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여자도 없는 세계 _ (1) 치유
“자, 이제 들어오세요.”
“네? 아, 네..”
그녀는 익숙한 듯 다리를 벌렸어요. 하얀 시트 위에 그녀의 몸이 조명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죠.
“어디부터..어떻게 들어가죠?”
“나온 대로요.”
“나온 대로라면?”
“머리부터 나왔을 테니.”
“아, 네..”
저는 좀 머뭇했지만, 그러기로 했으니까. 들어가 보기로 했으니까. 머리부터라.. 가능할까 싶었는데 조금 두렵기도 하고. 하지만 믿어보기로 했으니까 머리를 조금씩 밀어 넣어 보았죠.
“이렇게 하면 되나요?”
“네. 천천히. 두려워 말구요. 낯설어 말구요.”
일단 머리를 그녀의 그곳에 대고 이마까지 밀어 넣자, 그녀의 그곳은 입술로 키스를 하듯 제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어요. 좀 더 밀어 넣으려고 하자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멈추라고 하더군요.
“아, 잠시요. 잠시만요.”
“왜요? 아파요?”
“네. 그건 당연하거구요. 잠시 그대로 계세요. 정보가 입력되야 하니까.”
“정보라구요?”
“네. 정보가 들어와야 해요. 당신이 태어나던 당시의 조건을 측정해야 하거든요. 자, 이번엔 얼굴이 위로 오게 돌아누워 줄래요?”
“돌아누우라구요? 네 알겠어요.”
저는 그녀의 요청대로 그녀의 그곳에 머리를 이마까지 밀어 넣은 상태로 돌아누웠어요. 그리고 그대로 멈추었죠. 자세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녀가 하라는 대로.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기겁할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마법사님은 이해하실 것 같아서.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고 실제 일어난 일이랍니다. 지금 저는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네. 됐어요. 이제 조금씩 더 들어오세요. 제 몸은 당신이 열 달 동안 머물던 모태의 조건으로 변화할 거예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이해하고 계신 거죠? 그러니까 당신을 치유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일이 말이에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해보려구요. 그러니까 제가 태어난 모태로 다시 들어가는 거란 말이죠? 당신의 몸에 들어가는 일이.”
“네. 그래요.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세계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누구든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거나 등을 토닥이듯 품어주죠. 아, 물론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휴먼 힐러’라고 부르는 우리 종만 가능하죠. 굳이 학명을 붙이자면 ‘호모 힐리언스’라고나 할까?”
“호모 힐리언스? 인류의 새로운 종인가요?”
“새로운 종? 그렇게 치면 굉장히 많은 종이 있는 거겠죠. 아니면 하나도 없거나. 그보다 우리 세계에선 여기처럼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요. 그건 금지되어 있어요. 사라지기도 했고. 자 이제 더 깊숙이 들어와 보세요. 대화는 계속할 수 있으니까.”
저는 몸을 좀 더 밀어 넣었어요. 뭐랄까? 워터슬라이드 속을 통과하는 것 같으면서, 매우 보드라운 스웨터에 목을 집어넣을 때의 느낌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머리를 감싸 안았어요. 입구를 지나 돌기가 잔뜩 돋은 통로, 그녀의 통로에 진입하자 통로 벽에서 점액질 같은 것들이 잔뜩 쏟아져나와서 제 몸을 적셨어요. 처음에는 흘러나오는 수준이었는데 상체를 거의 다 밀어 넣자 욕조의 수도꼭지를 연 것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상체가 푹 담가질 정도로 흥건해졌어요. 그런데 상체가 팔까지 모두 진입하자 관이 꿈틀꿈틀하더니 좁아지면서 몸을 압착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저기, 잠깐만요! 이렇게 꽉 조이면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괜찮아요. 이제 당신은 숨을 코로 쉬는 게 아니라 피부로 쉬게 돼요. 점액질 액체 속에 산소가 녹아 있거든요. 생소하겠지만 코와 입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쉰다고 생각하고 모공을 여는 상상을 해보셔요. 산소가 들어가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이러다 질식하는 게 아닌가 하고 당황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상상을 하자, 모공이 활짝 열리는 듯하며 신선한 공기가 피부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 기분은 마치 방독면을 쓰고 있다 벗었을 때 같다고나 할까? 숨을 참고 잠수하다 물 밖으로 고개를 막 들어 올렸을 때의 해방감 같은. 벌거벗은 채로 냉기가 잔뜩 품어져 나오는 냉동고? 아니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우나? 암튼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차가우면서도 또한 따뜻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 안으면서 피부와 혈관을 통해 폐 속 깊이 산소가 밀려 들어왔어요.
“오~ 이럴 수가! 정말 피부로 숨을 쉴 수가 있군요.”
“어떠세요? 숨 쉴만한가요? 지금의 호흡은 100%가 아니에요. 당신은 피부호흡에 익숙지 않으니까. 모공에 쌓인 노폐물 때문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 정도로도 평상시 얼마나 호흡이 부족한지 아시겠죠? 익숙해지면 호흡만으로도 대기 중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데. 저도 경험해 본건 아니지만.”
“완전히 다 열리면 어떻게 되죠?”
“그건 저도 해보지 않았어요. 금지되어 있거든요. 어차피 당신은 구강호흡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텐데. 급하고 과도하게 모공호흡을 하면 생체가 교란돼서 호흡이 정지될 수도 있어요.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해요.”
“아~ 그렇군요.”
“자,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 그대로 계세요. 호흡이 안정되어야 하니까.”
상체만 진입한 상태에서, 그러니까 상체를 꼭 붙들린 상태여서 저는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포근하고 아늑한 상태라 그럴 마음이 들지도 않았어요. 따뜻한 액체가 계속 흘러나와 제 몸을 감싸고, 돌기들이 마치 숙련된 어머니의 약손처럼 부드럽게 제 몸을 어루만졌어요. 처음에는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것 같더니 이내 정신이 명료해지고 기분은 차분해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당신은 로봇인가요? 사이보그?”
“아니요. 저는 로봇이 아니에요. 엄연히 사람이랍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람이라구요? 그럼 이런 몸을 가지고 태어났단 말이에요?”
“네, 그렇죠. 이렇게 태어났어요. 음..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러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세계에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요. 당신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일이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필요 없어진 역사 말이에요. 당신의 시대부터 연애, 결혼, 출산 같은 것들이 멈추기 시작했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그것이 시작인가요? 결국 없어졌나요?”
“네. 아무도 하지 않아요. 그리고 구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남여의 성별 구분이 아예 금지되었어요.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나눌 이유도 없는 거죠. 처음에는 성을 자유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그리고 일종의 사회적 금기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서로의 성별을 묻지 않는 예의? 매너?”
“숙녀의 나이를 묻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맞아요. 한동안은 그랬대요.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알아내려 하고 알게 모르게 차별 같은 것들이 계속되니까.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성별 맞추기 내기 같은 걸 뒤에서 한다든가. 성향의 차이인 것을 성별의 차이로 왜곡해서 불이익을 가한다든가. 암튼 성평등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해서 결국 구별금지법이 제정되었죠. 성별이 기록되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사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지만. 성별이 무의미해졌으니까.”
“성별이 무의미해졌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생각해보세요. 만일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심지어 태어난 날도 알 수 없다면 말이에요.”
“마치 신처럼?”
“네. 신은 성별도 나이도 알 수가 없죠. 인간도 그래요. 우리 세계의 인류는 더 이상 생식하지 않아요. 기계로 대체된 노동은 신체적 조건으로 차별, 구분할 요건을 만들지 않게 되었죠. 그러니 성별이 무의미할 수밖에요. 심지어 연애도 하지 않으니.”
“그럼, 종은 어떻게 보존하죠? 생식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요?”
“당신이 살고 있는 때로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낳지 않았고, 그러자 인구의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문제가 되었어요. 이미 태어난 개인이야 자신의 생을 살다 가면 그만인데 사회와 국가는 인구 없이 존속할 수 없잖아요. 존립의 문제가 된 거죠. 사회와 국가 단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기 대안은 이민이었어요. 하지만 여러 차례 세계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국가 단위의 이민은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게 되었죠.”
“그건 무슨 말인가요? 이민이 금지되었다는 얘기인가요?”
“초기에는 그랬죠. 배타적인 민족주의, 자국민 이기주의가 득세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면서 이민도 금지시키면 방법이 없는 거죠. 인류는 세계 경제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버려서 예전처럼 식민정책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는 걸, 경제위기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깨닫게 되었죠. 결국 주요 선진국들이 먼저 한계에 부딪히면서 우리 선조들은 국적이란 개념을 아예 폐기해버렸어요. ‘Where are you from?’은 우리 세계에서 국적을 묻는 질문이 아니에요.”
“그럼 세계 단일국가가 탄생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세분화되었죠.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은 다양한 소속을 가져요. 옷은 어디 브랜드를 입고, 신발은 어느 브랜드, 좋아하는 향수는 또 어떤 브랜드, 하는 것처럼 복지는 어떤 커뮤니티를 통해, 직업은 또 어떤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와 종교는 또 다른 커뮤니티 등등. 사람들은 다양한 소속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니 하나로 분류될 수는 없어요. 그냥 나는 나인 거죠.”
“그렇군요. 뭔지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런데 성별 구분은 어떻게 없어졌죠?”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시간으로만 몇 세기를 떨어져 있으니 해야 할 이야기가 많군요. 저도 역사책을 통해서 배운 거라. 아무튼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인류는 부의 평등을 이루게 돼요. 물론 빈부격차도 여전히 존재하고 위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는 아니죠. 그런데 부가 인류 전체에 적절하게 배분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자, 사람들은 오히려 정서적으로 빈곤해졌어요. 생존 욕구는 생식의 본능과 직결되는 것이거든요. 생존의 욕구가 해결되자 생식의 본능도 사라진 거죠. 슬프게도.”
그녀는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잠시 숨을 멈춘 듯 보였어요. 아마도 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새롭게 자세를 잡더군요. 그리고는 저를 삼킬 듯이 말했어요.
“자, 이제 완전히 들어오는 거예요. 한 번에, 단숨에.”
마치 출산 장면을 거꾸로 돌리듯, 저는 단숨에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저의 온몸이 그녀의 산도? 통로로 빨아들여졌고, 제 몸은 점액질로 범벅이 되어 그녀의 몸속에 담겼죠. 담겼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군요. 마치 양수가 가득 찬 거대한 자궁에 푹 담겨진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고향에 돌아온 듯 말이죠. 잊었던 모태에서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나는 듯했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당신의 몸과 마음은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상태로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우리의 생각과 감정, 기억들을 동기화시킬 거예요. 잠시 기다리세요.”
아마도 외부에서 보면 제 몸이 그녀의 몸에 삼켜진 듯 보였을 거예요. 마치 제가 그녀를 입은 듯 말이죠. 우리의 몸은 완전히 일체를 이루었어요. 그러면서도 그녀의 몸 안에서 저는 마치 거대한 풀장에 잠수한 채로 둥둥 떠다니는 인형 같았죠. 그러다 탯줄 같은 것이 제 몸 위를 훑더니 배꼽을 푹 쑤시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놀라지 말아요. 동기화를 위한 작업이니까. 이렇게 해야 우리가 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요.”
탯줄 같은 것이 연결되자 수많은 장면들, 정보들이 배꼽을 통해 신경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가보지 않은 세계의 역사들이. 그녀와 미래의 인류가 경험한 사건, 감정, 생각들, 기억들이 폭포수처럼 제 의식 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속도감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자극적이었는데 그녀의 손이 제 손을 감아쥐자, 아,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일체화되어 있는 상태라 그녀가 손을 쥐면 제 손을 감아쥐는 형태가 되었는데, 그러자 정보들이 정렬되기 시작했어요. 속도감이 낮아지고 천천히 안정된 속도로 입력되기 시작했죠. 저는 그녀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저의 것도 그녀에게.
“아.. 그렇군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졌네요. 사람들이 이름으로만 서로를 구분하는군요. 국적도 성별도 없다니. 마치 존 레넌이 상상한 세계 같군요.”
“네 맞아요. 하지만 존 레넌은 성별이 없는 세계, 사랑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진 않았죠. 남과 여의 구분을 없애고 부가 평등을 이루자 생식도 멈추었어요. 당신의 시대에 섹스라, 사랑이라 불리던 것들도. 쾌락과 감각에 관한 것들은 수많은 장치? 도구? 존재? 들이 개발되어서 실제를 100% 구현하고 있어요. 물론 그것들도 한계는 있죠. 가상이지 실제가 아니니까. 감각으로는 완벽해도 정서적으로는 늘 결여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영혼의 교류는 관두더라도. 하지만 인류는 그걸 극복하지 않기로 했어요. 기존의 방식을 되살리기엔 용기가 없어진 거죠. 사람 대 사람으로의 리얼한 관계로 돌아가면 수많은 갈등과 불편한 감정 교류를 감당해야 하니까. 그럴 만큼의 욕구는 아닌 거죠. 즐길 것은 많으니까.”
“생식은 유전자 결합으로 대체되었군요.”
“감각과 쾌락은 뇌로 직접 연결되었구요.”
“그럼 사랑은요?”
“이성 간의 사랑은 인류애로 대체되었어요. 연대와 우정 같은 것들이 더 강화되었죠.”
“성기는 필요 없어졌겠군요.”
“퇴화되고 있죠. 사용할 일이 없으니까. 꼬리나 맹장처럼”
“좀 끔찍한데요. 그럼,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죠? 아, 입력되는 정보들 사이에서 몇 가지 영상들이 보여요. 거대한 정자은행과 대리모로 보이는 여성들이 시술받는 장면, 그리고 공장 같은 분만실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들.”
“그 기억은 옛날 방식이에요. 한동안은 그렇게 생식을 하기도 했대요.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계속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자, 그 방식도 전면 금지되었어요. 그리고 남여 구분을 없애고, 사랑도, 섹스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성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어요. 그건 본능이었는지. 남자와 여자, 이성으로 나뉘어 결합하는 일은 멈추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어 하는 모성은 사라지지 않은 채로 계속 유전되었어요. 한때 래디컬한 페미니즘을 계승하는 집단들이 정책을 주도하면서 모성에 관한 유전자를 모두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매번 되살아났어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이것은 우주의 근본 같은 것인가 봐요. 그런데 모성 유전자를 제거하는 시도 중에 여러 돌연변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자웅동체 같은 종이 나타나기도 했어요.”
“자웅동체라구요? 성령으로 잉태하는 그런 것 같은 건가요?”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수정과정이 하나의 개체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되지 못한 채 일찍 죽었어요.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거든요. 결국 인류는 음양의 조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죠. 서로 다른 것들의 결합으로부터 생명이 탄생한다는 진리를.”
“그럼, 다시 성별이 나뉘게 되었나요?”
“그럴 리가요. 편리를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 역시 어디로 간 게 아니죠.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대로예요. 다만, 유전자 결합이 다양하게 시도되던 과정에서 모성애와 부성애가 극단화된 돌연변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이들을 ‘호모 페어렌츠’라고 불러요. ‘모든 이들의 부모’라고 할까? 그들을 통해서 생식과 육아가 행해지죠. 법적으로 그들은 생식과 육아에만 종사해요.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에만 전념하죠. 사회에서도 이를 위한 모든 기반을 제공하고 철저하게 보호해요.”
“음, 그러니까 여왕개미와 숫개미처럼 말이죠?”
“네. 그들은 출산과 양육만 하니까. 나머지 일상은 일개미? 일하는 사람들이 수행하고. 뭐 대부분 AI들이 대신 하지만. 호모 페어렌츠는 일종의 법적 신분이에요. 호모 페어렌츠의 유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일반인이어도 원한다면 누구든 호모 페어렌츠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엄격한 교육과 테스트의 과정을 거쳐야 하죠. “
“일종의 부모 자격증 같은 것이군요.”
“네. 유전적 호모 페어렌츠들을 제외하고는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생식과 육아에 참여할 수 있어요. 우수한 자녀들을 양육해낸 호모 페어렌츠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영향력이 커지죠. 그들이 길러낸 아이들은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두각을 나타내요. 각 커뮤니티에서는 매해 성인식을 마치면 앞다투어 그들을 모셔가려고 경쟁하죠. 그래서 요즘은 호모 페어렌츠 라이센스를 따기 위한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도 호모 페어렌츠인가요?”
“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한숨 주무셔요. 꿈속에서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으니까. 동기화가 거의 완료되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자장가 같은 것이 들려 왔어요. 아니 그건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바로 그 자장가가 맞아요. 의식을 동기화한다더니 제 기억에서 잊고 있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찾아내었나 봐요. 그리고 잠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꿈속으로 빠져들었죠.
_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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