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족하지

 

부담 가질 필요 없지.
그저 달리다 지친 어느 날.
너무도 쉬고 싶은 어느 날.
아무 말없이 찾아가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기대 쉬라고 어깨 한 쪽 빌려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지.

심하게 좌절하고 상처받은 어느 날.
슬그머니 나타나 손 꼭 잡아주며,
열정과 기대에 차서
출발하던 그 날
내 모습이 좋았다고,
떠올릴 수 있게 해주면
그걸로 족하지.

앞을 볼 수 없는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어디선가 나타나
우산을 펴주며,
젖지 않았냐고 감기 들겠다고
말 한마디 얹어주면
그걸로 족하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 내린 어느 날.
함께 걷던 눈 밭 그 길.
뽀드득 뽀드득 소리 내며 걷던
그 날 그 자리 떠올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지.

부담 가질 필요 없지.
꼭 같이 걷지 않아도
꼭 같은 버스를 타지 않아도
모두가 결국에는 한 곳에서 만날테니.
서로의 안부쯤은
바람이 실어다 주고
새들이 속삭여 줄 테니.
이리저리 마음 달래며
걷고 걷다 보면
또 만나겠지.
또 마주치겠지.

꼭 부딪혀야 손뼉이 아니고
꼭 마주봐야 눈길이 아니듯,
뜻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걷다 보면
네 꿈도 이루고
내 꿈도 이루겠지.

그러면 되는 것이지.
그러면 헤어질 때의 아쉬움 쯤은 간데없고
한 버스를 타지 못한 속상함 쯤은
덕분에 간절했던 그리움으로 젖어 들겠지.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 없지.
그걸로 족하지.
그러면 되는 것이지.

 

[2009.05_ seoul grandpark_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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