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 어른이 놀면 직업이 된다

2018.04.16 

 

오늘 마지막 년차의 정기검진을 다녀왔습니다. 마법사는 4년 전, 암 수술을 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죽는 암 아니랍니다. 착한 암이라는 갑상선암.. 마법사가 뭣 땀시 암에 걸렸을까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월급 받아서 인생을 꾸려 갈 수 없다는 걸, 점점 더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법사는 상식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존 질서에 저항했건만.. 어찌나 늪 같던지, 어디로 가도 그리로 통하게 되어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끌려들어갔습니다. 물론 직관이 오기도 했지만.. 중첩된 늪을 돌아 가고, 피해 가고 있었는데.. 두물머리에서 만나버린 늪을 통과하지 않고는 인생의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결과는 명약관화하였습니다. 알면서도 빨려 들어갈 때의 그 섬뜩함이란.. 결국 울화통은 터져 버렸고, 터진 자리에 커다란 암덩어리가 자리하였습니다. 열어보니 20여 개의 전이가 있었고.. 간은 굳어가고 있었고.. 음..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죽어는 가고 있었더군요. 브라질의 축구선수 호나우두를 은퇴시킨, 황비홍 이연걸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그 병은 참으로 울화통 터지는 병입니다. 다른 암은 동정이라도 받을 텐데 말이죠.

암이라니까?!

뭐.. 그게 한두해만에 생긴 덩어리이겠습니까. 대략 따져보니 10여 년에 걸쳐 자라 온 덩어리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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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매매였어

목을 따였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니까요. 갑상선을 통째로 들어내버렸습니다. 열심히 돈을 번 게 아니었습니다. 성실히 장기를 팔았던 거였습니다. 저항에 실패한 자죽이 주홍글씨처럼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놀면 뭐 합니까? 돈이라도 벌어야지.. 아닙니다. 그냥 노십시오. 번 돈 다 까먹습니다. 노는 게 남는 겁니다. 이 시대의 병은 아무리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고, 심지어 암 테크로 오히려 돈을 번다고 해도, 기회비용과 심리적 충격, 멘탈 회복 비용 등을 따지면, 밑져도 한참 밑지는 거래입니다. 차라리 악마한테 영혼을 팔지..

어떤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놀고먹으며 건강을 잃지 않았다면, 큰 성공을 하지는 못했겠지만.. 매일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건강을 다친 사람보다, 적어도 몸은 건졌습니다. 한 번 축이 난 몸은, 빨래 돌렸더니 줄어버린 싸구려 옷처럼.. 목이 주욱 늘어난 티셔츠처럼.. 보풀이 나가기 시작한 니트처럼.. 활력을 잃고 시들해집니다. 정신도, 감정도, 세우면 고꾸라지는 옥수수자루 마냥 고개를 들었다 숙이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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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놀면

어른이 본격적으로 놀면 그건 틀림없이 일거리가 돼. 이 법칙, 알고 있어?
_ 다카하시 아유무, [어드벤처 라이프]

제가 애정하는 작가 다카하시 아유무의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15년 전, 영종도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유모차를 끌며 느그적느그적 살아가던 그때에.. 그의 말을 읽고 전투적으로 놀았는데..

뭘 하겠다고 그 섬을 뛰쳐나왔는지.. 덕분에 마법사가 되긴 했으나.. 바꾼 시간과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은 다시 받아든 1년 치 약 봉투를 들고, 마법사의 X 와이프와 한강에 앉아 그때를 회상합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기 싫은 일은 최대한 하지 않은 우리도 이런데.. 마법사도 이 모양인데.. 어떻게들 사십니까?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십니까? 놀고들 계십니까? 마법사는 팔자가 그 모양이어서 이렇습니까? 팔자 좋으십니까? 여러분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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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버는 거야

놉시다. 그냥 놉시다. 그게 남는 겁니다. 마법사도 놀았습니다. 놀 만큼 놀았습니다. 팔자에 열받아, 버킷리스트 주욱 써놓고, 마구 지워나갔습니다. 억지로 끼워 붙이지 않는 이상, 더 쓸게 없을 정도로 지워 나갔습니다. (뭐 그렇다고 타워팰리스, 페라리.. 이런 게 들어 있던 건 아닙니다.)

하면 되는 것들, 경험하면 되는 것들은 모조리 지워나갔습니다. 세상을 마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안 굶어죽었습니다. 굶어죽을까 봐 빨려 들어간 늪에서는, 오히려 울화통이 터지고, 암덩어리만 키웠는데.. 죽자고 덤벼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났더니, 오히려 멀쩡합니다.

놀라고 펼쳐놓은 에덴동산에서, 일하는 건 반칙입니다. 사람들은 여기를 지옥으로 여기고, 수고하여야 먹고 산다고 하지만.. 지옥에서 계속 사는 게 행복합니까? 노는 이에게는 천국이요, 하기 싫은 일 하는 이에게는 지옥입니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겁니다. 대신 놀아 줄 것도 아니면서, 뭘 열심히 하라는 건지.. 아프면 지옥이지 왜 청춘입니까?

아십니까? 대한민국의 20대가 제일 불행한 것 같지만, 통계에 의하면 20대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습니다. 정작 그들을 여전히 부양하고 있는 그들의 부모 세대는 행복지수가 가장 낮습니다.

▲ [현대경제연구원] 2016년 4분기 경제행복지수조사

역시 노는 게 남는 겁니다. 공무원 시험, 취직 준비를 핑계로,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게 남는 겁니다. 어른들은 열심히 모은 돈, 열심히 지키고 있지만.. 정작 세월아 네월아 얹혀살며, 부모 용돈 타쓰는 20대는 햄도 안 볶으면서 행복합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행복합니다. 잘 살고 있다 이 말입니다. 열심히 살다 40~50대 과로사, 고독사 하느니, 맘 편하게 노는 게 제일입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랄랄라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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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았어야 했어..

뽀로로는 진리입니다. 이 노래 듣고 자란 아이들이 모두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태원 바닥에서 좀 놀아봤다는 춤꾼이, 수천억 대 부자가 되고.. 침 좀 뱉어 봤다는, 욕 좀 씨부렸다는 동네 양아치들이, 갑자기 랩퍼가 되서 나타나, 외제차를 몇 대씩 끌고 다니고.. 셧다운제까지 해가며 막아대는 데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며 게임을 멈추지 않았던 겜돌이들이, 일 년에 연봉을 50억씩 벌어대는 데..

그걸 못하게 하고, 막아서고, 엄포를 놓고 ‘가만히 있어라’, ‘시키는 대로 해라’하며 물속에 처박아 버리고는, 구해주지도 않는 어른들을 기만하는 방법은.. 복수하는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공무원 하겠다고, 공부하는 척하며 시간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는 일입니다.

놀았다면.. 그 아이들이 모두 놀았다면.. 퇴학이라도 당했다면.. 어차피 취직도 못할 거면서.. 결혼도 못할 거면서.. 연애도 못할 거면서.. 놀아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영종도에 처박혀서 더 놀았어야 했습니다. 때론 휴지 살 돈이 없어 공중화장실 휴지를 걷어다 쓰고, 아이 사탕 사줄 동전이 없어 쇼파 밑, 단스 밑을 휘휘 뒤적여야 했지만..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 밥 먹이고, 기저귀 갈고, 유모차에 태워, 느그적느그적 공원을 산책하다, 바닷가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간 커피 한 모금을 하던 그 시간을.. 더 누려야 했습니다. 지루하다 못해 쓰기 시작한 글.. [레고생각]..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그림 없는 그림책].. 15년이 지난 지금도 결국 그걸 하고 있는데.. 암 걸리고, 인생이 만신창이가 되어, 여전히 그걸 하고 있는데.. 그때에 그냥 더 놀았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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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놀았으면 좋겠네.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어른이 놀면 직업이 돼..

저는 놀 겁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놀지 못한 몫까지 대신 놀 겁니다. 늙어 꼬부라져 뒤질 때까지 놀 겁니다. 그게 열심히 살다 암 걸린 마법사가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는 방식입니다. 열심히 살라는 세상에 뻑Q를 날리며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돌진할 겁니다.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열심히 일하는 너랑.. 졸라게 놀기만 하는 이 마법사랑..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중년 과로사나
백수 과로사나
氏發, 죽는 건 똑같자나..

그래서 이 글은 [뻘글]입니다.
뻘에 빨려 들어가 암 걸려 나온 마법사의 [뻘글]입니다.

덧, 한마디만 더 합시다.

하고 싶은 거 해라, 이것들아!
장기 팔아먹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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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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