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말-2부] 위대한 선택
2011.02.19
어머니 지구의 해결책은 이것입니다
순리. .
‘출산률이 줄거든, 인위적으로 늘리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자원이 줄거든 대체할 자원을 찾아 애쓰지 말아라.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거든 그렇게 살도록 두어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을 애써서 중단하려 들지 말고 흙으로 돌아가도록 자유를 허하라. 탐욕에 굶주린 자들과 대항하여 싸우지 말고 그들이 스트레스의 극단까지 달리다 벼랑에 스스로 몸을 던져 죽든, 벼랑 끝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 인생을 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허하라.’
모든 동식물은 지구, 우주, 자연의 순리를 따라 생멸합니다.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져 생태계를 위협하게 되면 어떤 종들은 집단으로 자살하여 개체 수를 스스로 조절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소수의 개체 수를 가진 종은 오지와 극지를 마다 않고 본능을 따라 초자연적으로 생존하기도 합니다.
모든 동식물들이 지구가 선사한 본능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충실하게 생멸을 반복하며, 지구환경에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반면, 유독 ‘자유의지’라 불리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위임받은 듯 여기는 인간 종의 의식은, 이러한 어머니 지구의 순리에서 마냥 자유로운 듯 보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팽창하려고만 들고 안하무인격으로 이웃 동식물들에게 폭력과 위해를 가하며 주인 행세를 하고 돌아다닙니다. 마치 전지구적 깡패, 공인된 지구촌 건달인 듯 보이는 인류의 행태에 순하디 순한 지구 자연의 친구들은 매우 오랜 세월을 참아왔습니다. 지나친 피로감을 호소하며 말이죠.
많은 인류의 현자들이 그러다 망한다고 수도 없이 경고했건만, 지혜와 가르침은 다음 세대로 전수되지 않고, 도리어 탐욕 앞에 무시되고 폐기되어 왔습니다. 결국 인간 종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기관차처럼 점점 가속도를 내며 종말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인류.. 우주의 완전한 진화를 위한 돌연변이 바이러스?
그럼에도 지구가 이토록 오래 참으며 고통스런 실험을 반복해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종의 예방주사? 백신 계발이 아닐까요? 완전한 시스템을 위한 돌연변이 바이러스로서의 인간 종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구는 자신의 몸에 주입해 온 것이 아닐까요?
진화와 발전을 위한 생산적 자극, 완벽한 시스템을 위한 오류 유발자로서의 검사 도구..
지구는 인간 종의 실험을 통해 지구 생태계가 어느 수준까지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는지 측정하고, 아울러 어떤 부분이 어떤 자극에 의해 취약한지 검증해 내는 검사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충분한 실험이 이루어진 뒤에는 모든 것을 Reset 하고, 다시 좀 더 진화된 생태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새로운 실험에 돌입하는 창조의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각각의 동식물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인류는 지난 과정의 그것보다 좀 더 진화되고 발전된 형태의 생태계 시스템의 일원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지구 생태계 구성원의 일부로서 이러한 인간 종의 의식은 다른 종의 그것들과 비교해 조금은 특수해 보입니다. 우주 그 자체이며 지구 생태계 그 자체와 일체를 이루는 동식물의 의식과는 달리, 인간 종의 의식 ‘자유의지’는 끊임없이 지구 생태계에 다양한 자극을 가함으로써, 상호 공존과 생멸의 선순환을 위한 지구환경 시스템의 취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영민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지구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종의 멸망이란 그리 끔찍하고 절망적인 것만은 아닐 겁니다. 전체 지구 생태계의 더 큰 진보와 진화를 위한 한 걸음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 지구 생태계에게나, 인간 종에게나, 아마겟돈이든 인류멸망의 날이든, 그리 요란스럽게 야단법석을 떨 일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생멸을 순리대로 반복해온 동식물들에게는 지나치게 호들갑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인류의 자기조절 시스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절망스러운 일이 아니라면 조심스럽게 인간 종의 자유의지에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기술문명의 끝까지 달려서 파멸을 다시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번 실험 과정에는 지구 생태계의 다른 동식물 구성원들처럼 순리대로 인구 조절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말이죠.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지능의 발전, 의식의 계발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 지능의 발달로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또 이로부터 말미암은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의식을 점진적으로 고양시킵니다. 진화하는 인간은 끝없이 팽창하려 들고 인간 고유의 자유의지는 멈춤이 없는 성장을 지향해 왔습니다. 모든 우주, 지구환경의 시스템이 음과 양,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우리가 아는 한 인간 종은 끊임없는 팽창과 성장만을 추구해 온 것 같습니다. 천적관계가 사라진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위치한 인간은 더 이상 음과 양, 수축과 팽창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 절대강자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신께서 인간을 그렇게 무한한 권력자로 영원하도록 놓아두었을 리 만무합니다. 지구 의식이 인간에게 그렇게 멸종 외에는 탈출구가 없는 무식한 바이러스로만 남겨둘 리도 없습니다. 기술문명의 성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농경사회 위주의 인간을 산업화시키고 도시화시킵니다. ‘자연’은 순환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끊임없이 소비되며 고갈되고, 고도 문명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은 부가 편중된 도시로 도시로 모여듭니다. 당연히 친밀한 대가족 중심의 기초 커뮤니티는 붕괴되고 핵가족, 나아가서는 개인 단위로 공동체가 축소되고 재편됩니다. 자녀의 수가 곧 한 집안의 노동력의 수였던 사회에서 자연적 죽음을 지연시키고, 적절한 탄소 배출량의 조절 없이 유발되는 공해 유발 생명체들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적정 개체 수를 유지하던 인간 종의 숫자는 포화되고 있습니다. 이즈음의 인간 종의 경제 시스템은 거품이 잔뜩 낀 화폐경제의 허구 속에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종말이 예고된 피라미드 업체처럼 위태하며, 이를 유지하게 위해 끊임없는 임금 노예, 주택 노예, 회사 노예를 생산해 내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내달리게 됩니다.
그 가운데 인간 종의 몇몇의 의식은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종말을 내다보게 되고 허구 경제 시스템에서의 탈출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계몽하고 각성할 수 있다면 인간 종 전체의 종말을 멈출 수도 있습니다. 지구 의식이 인간 종의 자유의지에 보험처럼 남겨놓은 각성제로 말미암아 말이죠. 그것은 이미 인간 종의 거품 낀 화폐경제 시스템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소득의 양극화를 불러일으키는 화폐경제 시스템은 결국 공동체 단위를 대가족, 마을, 지역에서 핵가족, 개인 단위로 떨어뜨리고 나아가서는 부모, 형제, 친지 누구에게서도 안전망을 기대할 수 없는 철저한 초핵공동체 단위로 축소시킵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성장 일변도의 경제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타격을 입히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게 되고 불안한 안전망 덕분에 소비와 활동을 줄인 채, 무엇보다 더 이상 출산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거나 부모에게서 안정된 양육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 종은 자기 스스로 개체 수의 폭발적 증가율을 떨어뜨리려는 반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말이죠.
불안한 미래로 말미암은 소비 위축은 고령화 사회의 특징입니다. 고령화 사회의 대표적 케이스인 가까운 일본의 사회상만 보아도, 수십억 원을 가지고도 일주일에 식료품비로 만 원을 쓰는 게 고작인 자발적 푸어 노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의 위축은 전반적인 산업의 성장을 위축시키고, 산업의 위축은 일자리 축소, 임금 감소 등으로 이어지며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출산률, 결혼률을 떨어뜨리게 만듭니다. 병들어 죽는 인간 개체 수뿐만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인간 개체의 출생률 또한 동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도시는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죽은 도시처럼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어지게 되고, 자연스레 인간 개체는 적정 수준 이하에서 떨어졌다 상승했다를 반복하며 안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문명에 지친 인류 중 일부에서는 스스로 웰빙을 외치며 자연으로 회귀하고 생태계의 선순환 시스템 속으로 복귀하려는 의식의 발현이 일어납니다. 이는 모든 것이 과(過) 하여지면 스스로 한계에 도달하고 전체의 조화를 위해 감(減) 하여지는 지구의식의 근본적 조절 기능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고 포식자인 인간에게 자연이 가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개체 수 조절 처방은 이제까지 전염병 또는 기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였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영리해진 인간은 끊임없이 이를 막을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이러한 자연재해의 위협을 차단해 왔습니다. 인간 종에게는 위대한 방어일 수 있으나 지구시스템 전체로 보자면 무엄한 오만일 수 있는 인간의 도전에 지구가 크게 성내지 않고 인간 종 개체 수의 폭발적 확장을 용인하는 데에는 이러한 인간 종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계에 도달한 인간 종이 스스로 전체의 조화를 위해 자기조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 말이죠.
그러나 이제까지 멸망해 버린 고대 문명들을 생각하면 아마도 인간 종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조절할 능력을 사용할 만큼 진화해 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문명이든 기술 발달의 극단에 이르게 되면 커뮤니티가 파괴되고, 이 과정에서 부의 편차가 벌어지며 이것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 자연스런러운 과정에 도달하게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고대 문명이 그렇게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적어도 이제까지의 지구의 인간 종 실험에서는 기술문명 발달의 극단에서 집으로 돌아온 탕자는 없었다는 얘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선택
그러면 현생인류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인류 문명의 종말을 예견하고 스스로 자기조절에 들어가 지구 생태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선택하게 될까요? 아니면 고대 인류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이러스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수행한 나머지 지구 생태계를 교란시킨 끝에 스스로를 거대한 환경재앙 쓰나미 속에 수장시켜 버리고 말까요?
근래의 우리나라의 IMF나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 위기는 재앙이 아니라, 스스로 거품을 제거함으로써 팽창 일변도의 기술문명의 극단적 팽창을 멈추고, 자연과 조화하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라는 지구 어머니의 점잖은 경고 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어쩌면 인간 종의 마지막 탈출구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를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고 거품의 거품을 더하는 정책의 남발과 마땅히 파산해야 할 거대 기업의 회생을 위한 공적 자금의 무분별한 투입, 어설픈 출산율 확대 캠페인 따위는 다 의미 없는 행동이자 종말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체질 개선, 환골탈태 없이 대충 오늘 수습하며 버티다가는 결국 거품이 터져버리면 모두가 날아가 버리게 될 테니 말이죠. 작정하고 끼리끼리 모여 거품만 확대시키던 경제블록들이 각자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적이 되면, 결국 다가오는 것은 전쟁뿐일지도 모릅니다. 칼 쓰고 화살 쏘던 재래식 전쟁이 아닌 단추 한방이면 전 인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어 버릴 핵무기 시대의 전쟁은, 어쩌면 이제까지 멸망해 버린 인류 문명들 중에 자연재해로 인해서가 아닌, 스스로 자기자신들을 불태워 버린 최초의 문명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랫세대가 윗세대를 떠받쳐야만 생존이 가능한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말그대로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쌓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무너져야 할 것은 무너져야 하고, 도태되어야 할 것은 도태되어야 합니다. 탐욕과 결핍으로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다간 모두 함께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인류 구성원으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임시방편만을 전전하던 모든 낡은 관습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길을 찾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걷게 되면, 이 모든 위기는 거두어지고 인류에게 밝은 미래가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하게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멈추는 일일 수 있으며, 죽을 것 같이 다니기 싫으나 카드 값에 쫓겨 그만두지 못하는 직장을 용기 있게 때려 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가족들 사이에서 탈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두려워 미루어 두고만 있던 도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기력해진 영혼에게 상상만 하던 세계여행을 선사함으로써 생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라 혹사한 위와 간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공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 개개인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고 영혼이 원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종말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폭주기관차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습니다.
하고자만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관대한 어머니 지구는 영혼의 소원을 따라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인간에게 무한한 도움의 손길을 열어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저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멸망하고 말 시스템에 더 이상 기대어 살지 않는다면 현생인류는 고대 인류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지구 생태계 전체의 의식 상승에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 속에 잠재되어 왔던 내면의 길을 찾는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 나아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커다란 선택입니다. 한 사람의 행복이 지구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단 한 사람의 불행한 선택이 인류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정신 없이 노예의 일상을 반복하게 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어서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낭떠러지 절벽 바로 앞에서라도 깨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파멸의 행보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 뒤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대로는 모두가 종말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뿐입니다. 2012년이든 2050년이든 그 다음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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