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과 현실성의 경계에서

2019.03.21 

 

사람들은 자신이 합리적이길 바랍니다. 합리성은 마침 종교와 도덕처럼 선택 기준의 맨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합리적입니까? 조선시대의 합리성과 선사시대의 합리성은 같습니까? 현대의 합리성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야 합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시대마다 달라지는 합리성은 이미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번 기준이 달라지면, 오늘은 왼쪽 첫 번째 줄 맨 앞사람이 기준이고, 내일은 갑자기 헤쳐모여 하며 맨 뒷 열 오른쪽 사람이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아리송해지는 것입니다.

합리성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적입니다. 개인이 가진 세계관과 철학, 신념에 따라 그것이 합한지, 합하지 않은지를 견주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합리성과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성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합리성을 상대에게 강요합니다. 그것이 매우 현실적이라며 충고합니다. 그리면 우리는 다수의 합리성 앞에 주눅이 들고, 자신의 합리성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슬쩍 뒤로 밀어놓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현실이지, 합리성의 세계가 아닙니다. 네 물론 그렇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합리성에 따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 이념과 신념의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합리성을 따지려면 그것이 현실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에 입각한 합리성. 그것을 알려면 우리는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매우 경직되어 마치 공무원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렇습니까? 어느 날 빌딩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며, 갑자기 배가 가라앉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있고, 생각 없이 떠든 말들이 올가미가 되어 어느 날 자신을 포승줄에 묶어버리는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실은 어떠한 영화보다도 드라마틱 하고 예측불가한 일의 연속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내일이 오늘 같으리라는 보장이 불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이라는 말을 매우 고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바닥에 박혀버린 철길처럼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의 합리성과 현실성의 경계를 이렇게 무너뜨립니다.

그게 현실적이니?

라고 묻는 누구도, 내일 당장 지나가던 도로에 전신주가 덮쳐서 생을 마감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갈 수 없던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합격증을 받아들고는 기쁜 마음에 목욕탕에 갔다가 불이 나서, 누군가는 죽고 대신 누군가는 추가 합격을 하게 되는 일이 매일, 매년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너의 인생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따져봅시다.

우리는 인생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한치의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며, 학창시절과 젊음 그리고 성장의 과정을 견뎌 왔지만, 돌아보면 인생은 매우 변화무쌍하며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 시한폭탄 같았음을 먼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상대로 되었더라면, 열심히 산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모두 재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늘 성실하게 빚 없이 살아온 우리의 선배들은 적어도 그럴듯한 집 한 채와 안락한 노후준비 정도는 모두 안전하게 끝마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합리성과 현실성의 노예로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며 차곡차곡 인생을 밟아온 그대는.. 뭡니까? 왜 그것밖에 안됐습니까? 여기서 뭐하고 있습니까? 마법사에게 쿠사리나 들으며..

재앙도 길따라 옵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생이 은행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인 삶의 대명사는 은행원이었습니다. 은행이 망할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그간 많은 은행이 망했습니다. 주택은행, 상업은행, 한빛은행, 동화은행, 서울은행, 조흥은행.. 기억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은행은 점포를 닫고 무인화 은행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은행원이 필요가 없습니다. 은행원 정년퇴직을 고정된 삶으로 받아들인 누군가는 미뤄두었던 엄청난 변화를 뒤늦게 감당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 전혀 계획이 없던 치킨집을 하게 되는 겁니다. 퇴직금 탈탈 털어, 부모님 말씀 듣느라 10대 시절에도 안 타던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다녀야 하는 겁니다. 그런 겁니다. 삶은 잔인하고.. 매우,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입니다. 변화하는 삶.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삶..

부모님 말씀 안 들어서 스쿠터 타게 되는 걸까요?
부모님 말씀 잘 들어서 스쿠터 타게 되는 걸까요?
스쿠터는 10대에 떼야 하는데..
 

이런 삶에 합리성이란, 결국 직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하는 삶에 대응할 수 있는 합리성은 지극히 직관적이어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처음 가는 길입니다.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삶입니다. 어떤 부모도 부모를 연습한 적 없고 어떤 청춘도 청춘을 두 번 살아보지 못한 것처럼, 어떤 어른도 어른을 두 번 살아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처음 가보는 길을 딱 한 번씩만 가고 그러다 죽는 겁니다. 그러니 정해진 길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처음 가보는 길에 정해진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에 걸어간 사람이 없는데 길이 어디에 나겠습니까? 삶의 길이란 바람 부는 모래사막을 걷는 것처럼, 잔잔한 수면 위를 걷는 것처럼 흔적이 남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

너 혼자 가는 겁니다. 남의 길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자, 그대의 인생 앞에 많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대의 주변인들은 인생은 고정되었다 말하며 현실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채근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본인들조차 변화하는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며 현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에게 고정된 삶을 허락하지 않으며 일체의 타협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어이없이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자세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을 거.. 이래 죽느니’ 하는 선택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어제도 죽어간, 교통사고 사망자의 삶이 내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합리성과 현실성의 경계 따위는 없습니다.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란 전제하에, 현실은 매우 합리적이며 인생은 변화무쌍한 현실에 기반할 때 가장 합리적입니다. 합리성과 현실성의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합리적인지 못한 사람입니다. 합리성과 현실성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직관뿐입니다. 그대의 마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의 직관이 모든 키를 쥐고 있습니다. 그대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그린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너무도 합리적이어서, 남들의 꼬리를 따라가기 바쁩니다. 절벽으로 내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꼬리잡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직관의 마법사는 직관으로 그대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닥치고 니 맘대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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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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