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보다 질리는 게 낫다

2018.03.07 

중독은 멈출 수가 없고, 질리는 건 이미 멈췄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중독은 브레이크가 내 손에 없습니다. 질리는 건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걸려 버립니다.

중독된 사람은 실은 다른 다리를 긁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자꾸 긁는 겁니다. 그러다 상처가 나고, 피가 나고, 곪고 썩어들어 가는 겁니다. 가려운 그 다리를 긁어야 하는데 다른 다리를 긁고 있으니 답이 없습니다.

 

고통중독

고통으로 고통을 덮는 일.. 그게 중독입니다. 직면하지 않고 외면한 채 잊으려는 행위는 다 중독입니다. 마약.. 약물.. 뭐 이런 것만 중독이 아니라, 일도, 육아도, 애정도, 관계도, 성공도 모두 중독입니다. 그래서 모든 중독은 고통중독입니다.

게임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겁니다. 게임을 진지하게 하면 그건 질립니다. 세상 모든 건 질리게 마련입니다. 효용의 한계가 있고 관심의 절벽이 있습니다. 물론 죽을 때까지 해도 안 질리는 게 있습니다. 그건 재능이고 선호입니다. 그건 오히려 키워줘야 합니다. 그 분야에 탁월한 관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중독은 도망 다니고 있는 겁니다. 맞닥뜨리기가 두려운 현실을 도피하여 어디론가 도망 다니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은 게임으로.. 아빠들은 알콜로.. 엄마들은 쇼핑으로.. 지옥 같은 현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중입니다.

원하는 그것. 바로 그것을 하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질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참을 수 없는 것들, 견딜 수 없는 것들은 차라리 질릴 때까지 해버립니다. 지쳐서 다시는 보기 싫을 때까지 해버리고, 먹어버리고, 사버립니다. 원하는 그걸, 바로 그걸 그렇게 해야, 원하지 않는 것들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로 그것을 억압하고 다른 것들로 대체하려고 할 때, 그 추동을 어쩔 수 없어, 중독이 시작되는 겁니다.

하기 싫은 학원 뺑뺑이, 학업부담을 어쩌지 못하니.. 부모에 맞서 가출할 수도 없으니.. 정신만 가출을 하는 겁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엄마 같은 괴물을 무찌르고, 아빠 같은 쫄보들 혼쭐을 내는 겁니다.

때려치울 수 없는 업무 스트레스, 상사 스트레스를 어쩌지 못하니, 차라리 불타는 알콜을 때려 부어 스트레스를 불태워 보려 하는 겁니다. 그러다 간이 불타지만 말입니다.

육아와 가사에 생계까지 삼중고, 사중고를 어쩌지 못하는..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엄마들이 명품 구두는 못 사고, 홈쇼핑 세일 상품, 할부 상품만 끝없이 사들이는 겁니다. 그 돈 모았더라면 명품 구두, 명품 백 몇 개를 샀을 텐데.. 집안 가득 싸구려 세일 상품들로 채우고, 자신은 과소비하는 게 아니라며 자위합니다.

 

가려운 데를 긁자

중독은 나쁩니다. 그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원인을 직접 해결하는 게 아니라서 시원하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질리는 게 낫습니다. 누가 뭐래도, 주위에서 어떤 눈총을 받더라도, 절제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다면.. 그게 뭐든 차라리 해버리고, 먹어버리고, 저질러 버리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탈이 나고, 혼이 나고, 난리가 나도 그걸로 끝입니다. 포크레인으로도 못 막을 걸 삽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지 않고.. 바로 그걸 하지 않고 엉뚱한 걸로 풀어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져 나갑니다. 중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열차 같이 오로지 절벽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게임을 멈추고 가출을 하세요. 술을 멈추고 사표를 내세요. 싸구려 쇼핑을 멈추고 전 재산을 털어 명품을 사세요. 그리고 찾아보세요. 그래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면, 진짜 근본적인 결핍은 어디 다른 곳에 숨겨져 있을 겁니다. 어린 시절 상처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감당하고 있던 오랜 결핍일 수도 있고,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억압일 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그 딴 다리 긁는 행위를 멈추어야 합니다. 가려운 데를 찾아야 합니다. 왜 가려운 지는 그다음에 찾더라도, 일단 피가 문드러져 고름이 흘러내리는 딴 다리 긁는 일을 그만해야 합니다.

 

이게 다 도망간 탓입니다. 직면하기가 두려워 도망 다닌 탓입니다.

두려움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심지어 살겠다는 욕심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면 그 욕심을 채워야죠. 살아야죠. 잘 살아야죠. 왜 게임중독으로 죽어갑니까? 왜 술고래가 되어 죽어갑니까? 왜 쇼핑중독으로 시름시름 앓습니까? 살고 싶으면 잘 살아야지, 왜 살고 싶은 욕망을 피해 두려움 속에 죽어갑니까?

질려 보는 겁니다. 중독으로 넘어가기 전에.. 원하는 바로 그걸 질릴 때까지 해 보는 겁니다. 절제 어쩌구 하지 말구요. 니가 부처가 아니지 않습니까? 니가 예수입니까?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뭐든 원하는 걸 질릴 때까지 합시다. 그러다 보면 균형이란 걸 잡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 늙었구나..

 

중독은 아닙니다

중독보다 질리는 게 낫습니다. 중독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그걸,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걸 찾아서 그걸 하면 중독은 사라집니다. 가려운 데를 찾아서 긁었는데, 피나는 딴 다리를 계속 긁겠습니까? 그건 그냥 당연한 겁니다.

엉뚱한 데 긁지 말고 가려운 데를 찾아 질릴 때까지 긁읍시다. 그러면 뭐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갑니다. 가려움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욕구는 채워지고 욕망은 진화하며, 우리는 그렇게 발전해 가는 겁니다.

어제 우리는 전도가 유망한 한 정치인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게 나름의 사랑이든, 합의에 의한 것이든.. 차기 유력 대선주자의 자리에 올라있는 사람의 선택이라고는 보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그냥 중독이었던 겁니다. 제어할 수 없었으니 그건 중독입니다. 권력으로 어째 볼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해 했더라도 그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에.. 그건 중독일 뿐입니다.

그가 진짜로 원하는 그것..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결핍들이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게 하는 추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 억압된 그것은 반드시 정점에서, 또는 정점에 근접했을 때.. 중독의 방식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적확한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상처와 욕망은, 익숙한 중독의 방식으로 풀어지게 마련입니다.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왔다. 거진 다 되었다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질리는 습관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이때에 이런 일로 몰락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이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지라도 말입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절제할 수 없다면 균형감각이 모자란 다면.. 아니 그 모든 것들도 질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우리는 차라리 질립시다.

중독.. 그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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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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