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오늘 나는 지금의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상황이
내가 선택한 게임의 레벨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기 시작한다.

피하고 싶고 절망적으로 암울한 상황이라도
이것이 현실이 아닌 게임의 레벨이라면,
나는 먼저 내가 가진 무기와 자원의 역량을 측정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문제와 장애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게임이니 이것은 승리를 맡아 놓은 것이다.
설사 도전하다 죽더라도 아직 내게 남은 캐릭터는 몇 개쯤 남아 있을 게다.
혹 마지막 캐릭터였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더 넣고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도 있을 테다.

이것이 오로지 절대적 현실이라고만 바라볼 때
나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벽에 부딪히겠지만,
이것이 내가 선택한 게임이라고 바라볼 때에는
나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게임이니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도
나는 게임을 멈출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다 결국 내가 가진 캐릭터가 모두 죽더라도
가서 밥 먹고 와서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게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현실에 갇히고,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현실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나를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이끌고
가장 게임에 충실한 선택이
나를 가장 현실에 충실한 성취로 이끈다.

나는 현실에 갇힌 사람인가?
현실을 창조하는 게이머인가?
그것은 선택의 몫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 게임이 영원히 계속될 현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에너지 게이지가 20년, 10년, 5년, 1년..
사정없이 줄어가고 있는데도
게임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전기가 나가든 버튼을 잘못 눌렀든,
에너지 게이지가 나도 모르게 다 달아 버렸든,
게임에서 delete 되는 순간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는 것이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에너지 아끼지 말고
신나게 달려보는 건데 하고 말이다.
남겨놓은 첨단 무기가 총알들이 아까운 것이다.

뭐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다시 500원 넣고 시작하면 될 테니.
대신 다음 게임에서 꼭 명심할 것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진짜 현실 즉 영원한 현재와 혼동하지 말 것.
게임은 시작과 끝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게임하는 동안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어차피 게임을 하고 있는 나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어디까지나 게임은 즐기기 위한 것이지,
재미없게 살아남아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2010.06_ 京都_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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