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라는 비현실적인 말

2018.03.02 

 

그건 좀 현실적이지 못한 거 아니야?

이런 말을 우리는 자주 듣고, 자주 합니다.
도대체 현.실.적.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요?

 

현실적 선택

제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종합금융사 직원이 신랑감 직업 1순위였습니다. 종금사.. 연식이 없으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 직업이 가장 현실적인 직업이었드랬죠. 지금은 뭐 그 직업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만..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적이란 말은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가장 현실적 조건을 따라 종금사 직원이랑 결혼한 누군가는, 지금도 그것이 현실적 조건이었다고 생각할까요? 아 물론 그건 그 당시에는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20여 년쯤 흐른 지금의 현실에는, 직업명조차 사라진 비현실적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현실적.. 현실적입니다. 바로 그 당시에는 말이죠.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현실적이란.. 흘러가는 물을 붙들겠다는 말일뿐입니다.

일전에 썼듯이 저는 행정학을 전공했습니다. 뭐 행정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행정고시에 도전하거나 적어도 7급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그런데 과 동기 중 한 명은 1학년 때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행정학과씩이나 왔으면 고시를 보던가 해야지. 9급 공무원이 뭐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뭐라고 말할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니는 내내 호봉을 꼬박 챙겨가며 공무원 합격자 신분을 누렸습니다. 그 친구의 선택은 과연 비현실적인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너무도 현실적인 선택이었을까요?

 

현실이 뭔데?

현실은 오늘뿐입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현실은 과거가 되고,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 미래가 어느새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와 있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해 불안한 북핵 정국 속에서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는 현실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혹 누군가 그런 예측을 내놓았더라면 ‘인간아 현실을 봐라 현실을..’ 이런 핀잔을 들었을지 모릅니다. 작년에는 매우 비현실적이었던 예측이 이미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금은 현실을 넘어 확정된 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내년에 한국은 통일이 될 거라는 예측을 해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해봤자, 모두들 여전히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을 겁니다.ㅎㅎ

우리는 심지어 십상시 문건 등이 세상에 알려진 2014년에도 최순실 등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아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 돼?’하면서 말이죠. 내가 믿지 않는다고 현실이 아닌 건 아닙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은 지금도 현실이고 그때에도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적’이라고 말할 때 그 ‘현실’은 무엇입니까?

내가 믿고 싶은 현실.

그것이 ‘현실적’인 바로 그 ‘현실’입니다. 아무리 진짜 리얼 팩트를 들이대도 내가 믿고 싶은 게 아니면 그건 비현실입니다. 심지어 만천하에 그 팩트가 드러나도, 뭔가 음모가 있다. 모함이 있다 하면.. 그 순간 팩트는 다시 비현실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반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오늘의 현실이 내일의 비현실이 되고, 내일의 현실이 오늘의 비현실로 간과되는 이 엉망진창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까?

 

나.. 현실은 나다

미약한 우리는 무엇이 참진실인지 알 수가 없고, 설사 그걸 안다해도 내가 속한 그룹,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모른 척, 아닌 척 해야하니..살려고 말이죠. 현상을 유지하려고 말이죠.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말이죠.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현실은 이것뿐입니다.

나.. 내 욕망, 내 믿음, 내 관념, 내 의지, 내 소망..

선과 악, 참과 거짓, 현실과 비현실을 떠나, 오로지 나의 실존은 현재의 ‘나’ 그리고 그 ‘나의 선호’에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비집고 남의 욕망, 남의 믿음, 남의 관념, 남의 의지, 남의 소망에 따라 나의 현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면, 우리는 끝도 없는 평행우주 속을 롤러코스터를 타고 종횡무진할 뿐입니다. 남이라는 안전바에만 의지한 채, 멀미에 속엣것을 모두 쏟아내가면서 말이죠.

그러므로 진짜 현실, 나의 현실로 돌아가려면.. 그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래된, 너무도 오래된, 식상하기 짝이 없는 이 경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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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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