점매수 저점매도 하시길, 모두 모두 철수처럼 고점양보, 저점출마 하시길, 마법사는 신나게 그대들이 흘린 기회를 줍줍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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