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 비판_ 故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무의식

2018.02.02 

 (故) 노무현 대통령 묘역 설계자 건축가 승효상의 묘역 스케치

물길 위에 무덤을 쓰는 것을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꼭 풍수적 지식이 아니어도 물길 위에 무덤을 쓰는 경우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故)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 물길 위에 지어져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묘역을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의 말입니다.

이 땅은 삼각형의 땅인데 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고 땅 안에서도 물줄기가 두 개가 흘러 전통적인 묘례의 의거한 진입하는 공간, 제례하는 공간, 묻혀 있는 공간 세 부분으로 나눈 것도 땅 자체가 묘역으로 태어나기 위한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근처에 광장 같은, 길 같은 바닥에 놓여있는 묘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는 길바닥에 놓여있는 묘역. 그게 이 땅을 묘역으로 쓴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행과 방문한 봉하묘역.. 아마도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의 상처로 말미암아, 가슴 아프고 숙연하게 묘역을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묘역의 형세나 분위기 보다 그 사건의 잔상으로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타임워프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 사이에 동선을 따라 자연스레 묘역 끝에 있는 묘소로 이동하게 되면 마음이 무너져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묘역을 한 바퀴 돌고 나자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유해가 있는 공간 말이야. 지하감옥 같아. 게다가 묘소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은 간수같고 말이야.’

그렇더라구요.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쇠천장 위를 돌덩이로 눌러놓은 차디찬 지하 감방 같았습니다. 그 형세가 말이죠. 그 말이 마음에 걸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루미나티의 음모론에 관한..

*관련링크 : 노무현 대통령 무덤의 상징성 

음모론은 그것대로 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모론을 대할 때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은 무의식입니다. 형체가 있는 것, 정체를 알 수 있는 것, 실체가 있는 것은 무서울 게 없습니다. 그것은 때려잡으면 되고,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부지리로라도 역사는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무서울 게 없습니다. 귀신이 왜 무섭습니까? 실체가 없으니 무서운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이든, 일루미나티든, 그게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하나회처럼 때려잡든가, 못하더라도 언제가 이번 최순실 사건처럼 자중지란에 의해 정체를 드러내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건 집단의 무의식입니다. 그것은 실체를 알 수도 없고, 실체를 안다 해도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무의식에도 접근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집단의 무의식을 다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대중의 심리는 매우 무섭고 다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집단의 무의식이 정상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히틀러를, MB를 국가지도자로 선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귀신처럼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서 슈퍼맨, 킹스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전, 선동이란 매우 무서운 힘입니다.

저는 차라리 승효상 씨가 일루미나티의 협박에 의해, 아니면 그가 일루미나티에 충성하기 위해 이런 설계를 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드러내면 되고 언젠가는 자충수를 두다 무너져 내릴 테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그런 게 아니라 집단의 무의식이 몰고 간 무엇, 아니면 강력한 개인이 몰고 간 무엇이라면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다음 날, 저한테 묘역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흔쾌히 대답하고 일주일 후에 봉하마을에 내려갔습니다. 원래 유족들은 사저 뒤쪽에 묘역을 만들려고 했는데 제가 가서 보니 그 자리가 탐탁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묘역을 만드는 게 유족들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저 높은 산 속에 위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은 일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무덤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누구 맘대로 무덤이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게 죽은 자의 유지를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있습니까? 게다가 그 자리가 탐탁지 않았다니요. 도대체 누구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겁니까? 정작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_ 故 노무현 유서 中

유서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정상적인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거라면 일단 유언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게다가 유서에는 ‘오래된 생각’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인간은 영.혼.육.체. 네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를 소멸시킵니다. 더구나 화장하고 난 사람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과 혼 중에서도 혼이라고 하는 것은 열정이나 마인드 같은 것이라서 육체의 소멸과 더불어 없어져 버립니다. 남는 건 ‘영’인데 Spirit은 우리가 살아있으나 죽어있으나 우리 육체와 관계없이 별도로 놓을 수 있습니다. 죽으면 우리 영은 육체를 떠나서 하늘로 오르든지 사라지든지 구천을 헤매든지 천당을 가든지 극락을 갑니다. 그러니까 묘역에 죽은 자의 자취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묘역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럼 묘역은 무엇 때문에 만들까요?

이런 궤변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을 영/혼/육/체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누가 혼이 육체와 함께 소멸된다고 한답니까? 영의 존재는 누가 증명해 준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철학이랍니까? 전 국민이 동의했답니까?

건축가 승효상은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인간과 내세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의 그것으로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소에 과연 그러한 기독교적 이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종교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천주교 세례를 받기는 했으나 오히려 자신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방황’이라고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그의 유서가 자신의 죽음과 묘역에 관해 지정하고 있습니다. 승효상은 무슨 권리로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겁니까? 기독교 신자인 자신의 유해를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극락이 어쩌구 하면서 절간에 모신다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것은 부관참시에 가까운 폭력입니다.

남은 자가 된 우리가 죽은 자를 빌미로 해 우리 삶을 성찰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묘역에 대한 더 적합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여서 특히 노무현의 묘역은 노무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외진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지역을 샅샅이 살피고 난 후에 부엉이바위 앞의 삼각형 땅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땅이 적합한 땅이라 주장하고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이곳에 묘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무슨 권위로 묘역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내리고 이를 실행한답니다까? 우리를 위한 공간이라구요? 그 우리는 누구입니까? 이미 쓴 무덤도 지하로 물길이 나면 이장을 하는 게 우리의 관습입니다. 그런데 이미 물길이 두 개나 지나는 자리에, 그것도 번듯이 일루미나티의 상징이라는 정삼각형 피라밋 모양에, 게다가 그 맨 하단에 무덤을 위치하게 하고, 일루미나티의 계급을 상징한다는 33개의 박석을, 갯수도 정확하게 일치하게 박아 넣은 그 의도가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저는 감히 프레임을 씌워보겠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이며 억지일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말이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건축가 승효상의 경남고 동창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것 말이죠. 당대에 두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느냐 하면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북에서 피난해 온 실향민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일베 떡밥으로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를 위한 공간’에서, 그 우리가 누구인지는 의심해 볼 여지가 충분해집니다. 그러나 저는 앞에서 말했듯이 차라리 그것이 일루미나티의 계략이라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뭘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강력한 슈퍼파워가 하겠다면 하는 거죠. 그리고 그들도 언젠가는 자중지란에 의해 무너지겠지요. 히틀러도, 칭기즈칸도, 나폴레옹도 여전히 황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정 두려운 것은 이러한 묘역이 조성되도록 끌고 간 집단의 무의식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교묘한 방식으로 구현해 낸 승효상 개인의 무의식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종묘의 월대 공간입니다. 종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소문날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이라고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종묘가 아름다운 까닭이 무엇일까요? 종묘는 조선 왕의 신위를 지금도 모시고 있으니 기능하고 있는 건축입니다. 종묘는 100m가 넘는 목조 건축인데 이렇게 긴 목조 건축이 없습니다. 이 장중한 건축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종묘가 아름다운 까닭은 이 목조 건축 앞에 있는 ‘월대’라고 하는 비워진 마당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입니다.월대는 신위를 모시는 공간에서부터 1.5m 내려와 있고 일상을 사는 공간으로부터는 1m 올라와 있어서,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매개적 공간입니다. 

저는 제 건축에 대한 의문이 들 때는 습관적으로 이곳에 가서 에너지를 얻고 옵니다. 한국 건축의 핵심적인 ‘비움’이라고 하는 아름다움이 이 종묘에 있고 서울이라는 엉망진창의 풍경을 지닌 도시가 그래도 지속하는 까닭은, 한가운데 7만 평의 가까운 이 비움의 땅이 있기에 지속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묘역에 종묘의 월대 같은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승효상은 노무현 대통령을 핑계로 자신의 종묘를 만든 것입니다. 스스로 왕이 될 수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을 왕, 신화적 존재로 만들어 자신의 건축물에 합장시켜 버림으로써, 자신이 이 나라 종묘의 설계자, 주인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개인 무의식인 것입니다. 고인의 유언을 거부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고인의 유언을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반박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정권이 그의 고교 동창 문재인 정권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때에 그 일로 가장 큰 결과를 얻게 된 이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피하고 싶은 운명이었고, 죽음의 길이었어도 말입니다. 이 봉하묘역이 가지는 상징성이 없었더라도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추모의 행렬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축적되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자 노무현의 아우라는 일루미나티의 피라밋에서 부활하였고, 그 영광은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누리고 있으나, 그의 영혼은 정작 차디찬 지하감옥에 갇혀, 이승으로도 저승으로도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아마도 모르고 그랬을 겁니다. 건축가 승효상 말입니다. 이건 거리에서 외치는 ‘예수천당, 불신지옥’보다 더 무례한 짓입니다. 이것은 성추행의 사실은 기억도 못한다면서, 자신은 용서를 받았다며 간증을 해대는 전직 검사의 행동보다 추악한 일입니다.

프레임 하나를 더 씌우겠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은 [공간空間] 건축 출신입니다. 그의 스승은 그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고,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건 단지 프레임일 뿐입니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그들은 뭘 모르고 한 일일뿐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다는 겁니다. 그들의 무의식이.. 그것에 반응한 우리 모두의 집단 무의식이.. 지금 대한민국을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에게로 산 제물로 바치려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그게 차라리 일루미나티이길.. 그게 차라리 음모조직의 협박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전 세계를 2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었던 독일 국민의 무의식이 아니길, 아시아에 치욕을 쏟아부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무의식이 아니길 오히려 기원하는 것입니다.

* 건축가 승효상 특별강연 : 빈자의 미학 20년,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좋은 건축, 좋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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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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