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 찬 마법사 (1)

프롤로그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

 

“아이고, 등짐을 지셨나? 등이 왜 이렇게 딱딱하지? 무슨 일을 하시길래.”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마법사의 등을 만지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일을 하냐구요? 마법사랍니다. 영혼들의 꿈을 등에 업고지고 다니다 이 모양이 됐죠.’

안마대에 고개를 처박고 마법사는 혼잣말을 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마법사의 말을 모두 읽고 있을 테니 마법사는 문장을 바닥에 던져두면 되는 것이다.

‘등짐이라니. 모두들 염체를 잔뜩 덧붙여 두고 사라졌구나.’

마법사의 등에는 꿈꾸던 이들이 남겨놓고 간 미련들이 염으로 남아 잔뜩 눌어붙어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처럼 숨을 쉬고 말을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그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딱딱한 숨 덩어리들을.

“이것들이었구먼. 손님, 아파도 좀 참으세요. 이것들을 풀어내야 숨이 편안해지실 거예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는 그것들은 마법사의 등을 관통해 심장에다 빨대를 꽂은 채 가느다란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나눈 숫자만큼 그것들이 덧붙어 있었으니 어쩌면 이제 그것은 군단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매번 그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일이었으니.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마법사의 척추를 따라 눌어붙은 군단을 가르며 매우 단호하면서도 경쾌한 손길로 염체들을 분리해 갔다. 그것들은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이나 실은 연체동물 마냥 매우 연약한 몸체를 가지고 있어 안마사의 손에 쉽게 터져 나갔다. 그들은 안마사의 손길이 자신을 분쇄할 때마다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떡하지..’

그들이 하나둘 바스러질 때마다 마법사는 조금씩 호흡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점점 가벼워지는 숨. 숨. 숨. 그렇다. 숨이 조여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사는 조금씩 가빠지는 숨을 그저 기후 온난화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 더우세요? 더우시면 에어컨을 틀어드릴까요? 이놈의 세상이 불지옥이 되려나 왤케 더운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기침이 나서요.”

“호흡이 부족해서 그러실 거예요. 등이 좀 풀어지고 나면 숨쉬기가 한결 괜찮아지실 겁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한참이나 마법사의 등을 문질러댔다. 그것들은 마치 택배 상자에 쓰이는 완충재처럼 툭툭 머금었던 숨을 터뜨리며 바스러졌다. 안마사는 그것이 재미있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찾아내어 터뜨렸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그것들의 사체 위에다 금목서에서 추출한 오일을 부었다. 그러자 터져나간 그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안마사는 익숙한 손길로 그들의 사체 위에다 뜨거운 타월을 얹더니 염을 하듯 깨끗하게 닦아냈다. 마법사의 등이 매끈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것들도 한때는 미래를 꿈꾸었겠죠? 염이라는 게 대체 어디서 오는지. 이루지 못해 안달인 그 마음, 얻지 못해 갈급한 그 마음 말예요. 말씀하지 않으셔도 상실감이 어떠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렇게나 붙어 있는 걸 보니 마음을 많이 주신 게 틀림없어요. 손님같은 분들을 가끔 보거든요. 어쨌거나 제가 모두 제자리로 잘 돌려보냈으니, 손님은 이제 가벼워지셔도 될 것 같네요.”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마법사의 마음을 읽어내렸다. 그는 두 손을 합장하더니 염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주문을 낮게 읊조렸다.

‘어떡하니 어떡하니. 이 또한 지나갈 텐데 어떡하니.’

염체들의 혼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가 모두 제 주인을 찾아 흩어졌다. 빨대를 꽂아야 살 테니.

“포기한 채 버려둔 꿈이 눌어붙으면 호흡이 조금씩 줄어들지요. 사람들은 그걸 수명이 줄어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의욕을 양분으로 한답니다. 점점 의욕 없는 무의미한 삶 속으로 함께 가라앉는 거예요. 자, 다 됐습니다. 다음은 어디를 풀어드릴까요? 불편하신 데가 또 있으세요?”

“다리가 좀 무겁고 발목이 좀 시큰하네요.”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손으로 마법사의 다리를 하나하나 짚어 내려가다 발목에 이르러서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허 이런, 발목도 말이 아니네? 전투라도 하셨어요? 아킬레스건이 퉁퉁 부어 있네.”

안마사는 마법사의 발목을 감싸 안고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발목이라니. 왜 아니겠는가. 발목 잡던 인간들이 차마 제 손을 끊어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마음이 남아 발목을 붙들었겠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떠나갈 때에도 마음은 여전히 마법사의 발목을 놓지 못했겠지. 그리고 나는 그것들에 붙잡혀 주었어. 그렇게라도 마음을 이어보려고..’

“이거 이거, 어떤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말이 아니네. 제가 오늘 제대로 풀어드릴 테니 마음 놓으세요. 잘 찾아오셨네.”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안마대에 고개를 처박고는 말이 통 없는 이 손님의 직업이 궁금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몸은 자주 만날 수 없는 몸이다.

“예언자 칼카스는 아킬레우스 없이 그리스 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신탁을 받았지요.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하면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지만 전사하여 단명하고 고국에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명예는 얻지 못하나 장수할 운명이라는 신탁도 함께 내려졌지요.”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는 마법사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손을 올리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지게 되므로 종일 손을 하늘로 뻗고 있어야 했던 어떤 마법사의 운명처럼,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었던 또 어떤 마법사의 운명처럼, 마법사는 언제나 꿈의 전투에 초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수명과 바꾸는 일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900년을 살았는데. 생은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영웅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함께, 함께 승리를 경험하고 싶었을 뿐.’

마법사는 다시 혼잣말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문장들을 안마사가 읽었다. 그리고 안마사는 다시 전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전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들을 어떻게든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했지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그 어머니는 아들을 상처 입지 않는 무적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스틱스강에 담갔어요. 발목을 잡은 채 말이죠. 덕분에 우리가 아킬레스건이라 부르는 발목 뒤 힘줄이 그의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죠. 무적의 몸이 두려워할 게 뭐겠어요? 그러나 전사가 되면 아들은 일찍 단명할 운명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안마사는 부드럽게 마법사의 발목을 쓰다듬었다. 마법사의 발목을 단단히 쥐고 있던 두려움 많은 욕체들은 안마사의 손길에 이내 힘이 풀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 쥐고 있던 그 손을 놓기 시작했다.

‘발목이 아니야. 나와 손을 잡아야지. 나는 함께 손을 잡고 싶었던 거라고’

그들은 조금씩 풀어지는 붙든 손을 놓으며 바닥으로 흩어져 내렸다. 이제 저승의 스틱스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어머니가 다시 아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들의 몸을 담그길 기다려야 한다.

‘그때에는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그의 몸의 방패가 되고 갑옷이 되어야 해. 그게 우리의 동역이야.’

마법사는 안마대 아래로 흩어지는 욕체들을 보며 다음 생을 빌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어떤 어머니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도록 무적의 강에 온 몸을 던져야 한다고. 염念과 욕慾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심장에 빨대를 꽂고 발목을 잡아대다간 터져나가는 완충재 신세를 면치 못할 거라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안마사가 나타나 반드시 풀어내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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