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이 천 년 전, 노마드들이

Nov 28. 2023 l Göbekli Tepe

시간의 제로포인트에 도달했다. 여기서 역사가 시작되었단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발견된 역사. 12,000년 전에 세워진 사원.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 시작이 아니었다. 인근에는 이보다 수 천 년 앞선 또 다른 사원이 발견되었으니. (Karahan Tepe)

왜 하필 발견되는 것은 모두 사원일까? 물론 집단 주거 등이 시작되기 전의 사회라고 하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런, 아직 집단 부락도 형성하지 못한 시절의 사람들이 이런 거대한 사원을 세웠다면 그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 종교성, 무언가를 따르려는 열망 말이다.

_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튀르키예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이름의 지명으로, 튀르키예 남동쪽 샨르우르파(Şanlıurfa)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간 인류 최초의 신전이라고 알려져 있던 몰타의 신전보다도 6,000년 전, 노아의 홍수, 스톤헨지와 피라미드보다도 7,000년 전에 세워진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의 이 거대한 석조 사원은 농경사회가 아직 시작도 되기 전의 건축물이다. 이는 인류가 정착하기 전에 사원을 건축했고, 수렵채집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이미 최초의 종교가 출현했음을 보여준다고. 또한 먼저 사원이 세워지고 그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농경사회의 연관성을 고민한다. 그러니까 이만한 건축물을 인력만으로 세우려면 노동자 집단이 필요하고 이들이 수렵, 채집할 여유가 없었을 테니 농경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인근에 집단 부락의 흔적이 없고 수원(水原)은 5km나 떨어져 있으니 아마도 ‘함바집’ 같은 게 있으려면 농경을 시작할 필요도 있겠다 싶다. 게다가 최초의 농업이 시작된 도시도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등장하는 음모론이라면 UFO의 정거장이라던가, 외계인들이 뚝 따리 뚝딱 지어놓고 사라졌다던가, 아니면 사라진 고대 제국인들이 어떤 이유로 급하게 묻고 떠났다던가. 생략된 역사에 이런저런 말을 얹고 싶겠다. 팩트는 누구도 모르니까. 그럼, 마법사의 고대 별장쯤이라고 해둘까? 아님 블록체인 데이터 저장센터? T자로 생겼으니 T코인이라고 부름 될까?

_ 발굴터 위에 지붕을 씌워 놓았는데 마치 UFO 같다

학계는 이 사원의 발견으로 그간의 학설이 모두 뒤집어졌다고 한다. 농경사회의 시작으로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모여 살다 보니 규칙과 질서가 생겨나고 그리하여 종교, 사회적 협력체계가 발생한 것이라던 기존 학설. 그러나 사람들은 모여 살기도 전부터 종교를 만들었고 거대 사원을 건설할 만큼의 사회적 협력 체계라는 게 존재했다는 게 되니. 먹고사니즘이 발생시킨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떠받치기 위해 먹고사니즘이 발전했다는.

먹고사니즘을 최상위에 두고 해석하는 버릇은 좀 버려야 한다. 인간이야말로 관념의 동물인데, 그 관념, 의미가 지지해 주지 않을 때 먹고사니즘 따위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는 종교적 동물이란걸, 인류는 자주 망각한다. 단적인 예로 이렇게 먹을 게 차고 넘치는 시절에 자살은 왜 하냔 말이다. 의미 없는 삶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 아니더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게 아니지 않더냐. 그러나 뭐든 인간 문제를 먹고사니즘으로 해석하려는 경제적 동물 출신의 위정자들, 학자들은 백성들은 언제나 몇 푼 쥐여 주면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라는 걸, 이 사원이 보여주는 것이리라.

_ 정교하게 조각된 부조들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만이 천년 전의 기술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 사원은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란다. 수천 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설계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되어 있는 것 같더란다. 이 사원단지에는 여러 사원들이 연이어 건설되어 있다. 이상한 것은 하나의 사원이 건설되고는 다음 사원이 건설되기 전에 다시 메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원이 바로 곁에 세워지고 또 새로운 사원이 세워지고 메워지고를 반복했다고. 그래서 이 언덕은 인공언덕이란다. 그런데 오히려 농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사원은 폐기되었다고. 단지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매립되었다고. 결국 마지막 사원까지 다 메워지고 일만 년을 잠들어 있었으니. 왜 하필 이 시대에 발견된 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사원 건축자들은 왜 기존 사원을 메웠을까?

_ 사원 단지는 T자 모양의 기둥으로 형성된 원형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기둥이 발굴되었다. 일부 기둥은 길이가 최대 6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15톤이 넘는다.

기록된 최초의 발견은 1960년대 시카고대와 이스탄불대의 인류학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중세 공동묘지에 지나지 않는다며 간과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1994년에 독일의 고고학자인 클라우스 슈미트 Klaus Schmidt 교수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는 보고서들을 조사하다 이 언덕에 관한 간략한 언급을 읽은 후, 직관을 얻었다. 그리고 일단 그곳에 가보기로 하고. 방문하자마자 이곳이 매우 특별한 곳이라는 것을 ‘그냥’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파내려 간 것이다. 일만 년의 신비를 깨운 행동은 그냥 파 내려 간 직관적 행동으로부터였다.

학자들은 사람들이 정착된 공동체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법을 배운 후에야 사원을 짓고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원할 수 있는 시간과 조직, 자원을 갖게 되었다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지역사회가 대규모의 조직화된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먼저 농업이 일반화되어야 하고, 복잡한 사회적 협력 관계는 먼저 정착 생활이 선행된 이후에야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인류 문명 발달 모델이었다고. 그러나 슈미트 교수는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사원을 건설하려는 광범위하고 조직된 노력이 말 그대로 복잡한 사회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라는. 고대 인류는 먼저 거대한 거석 사원을 지어야 한다고 느꼈고, 그 결과 대규모 노동자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농업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가 먼저냐? 먹고사니즘이 먼저냐? 이 논쟁의 근거를 이 사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화폐가 먼저냐? 실물이 먼저냐? 에 관한 논란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체계가 유지되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하다는 전략이 아니라.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체계가 발생된다는 현상 말이다. 사실 개척의 역사를 보자면 언제나 앞선 것은 믿음이었다. 박해를 피해 새로운 대륙으로 이주한 순례자들, 그리고 저 바다 너머 어딘가에 인도 대륙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바다를 항해한 모험가들. 그리고 그 믿음에 동참한 동지들 말이다. 물론 이천 년 전에 예수의 제자들이 먼저 인도를 찾았다. (한반도에까지 왔었다는 전설도 있다) 무엇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가? 화폐가 먼저냐? 실물이 먼저냐? 내재가치가 없는 화폐를 얻다 쓰냐는 저항에 매번 직면하는 사토시의 제자들에게는 사원을 지을 믿음이 있는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는가?

이동 생활을 하는 수렵채집 노마드들이 이 거대한 사원을 만들었다. 스스로 건설노동자, 건축 노마드가 된 것이다. 그들은 단지! 사원을 세우기 위해 공동체,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내재가치 없는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화폐를 유통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든 것처럼, 기존의 통념과는 반대로 중앙에 종속되지 않는 화폐를 유통하기 위해 우리 뭐든 거래하자고 신념을 세운 것처럼. 그리고 거대한 크립토 시티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12,000년 전 고대 노마드들에게 이 거대한 사원 건축을 가능케 한 그 신념, 믿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_ 일명 우르파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제 크기의 인간 석상. Sanliurfa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11,000년전 제작되었다.

사원 인근에서 정착 생활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단다. 야생식물의 흔적과 주로 발견되는 야생동물의 뼈는 동물을 가축화하거나 농경 생활이 시작되기 이전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슈미트 박사는 아예 이곳을 ‘언덕 위의 성당’이라고 불렀다고. 150km 밖의 사람들도 순례를 왔을 거라는. 최근의 연구는 농경의 기원을 종교와 주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제의용으로 쓰인 술을 발효시키려다가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맥주를 발효시킨 효모와 환각물질. 그리고 신비체험. 그런 힘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거대한 사원을 지을 수 있었겠는가!

마법사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사원의 언덕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여기 이 자리에 이 사원을 건설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을까? 그리고 도대체 만이 천 년 전에 어떻게 저런 건축 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을까? 인류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피라미드 역시 오래된 것들이 더 기술력이 뛰어나다는데. 그런데 왜 모두 묻어버리고 잠들어 버렸을까? 중단된 시간 동안 인류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인류 문명의 발상지. 에덴동산이었을 거라 추측되는 동산으로부터 발원한 두 개의 강이 흐르는 젖과 꿀이 흐르던 이 땅에서 인류는 사원을 지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이 사원을 두고 그 이전, 그리고 밝혀진 다음 시대까지도 수천,수만 년의 역사가 인류에게는 밝혀지지 않은 채 생략되어 있다. 그 시간 동안 인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농사를 짓고 사람들이 모이고 규칙을 세우고 부를 분배하는 정상적인(?) 역사의 발전이 문명을 발달시킨 것이 아니라, 제각각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동하며 살아 온 고대 노마드들이 말도 안 되는 집약된 기술로 거대한 유산을 남겼으니. 오히려 이 고대 사원은 만이 천 년 뒤에 후손들에게 무엇이 정.상.이냐고 되묻기 위해 잠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정주하는 인생이, 농경의 양식이 과연 인류에게 선이었냐고? 최선이었냐고? 내일 잠자리를 알 수 없는 노마드 라이프보다 과연 나은 선택이었냐고? 인류의 역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미스터리다.
그래서 신비다.

 

*괴베클리 테페는 아직 10%도 발굴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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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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