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 찬 마법사 (2)
프롤로그
복수에 찬 마법사
마법사는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감지했다. 안마사가 정성껏 풀어내어 주었으나 고된 사역에 지친 마법사의 몸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몸을 돌봐야 한다. 장수의 길을 택했으니.
‘天地한의원’
마침 눈에 띈 그곳은 하늘과 땅을 모두 품고 있었다. 양의를 찾아가기엔 몸에 칼을 대고 싶지는 않으니 일단 돌아온 호흡을 따라 몸의 순환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음.. 간이 안 좋으면 복수가 차기도 해요.”
한의사는 흔한 진맥도 보지 않은 채 마법사의 증상을 찬찬히 들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로 마법사의 몸을 살폈다. 잔뜩 피곤에 절은 채 배만 뽈록 나온 마법사의 몸을 살피던 한의사는 간이 좋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왜 아니겠어요. 간 때문이죠. 마법사들의 지병이랍니다. 해독해야 할 것들이 좀 많았겠어요. 두려움, 자기 비하, 낮은 자존감이 뿜어내는 우울한 가스들.. 설익은 꿈을 품는다는 건 유해한 것들 역시 함께 품어내고 해독해 내는 일이지요.’
한의사는 일단 침을 좀 맞아 보자고 말했다. 마법사의 임산부처럼 뽈록 나온 배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살 좀 빼라고. 그러나 식사를 하루에 한 끼로 줄이고 하루에 삼만보를 걸어도 뽈록 나온 배만큼은 꺼져 들지 않은 채 복부를 점령하고 있었다. 평소에 이 기이한 현상에 납득이 가지 않던 마법사는 이참에 이 문제를 해결을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복수 때문일 수도 있다구요? 복수는 말기 암 환자에게서나 나타나는 게 아닌가요?”
“만성질환이면 그럴 수도 있어요. 찼다 빠졌다 하는 거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에 무리가 가니 차오르고 마음이 편해지면 다시 홀쭉해지고 그럴 수 있어요. 일단 한 번 침을 놔 봅시다.”
한의사는 마법사를 진료대에 누우라고 하고는 배에다 가느다란 침을 쿡쿡 찔러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마법사의 뱃속에 무엇이라도 사는지 침을 피해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이놈들이었네.”
한의사는 마법사의 뱃속에서 요동을 치는 이것의 정체를 아는 듯 의구심을 해소한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에게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 뭔가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생겼는데 그 끝에 여러 갈래의 호스가 달려 있었다. 한의사는 마법사의 배에 찔러 넣었던 가느다란 침을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들이 점점 굵어지며 관처럼 넓어졌다. 한의사는 관처럼 넓어진 침에 호스를 연결하더니 먼저 놈들을 분쇄해야 한다며 고주파 전극을 연결했다. 우웅~ 하고 고주파가 돌아가자 마치 믹서기에 갈리는 미꾸라지처럼 마법사의 뱃속 그것들이 분쇄되기 시작했다.
“안 믿기시겠지만, 이것들이 미꾸라지 같은 것들이에요. 뱃속에 딱 또아리를 틀고는 환자의 체액을 쭉쭉 빨아들인답니다. 이것들이 이가 없어서 씹지를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소화액으로 녹여진 양분이 잔뜩 담긴 걸쭉한 체액을 이유식처럼 빨아들이는 거지. 그러고는 뱃속에다 소변을 잔뜩 쏟아내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이 먹어도 먹어도 배만 나오고, 양분은 다 빼앗기니 힘은 없죠. 이 배가 살이 아니고 물이에요. 물. 놈들의 소변. 이놈들이 몸이 거진 액체라 얼마나 미끌미끌 잘 빠져나가는지 이렇게 분쇄해 버리지 않으면 좀처럼 빨아들일 수가 없어요. 아, 오늘 점심은 추어탕 해 먹어야겠네. 맛도 딱 추어탕 맛이 난다니까. 간호사 물 끓여요. 오늘 점심은 이걸로 해결합시다.”
한의사는 이걸로 점심을 해결하겠다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마법사의 뱃속에서 양분을 모두 빨아대고 있던 그것들이니 잔뜩 숙성되어 아주 맛이 날 것이다. 한의사는 오랜만에 보양하겠다며 군침을 다셨다. 잔뜩 갈아진 그것들이 모두 숨이 끊어졌는지 요동이 멈추자, 한의사는 고주파 전극의 스위치를 내리고 이번엔 진공청소기같이 생긴 본체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콸콸콸 복수가 빨아들여지며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마법사의 배가 바람이 빠지듯 홀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놈들이 어떻게 환자분 배에 자리를 잡았지? 이렇게나 많은 양은 처음 보네. 대체 무슨 일을 하세요?”
‘마법사랍니다. 사람들의 꿈을 품죠. 대리모처럼 잉태할 수 없는 동정들의 꿈을 대신 받아 키워요. 그리고 때가 이르면 척추를 타고 송과선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거예요.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그들은 말을 해요. 꿈에 대해, 소망에 대해. 그리고 마법사는 그걸 가슴으로 받죠. 성장하는 것들은 가슴에서 피어나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두려움에 휩싸인 것들은 도망치듯 숨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는데 뱃속에 숨어 있었군요. 눈치만 보며 쭈뼛대더니 겨우 뱃속에 숨어 있었네. 바보같이’
한의사는 양동이 가득한 그것들의 사체를 보여주며 마법사의 홀쭉해진 배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 이거 뭐야? 아직 숨어 있는 놈이 있었네. 가만 보자. 환자분, 다시 누워보세요.”
한의사는 홀쭉해진 마법사의 복부를 살피다 아랫배가 팔뚝처럼 불룩해져 있는 모양을 보고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야, 이놈. 대장 놈이 아직 안 갈리고 숨어 있었네. 누가 지 대장 아니랄까 봐, 하필 대장 속에 쏙 숨어 있었구만. 그래봐야, 몸뚱아리가 비대해져 있어 대장이 터져 나갈 모양인데 안 들킬 수가 있나. 눈만 가린다고 없는 게 되는 게 아니지. 자, 환자분. 이번엔 죄송하지만 항문에 관을 넣어야겠어요. 이놈이 대장에 잠복해 있거든요.”
한의사는 마법사가 뭐라고 답변도 하기 전에 관을 마법사의 항문에 박아버렸다.
“으악!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해요?”
“아니 이놈이 놀라서 딴 장기로 튈지도 모르니까 단번에 뽑아내야 해요. 당황스럽겠지만 좀 참으셔요. 그냥 묵은 똥 한 번 싼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스위치 들어갑니다.”
웅~ 음.. 그것은 너무 처참한 광경이라 묘사할 수가 없다. 다만 읽는 이의 배변 습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될 것이다. 암튼 놈은 대장의 위세를 떠느라 마법사의 항문에서 끈덕지게 버티기를 해댔다. 한의사는 대장이 파열될 위험이 있어 고주파 전극으로 분쇄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는 잠깐 고심하더니 간호사에게 솜사탕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이놈들이 단것을 좋아하거든요. 뜬구름 같은 단 것들 말예요. 특히 사탕이 잔뜩 발린 것들을 좋아하더라구요. 알사탕을 줬다간 자칫 물고 들어가 버리면 직장이 막혀버릴 수도 있으니까 솜사탕처럼 녹아 사라지는 단 것을 줘야 해요.”
한의사는 간호사가 가져온 솜사탕을 나무젓가락 끝에 매달고는 조심스럽게 마법사의 항문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놈은 솜사탕에서 풍겨나는 단내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솜사탕이 매달린 나무젓가락을 덥석 물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때, 한의사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놈이 물고 있는 나무젓가락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거대한 놈의 육체가 미끄덩하고 마법사의 항문을 빠져나와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너였구나. 나는 너를 알지. 잊을 리가 있겠니. 네게 쏟은 마음과 정성이 얼마나 컸는데. 고작 솜사탕에..’
‘마법사님 미안해요..’
놈은 마법사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눈을 감고 말았다. 한의사는 놈을 분쇄하지 않고 산채로 꺼내 본 건 처음이라며 신이 난 듯 간호사에게 어서 횟용 검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원장실에서 거대한 검을 가져오자, 한의사는 잠시 눈을 감고는 뭐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검을 꺼내어 단숨에 열 동강을 내버렸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않은 채 자신의 종말을 받아들였다.
‘가거라. 떠날 때가 되었지. 평생 마법사의 뱃속에서 살 수는 없지 않겠니. 다음 생엔 부디 숨지 말고 구름 위로 날아올라 별처럼 빛나렴.’
한의사는 마법사에게 만성이니 언제든 다시 차오를 수 있다며,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하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별을 잘하시길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마법사는 만성이라는 말이 운명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복수에 차오른 배를 안고 오랜 세월을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도 언젠가 제 주인들이 다시 찾아오면 잔뜩 집어먹은 겁을 풀고 다시 가슴으로 날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마법사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니 이제 그것들의 운명도 다한 것이다.
마법사는 한의원을 나서며 이제 만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직관했다. 그리고 복부에 필터를 하나 끼워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간호사가 내준 약 봉투에는 간에 좋다는 공진단과 함께, 한의사가 특별히 제작했다는 복대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복대에는 검은 붓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종신 또는 종료’
그것은 한의사가 놈을 열 동강 내기 전에 외운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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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또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