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개업

 

 

 

 

 

손님은 없다. 오늘은 20세기 카페의 정식 개업 날이다. 그러나 오후가 다 되도록 손님은 없다. 그나마 손님이라곤 횟집 사장이 가게 오픈 전에 마수걸이해 준다며 마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간 것이 전부다. 새로 개업하는 가게는 어디든 오픈빨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하필 토요일이라 인근 직장인들도 출근을 하지 않았고, 주말 나들이 손님들도 이곳 구석진 골목까지 들어찰 만큼 경기가 회복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을 줄이야. 아이작은 어쩌자고 이런데 자리를 잡았담.’

20세기 카페는 아이작 요원의 가게이다. 그는 여전히 연인 에이전트 세븐을 찾아 시공간을 수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관한 前史는 M.멀린의 <미래도시건설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뒤를 쫓는 일에 한계를 느낀 그는 방법을 바꾸어 각 세기의 시공간 여기저기에 에이전트 세븐이 들릴 만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라면 이런 곳을 찾을 거야.’ 그리고 그 공간들을 모두 포탈화해서 그녀의 행적이 드러나면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20세기 카페는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 구축된 포탈인 것이다. 현재 아이작 요원은 일본의 하코다테와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그리고 프랑스 북부의 도시 릴에 또 다른 사이트 개설을 준비 중이다. 이곳은 마법사 멀린에게 맡겨두고.

“말은 바로 해야지. 원래 릴은 예정에 없던 곳이었어. 아이작에게 릴을 소개해 준 이는 저 아랫 골목에서 호프집을 하던 바로 그 평론가 양반이라고. 아이작의 사랑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며, 에이전트 세븐이라면 어쩜 릴에 들를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이 한 번 가서 찾아보겠다고 했다지. 릴도 성형요새의 도시라면서.”

평론가 양반? 기억하시는가? <조선횟집> 추방기에 등장했던 그 평론가 말이다. 마법사가 불쑥 끼어들어 말참견을 하고 있는 것은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 평론가라는 사람이 자신이 직접 릴에 가서 에이전트 세븐을 찾아보겠다고 하고선, 갑자기 변심하여 바누아투로 망명을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개업을 준비 중이던 카페는 마법사의 몫이 되었다. 아이작은 릴이 Star Fort, 성형요새의 도시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그곳 역시 에이전트 세븐이 나타날 확률이 높은 곳이라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직접 릴로 떠나게 된 것이다.

“빚을 좀 졌지. NFT 카드 한 장을 아이작에게서 받았는데, 그게 얼마짜리라더라? 암튼 앞으로 가치가 엄청나게 폭등할 거래. 그러니 먼저 값을 좀 치르라길래, 그냥 몸으로 때우겠다 했지. 그랬더니 여기 카페를 좀 맡아 달라더군. 뭐 어렵겠냐 싶어 알겠다 했는데, 이게 좀 신경 쓸 게 많아. 성가시네. 지루하고.”

아이작은 성형요새가 있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포탈을 구축하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포탈은 시공간을 이동하기에 적합한 요새들을 가지고 있었고, 주요 포인트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주로 카페나 서점, 게스트하우스의 형식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에이전트 세븐의 취향과 흥미를 끌 만한 컨셉으로. 서울의 포탈은 20세기 컨셉의 카페였다.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20세기 유럽의 어느 살롱에서 끊겼다지. 아마? 그래서 공간을 모두 20세기 살롱의 컨셉으로 구축하고 있다는데. 좀 구려. 낡았어. 이딴 식으로 해 놓으면 이상한 아저씨들만 꼬이지 않겠어? 아~~흠.”

마법사는 자꾸 삐져나오는 하품을 멈출 수가 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카페라니. 생전 팔자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카페를 다 운영하게 되었다. 커피도 내릴 줄 모르고 가게도 운영해 본 적이 없는데. 남의 카페라고는 하지만 책임이 주어진 이상 기본은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마법사일지언정 자유롭지 못하다. 커피에 마법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메뉴에 마법을 걸어놓으면 대박 좀 치겠지만. 그럼, 손님들이 넘쳐날 거고 나는 쓸데없이 바빠질 거 아니야. 내 돈 버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건 뭐 규정 위반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메리카노 하나에만 마법을 걸고 나머진 일반적인 레시피를 따르기로 했어. 아, 마메리카노는 비싸. 한 잔에 2만원이라고. 하지만 한 번 마시며 끊을 수가 없지.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그러나 마법을 걸어 놓아도 누가 사 마셔야 마법에 걸릴 것 아닌가. 아무도 찾지 않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매우 지루하고 무료한 일이다. 게다가 임대료와 운영비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면 머릿속은 걱정과 염려로 금세 가득 차 버린다.

‘거미가 된 것 같아. 먹이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거미. 자영업이란 이런 것인가?’

늘 능동적으로 운명을 찾아, 인연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던 마법사는 거미처럼 고정된 삶이 낯설다. 누가 찾아주지 않으면 아무와도 상호작용할 수 없는 자영업자의 운명은 자유업자로 살아 온 마법사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이방의 세계이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으면 서서히 망해가는 거구나. 자영업이란, 남들에게 나의 명줄을 내어놓고 굶다 말라비틀어질지도 모를 운명을 등에 지고 시작하는 일이구나. 거미들도 그런 심정일까? 하긴 거미들은 맘에 안 들면 좋은 몫을 찾아 새로 거미줄을 치면 그만이잖아. 자영업은 그럴 수도 없고. 한번 거미줄을 치면 거기서 쇼부를 봐야 하는 거네. 그렇게 몫이 중요한데 아이작은 우째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담.’

마법사는 아이작의 안목을 의심하고 있다. 물론 요원으로서, 또 연인을 쫓는 사랑꾼으로서, 자신만의 목적에 맞는 공간을 찾아냈겠으나, 카페, 자영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상 매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데, 공간의 위치나 몫을 보아하니 입에 거미줄이나 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매출을 올리지? 카페를 맡아달라고 했으니 월세랑 운영비는 벌어야 체면이 설 텐데. 지나가는 유동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전에는 당구장이었다니 단골손님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뭔가 이벤트라도 해봐야 하나? 쿠폰을 마구 뿌릴까? 아.. 이거 장사를 해봤어야지.’

마법사의 마음에 점점 근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 몰라라 하고 운에 맡겨둘 수도 있으나 명색이 마법사 체면이 있지, 카페 하나도 건사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소문이 동료 마법사들 사이에 퍼지면 마스터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쪽팔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줄을 쥐고 있는 연금술사들의 귀에라도 들어갔다간, 그러잖아도 겨우 입에 풀칠할 수준인 마법 자금의 예산이 더 타이트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연금술사 자식들, 지들은 말로 금을 만들어 내면서 예산은 왜 짜게 주는 거야. 작년에도 10% 삭감하겠다길래 내가 그랬다간 엑스칼리버를 아예 부러뜨려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는데. 카페 망했다는 소문이라도 들어가면 이놈들 가만 안 있을 텐데. 아 짜증나..’

마법사는 생각할수록 짜증이 솟구쳤다. 쥐꼬리만 한 예산에 기댈 바엔 이참에 마스터 진영에서 독립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카페 운영에 성공할 수 있다면 연금술사들과의 신경전에 더 이상 정신머리를 소모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 이참에 아예 자립을 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 기왕에 카페 운영하는 거 대박을 한 번 내봐. 음.. 뭐가 좋을까? 아, 컨셉이 20세기의 살롱이라고 했지? 살롱이라.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사람들이 매일 죽치고 찾아드는 아지트 같은 거 말이야. 마법은 쓸 수가 없고 F&B는 해본 적이 없으니 분위기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 그래도 명색이 커뮤니티의 마법사 아닌가!’

마법사의 주 전공은 커뮤니티와 타이밍이다. 커뮤니티의 설립과 성장에 관련된 마법을 주관하는 마법사로서, 특히 개인의 인생과 관련해서는 운명적 타이밍을 읽는데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동료 마법사들조차 자신들의 진로와 관련하여 그에게 타이밍을 묻는 일이 많았다. 지금 해도 좋을지, 말아야 할지, 접어야 할지, 나서야 할지. 그리고 이 카페 역시 그 운명의 타이밍 안에 들어온 거라 직관하였기에, 그 역시 흔쾌히 이곳의 운영을 맡아보겠노라 응했던 것이다. 물론 아이작의 릴 행 역시 그의 운명적 타이밍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 공간을 잘 운영하여 다른 포탈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인데, 마법사는 이곳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보면 어떨까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을 모아보는 거야. 아니, 사람들이 머물게 하는 게 중요해. 한번 걸려든 사람이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게 찐득찐득한 관계망의 점성을 유지해야 해. 그러려면 술도 좀 팔아볼까? 끈적끈적한 관계를 만드는데는 알콜이 딱인데 말이지. 마법을 걸 수는 없으니 술로 사람들의 눈을 좀 풀어놓고 경계를 풀게 만들면, 끈적끈적한 상처들을 서로 주고받고 위로하고 동정하고 그러면서 마구 얽혀들게 마련이지. 한 번에 벗겨 먹지 말고, 자신들끼리 감정을 마구 교환하며 증식할 수 있게 커뮤니티를 형성해 주어야지. 이곳이 천국이라고 느끼게 말이야. 그래야 여기다 뭘 막 낳을 거 아니야. 주고받고 낳고 하다보면 거미줄이 끊어질 만큼 북적북적해지겠지. 그럼 나는 뭐, 하는 것도 없이 풍족한 먹잇감들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거지. 흐흐흐’

망상에 빠진 마법사가 음흉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의 마음이 세상 염려에 휩싸여 혼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미 같은 인생을 한탄하다 도리어 거미처럼 먹잇감이 될 사람들을 포획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의 팔과 다리의 관절들이 모두 분리되기 시작하더니 마치 거미 다리처럼 여러 개의 다리가 뻗어 나왔다. 그리고 입이 툭 삐져나와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크게 하품을 하는데,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검은 입김이 카페의 모든 전등과 유리창을 어둡게 감싸버렸다. 칠흙 같은 어둠에 잠긴 20세기 카페는 이내 청력을 소실 당한 듯 침묵에 휩싸였고 공간의 모든 요소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덜덜거리며 돌아가던 환풍기도, 낮은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던 냉장고도, 에스프레소 머신도 모두 잠잠해지고 거미처럼 변해버린 마법사 역시 이내 코를 드르렁거리며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아..흠 왜 이렇게 졸리지. 손님이 올지도 모르는데. 손님.. 손님..’

 

* 거미가 된 마법사의 꿈

꿈속에서 마법사는 카페 천장 구석에 쳐진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다. 물론 그의 몸은 털이 숭숭 난 검은 거미의 모습 그대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그들은 모두 얼큰 술에 취한 듯 보였다. 마법사는, 아니 거미 마법사는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귀를 기울여 보았다. 다들 신이 나서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지 창밖에는 주변 상인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듯 보이는 경찰과 사이드카가 보이고, 꿈속 주인장 마법사는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실내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 어제 산 코인이 오늘 새벽에 만배나 폭등해 떼돈을 벌었다며 골든벨을 울리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행복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본주의 댄스’라 명명한 춤을 모두 제각각 제멋대로 추어댔다. 흥분이 고조되자 어떤 이들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행복이라며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마구 자랑하듯 꺼내놓고, 사람들은 함께 울고 위로하며 동정과 연민의 술잔을 더하더니, 우리의 사랑은, 운명은, 관계는 영원할 거라고 서로에게 신중치 못한 약속을 날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거미 마법사는 고작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무슨 영원을 이야기하는가 의아해했으나, 술에 취해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매우 불안하고 미숙해 보였다.

그러다 누군가 주크박스로 뛰어 들어가 80년대 동경에서 유행하던 시티팝을 틀자,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모두들 무아경에 빠져들어 아무하고나 키스를 해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서로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충고랍시고 서로의 뺨을 때리더니 마침내는 너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는 둥, 저 새끼 마음에 안 드니 내쫓으라는 둥, 얼마면 되냐며 여기 이 사람들을 다 돈으로 사버리겠다는 둥 마구 무례한 언동을 내뱉으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참나, 내가 이런 꼴을 보자고. 쉿!”

마침내 보다 못한 거미 마법사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소리를 내자 시간이 멈춰버렸다. 쉿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뻗어나간 거미줄은 사람들을 모두 꽁꽁 묶어버렸다. 카페는 이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공간에는 사람들이 열광하던 시티팝만 홀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突然のキスや熱いまなざしで
갑작스런 키스나 뜨거운 눈길로

恋のプログラムを狂わせないでね
사랑의 프로그램을 망치지 말아줘

出逢いと別れ上手に打ち込んで
만남과 이별을 적절히 입력해서

時間がくれば終わる Don’t hurry!
시간이 되면 끝나 Don’t hurry!

ささやく声がしても Don’t worry!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도 Don’t worry!

I’m just playing games
난 단지 게임을 하고 있을 뿐,

I know that’s plastic love
나도 알아 이게 가짜 사랑이란걸

Dance to the plastic beat another morning comes
가짜 비트에 춤을 추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지

뚜벅뚜벅 덜컹, 시간이 멈춰버린 카페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주인장 마법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거미대장이자 대마법사 이도였다. 거미대장은 혀를 끌끌 차며 주인장 마법사를 타박하고 있었다.

“쯧쯧, 이것 좀 보십시오. 커뮤니티가 무슨 장난입니까? 미숙한 이들에게 검을 함부로 쥐여 주는 게 아니에요. 마음과 뜻과 정성으로 조심스럽게 쌓아가야지. 아니 주인장, 이거 당신 직무 유기 아닙니까?”

“아.. 이런, 죄송합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긴 했는데. 일단 카페 매출을 정상화시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급해서 그만..”

“마법사님. 제가 밖에서도 얘기했지만, 요즘 사람들이 공동체가 뭔지 압니까? 함께 살아봤어야지요. 물론 사랑은 더 그렇습니다. 읽고 배워서 아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사랑을 알고 그렇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사랑은 상처핥기가 아니잖습니까? 주인장, 그렇잖아요? 대답해 보세요. 사람들의 연약하고 예민한 감정선을 자극해 매출을 올리려고 했다면 이건 마법 법정에 기소해야 할 중요한 범죄예요.”

“네.. 저.. 그러니까.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니 의도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지만.. 다만 그런 방법들이 촉매는 될 거라고. 그러니까 단단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미숙할 줄은 미처..”

“어허. 핑계 대지 마세요. 사람들이 아무리 미숙하다 한들, 길을 열고 안내하는 건 마법사의 몫 아닙니까? 불안하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죠. 얼마나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입니까? 사랑과 공동체. 커뮤니티와 상처 같은 것들 말예요.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아닙니까? 기대와 환상이 커지면 그만큼 실망하기 마련이고, 그 양극 사이를 오가다 보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어지죠. 거리를 두고 탐색하던 신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폭주하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 마구 서로에게 투사하기 시작하면 공동체가 일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쯤은 커뮤니티 개론 시간에 충분히 배웠을 텐데요? 그리고 아직 공동체는 시작된 것도 아니죠. 폭풍기를 수도 없이 지나고, 이러저러한 감정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애증을 헌신으로 변환시켜 가는 것이 공동체 아닙니까? 누구나 미숙할 수는 있어요.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랑과 공동체 같은 것들은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매번이 처음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례는 다르죠. 미숙하다고 모두 무례한 것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서로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정중한 분위기를 유지했어야죠. 사람들이 예의와 매너를 놓지 않도록 주위를 기울여야 하는 게 마법사의 역할 아닙니까? 이게 뭡니까? 아무하고나 키스를 해대더니 서로 뺨을 때리지 않나. 요즘 같은 세상에 어쩌자고. 쯔쯧.”

주인장 마법사는 대마법사 이도에게 혼쭐이 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거미줄에 꽁꽁 묶여 차가워지고 있고, 서슬 퍼런 대마법사 이도의 호통에 실내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었다. 영원을 약속하던 사람들 사이에 오해와 의심이 자리를 잡자, 그들을 둘러싸 버린 거미줄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며 보호막처럼 그들을 가두었다. 아니 상처받은 마음은 단단해진 거미줄 보호막을 도리어 반기며 방어기제를 얻었다고 기뻐하기까지 했다. 자, 이제 다시 고립이다. 딱딱하게 굳은 거미줄 더미를 고치 삼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 카페를 떠나기 시작했다. 카페는 다시 적막에 휩싸이고 텅 비어 갔다. 이 광경을 천장에서 바라보는 거미 마법사의 마음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마음들은 커뮤니티를 이룰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은 어떻게 치유되고 성장할까? 공동체는 성숙한 이들로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닫힌 마음을 열 것이며, 열렸으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마음이 어떻게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갈등 속으로 나아갈까?

‘아아악, 모르겠다. 어려워 어렵다고!’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주인장 마법사는 근신이 필요할 듯싶소. 어쨌든 규정 위반이 명백하니 과태료로 신장을 압수하겠소. 자 이리 오시오.”

“네? 신장이요? 신장을 압수한다고요?”

“신장 몰라요? 콩팥 말이요. 노폐물, 독소를 걸러내는 콩팥이 제 기능을 못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오. 일단 압수해다가 마스터 전담 병원에서 기능 검사부터 해봐야겠으니 어서 내놓으시오.”

“아니 그럼 저는 콩팥 없이 어떻게 삽니까?”

“콩과 팥이 든 붕어빵을 아침저녁으로 두 개씩 드시오. 물도 28컵씩 마시고. 그런대로 버틸 만할 거요. 자, 어서 이리 내시오.”

“붕어빵이라구요? 아아아악 이게 뭐야.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머리를 쥐어뜯던 거미 마법사는 비명과 함께 깨어났다. 창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 있고 마법사가 깬 자리에는 침이 흥건했다. 그 바람에 베고 자던 책이 젖어 버렸다.

‘아, 이게 무슨 꿈이지. 기분 참 더럽구만. 책이 다 젖었네. 이거 아이작이 보던 책인가 본데, 큰일이네. 근데 무슨 책이지?’

마법사는 티슈를 뽑아다가 젖은 책을 닦으며 펼쳐진 부분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초심자들이 셋째 죄종인 사음을 두고 흔히 가지는 다른 불완전들

1. 많은 초심자들이 내가 낱낱이 들고 있는 허물보다 훨씬 더 많은 불완전을 가지고 있지만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 그만두고, 다만 몇 가지 중요한 것 – 허물의 원천과 동인(動因) 같은 것이나 말해두고 싶다. 사음의 허물에는 (영성인들이 사음죄에 떨어지는 경우는 여기서 제외하고 나는 다만 어둔 밤으로 정화되어야 할 불완전을 다루려 한다.) 여러 가지 불완전 말하자면 영성적 사음이라 부를 수 있는 불완전이 있다. 영적인 사음이 사실상 있대서 가 아니라, 영성적인 것에서 좇아오기 때문인데 흔히 보면 심령 수행을 하는 도중에도 손 하나 쓰지 않는 채 사음의 충동과 행위가 감성 면에 일어나고 영혼이 기도에 잠겨 있거나 고해와 성체성사를 받고 있는 때에도 그런 수가 있다. 그야말로 손 하나 쓰지 않은 채 일어나는 이 일들은 세 가지 원인 중 그 어느 하나에서 오는 것이다.

2. 첫째는 대개 본성이 영성의 일에서 느끼는 맛으로부터 온다. 영과 감정이 함께 기꺼운 일에 있어 사람의 각 부분은 제 나름의 특성과 분수에 따라 기꺼워한다. 이때 윗부분인 영은 하느님의 맛과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아랫부분인 감성은 감각의 맛과 낙으로 움직여진다. 감성은 다른 것을 가지지도 가질 수도 없는 만큼 이때 제게 가장 가까운 것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곧 부정한 감각이다. 예를 들면 영혼이 그 얼로는 하느님과의 깊은 기도에 잠겨 있는데 한편 감성으로는 (비록 본인이 못 견디게 싫어해도) 관능의 반항과 충동 및 행위를 느끼는 그것이다. 이런 일이 종종 영성체 때에 일어난다. 즉 영성체는 사랑의 행위로서 영혼은 주님이 내리시는 기쁨과 진미를 그 안에서 받고 감성은 제 나름의 기쁨과 낙을 또한 맛보는 것이다. 결국 이 위아래 두 부분은 그 주체가 하나로서 어느 하나가 무엇을 받을 경우, 둘이 다 제 나름대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바, 무엇이든 받아지는 것은 그 받는 자의 나름대로 받는 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초심자로 있을 때는 물론 영혼이 상당히 진보했을 때라도, 감성이 완전치 못한 탓으로 그 불완전을 가지고 하느님의 영을 받는 일이 자주 있다. 이 감성의 부분이 우리가 앞으로 다룰 어둔 밤의 정화로 말미암아 새롭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런 약성(弱性)이 없을 것이니, 그때엔 받는 것이 감성이 아니라 도리어 영 안에서 감성이 받아지는 것, 그러기에 그때 가서는 일체를 영의 나름대로 받게 될 것이다.

3. 감성의 반란을 때로 일으키는 원인은 악마인데 이놈은 영혼이 기도 중에 있거나, 혹은 기도를 하려고 할 때 불안과 동요를 부채질하여 그 본성 안에 부정한 충동을 일게 한다. 만일 거기에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쓰는 날이면 영혼은 크나큰 해를 입게 된다. 왜냐하면 악마가 노리는 대로 영혼이 부정한 충동을 무서워하여 이와 싸우다 보면 기도가 힘없이 될 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아주 기도를 놓아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필이면 기도하는 때에 다른 때보다 잡스러운 생각이 더욱 일어나는 줄로 아는데, 사실 그렇기도 한 것이 악마는 다른 때보다도 이런 기도 시간에 훨씬 더 많은 동요와 교란을 불어넣어서 영적 작업을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심지어는 추잡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 보이는 수가 있는가 하면, 어느 때는 이런 것들과 영혼을 덕에 나가게 만든 거룩한 누구 거룩한 무엇과 관련을 지우기까지 하여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이런 따위에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면 아무것도 보고 생각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니 생각하려 들면 즉시 이런 것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경우에는 이 결과로 얼마나 슬픈 생활을 하는지 여간 동정이 가지 않는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런 고통이 닥치면 얼마나 괴로운지 꼭 악마에게 접신이나 한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비상한 분투와 노력으로 이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벗어날 자유마저 잃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통해서 추잡한 일들이 일게 될 경우, 그 증상이 낫기 전에는 잡념을 벗어날 수 없으나 어두운 밤이 영혼에 찾아들면 차차 그 모든 것을 여읠 수 있으므로 가능하다.

‘어렵군. 어려워.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아이작은 뭐 이런 책을 다 읽는 거지? 에이전트 세븐 못 찾으면 아예 머리 깎고 수도원에라도 들어갈 생각인가?’

중세 수도자의 내밀한 영적 기록처럼 보이는 고서를 계속 뒤적여 보지만 마법사는 좀처럼 복잡한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단순한 생각으로 카페 매출을 올릴 방법을 찾았을 뿐인데, 전공이 전공인지라 또 커뮤니티를 떠올렸고, 그것의 끝은 이제까지 마법사가 경험 한 수많은 커뮤니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어둔 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기억은 사라져도 존재는 반복되지. 나는 어떤 생에, 어떤 꿈을 꾸어도 그들과 마주치게 될 거야. 다만 모두 성장해 있기를, 성장하는 중이기를 바랄 뿐이지.’

골목에 어둠이 내리고 보름달이 떠오르다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개업 첫날을 공치고 이대로 카페를 닫아야 하나 마법사의 마음도 따라 어두워지고 있는데, 그때 한 커플이 20세기 카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앗, 첫 손님인가? 드디어 손님인가?’

마법사는 자못 기대하는 눈으로 커플의 걸음을 쫓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걸어오던 커플이 마침내 카페 앞까지 이르렀는데. 그런데 카페 문을 열다 말고 현관 입구에 마주 서서 서로를 빤히 마주 보더니 그대로 얼어붙은 사람들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뭐야? 키스라도 하려는 건가. 추운데 들어와서 하지. 커피도 좀 시키고. 자리는 얼마든지 비켜 줄 수 있는데.’

마법사는 마음이 급했다. 이대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드디어 영업 개시를 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개업 서비스로 뭘 내놓을까? 머리가 핑핑 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커플은 좀처럼 카페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야외 테이블에 남자가 푹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여자는 뒤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아하.. 이런. 키스하려는 게 아니고 싸우고 있었나 보네. 괜찮으니까 들어와서 싸우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도 울고 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고, 뒤돌아 서 있던 여자는 남자에게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더니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남자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가버렸네. 가버렸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법사는 마음이 우울해졌다.

‘저들도 사랑을, 영원을 약속했겠지. 그런데 저렇게 빼버리면 그만이야. 놓고 가버리면 없었던 게 되어버리고 만다고. 기억도, 추억도..’

“마법사님, 그래서 포기할 건가요? 두렵나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은 남자의 어깨 위로 구름에 가려져 있던 보름달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부서지는 빛들 사이에서 마법사의 대모인 천년여왕 마들렌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시네요. 여왕님. 절 언제나 버려두고 제멋대로 나타나시다니.”

마법사는 반가운 건지 미운 건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는 카운터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서 말했다.

“마법사님, 마음이 다 타버리셨군요. 이구 어쩌나. 저는 한시도 마법사님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어요. 잘 아시면서.”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그렇게 달나라에 숨어 계시면 제가 절 보고 있는지 딴짓을 하고 계신지 어떻게 압니까?”

“마법사님! 칠칠맞지 못하게 자꾸 칭얼거리실 거예요? 누구는 지금 사랑 찾아온 시공간을 뒤지고 다니는데, 고작 카페 매출이나 올리겠다고 생각해 낸 게 사람들한테 술을 먹여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하찮은 아이디어나 떠올리신 분이 누구신데.”

“쩝, 그건 그냥 생각해 본 거예요.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럼 어떨까 생각만 해봤다구요.”

“그런데 왜 그렇게 상심했어요? 아이작이 20세기 살롱을 컨셉으로 이 공간을 설계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모르실 분이 아닌데.”

“네네 잘 알죠. 결국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야 에이전트 세븐이 나타나리라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에이전트 세븐은 제 연인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NFT 카드값을 몸으로 때우고 있을 뿐이라구요.”

“그 NFT 카드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죠?”

천년여왕은 아이작이 마법사에게 준 NFT 카드에 무엇이 그려져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법사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당장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

“말씀 못 하시겠죠? 괜찮아요. 저는 다 알고 있으니까. 명색이 마법사님의 대모니까요. 대모가 왜 있겠어요. 미숙하기 때문이에요. 마법사님도 처음부터 마법사였던 건 아니죠. 제게 맡겨졌을 때는 그저 가능성이 충만한 어린 마법사 지망생일 뿐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카드에 다 적혀 있죠? 시작은 다 그런 거예요. 어떤 시작이 완성이겠어요.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도 역시 그렇죠. 완성된 사람들의 공동체 따위는 없어요. 완성된 존재들은 더더욱 홀로 되고 외면당하죠. 그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이들만이 완덕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선택의 문제일 뿐이에요. 마법사님이 전공을 커뮤니티로 선택했을 때에는 불완전한 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하신거잖아요? 부딪히고 깨어져도 연결되고 결합되는 방식으로, 분열의 방식이 아닌 융합의 길로 완덕에 이르겠다고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것의 시작이에요. 누가 누구의 뺨을 때리고, 누가 누구에게 무례한 경거망동을 남발해도 시작은 늘 거기서부터라구요.”

“시작이라구요? 다들 그 지점에서 도망가버리는데요?”

“사랑은 열정을 불러일으키죠. 미숙한 사람들은 사랑과 미움을 다룰 줄 몰라요. 불타오르는 열정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감당해야 할 차이는 쉽게 미워해 버리죠. 단정 짓구요. 게다가 일체감을 경험한 미숙한 마음은 열정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을 빠르게 탐색하죠. 그리고 이건 사랑이라고 단정 지어버려요. 한 사람에 대한 사랑,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사랑. 공동체를 구축하는 구성원들 각자의 열정과 에너지를 한 사람에게 투사해서 자신은 이 사람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고 규정해 버리죠. 그건 쉬우니까요. 그리고 내가 경험하는 이 열정이 온통 이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다음은 뻔하잖아요. 이 사람만 가지면 되니까요. 복잡할 것 없이 한 사람만 소유하면 되니까. 그건 가짜 사랑이에요. 진짜 사랑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죠. 차이가 가져다주는 미움과 자존심을 위협하는 무례를 넘어서 말이에요. 다들 도망가 버렸다구요? 마법사님이 도망치고 싶은 건 아니구요?”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공동체를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

“반지를 빼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계속 간직하고 기다리는 일은 성장하는 일이죠. 그녀가 다시 돌아오건 돌아오지 않건 말이죠. 게다가 찾아 나서는 일은 위대한 일이죠.”

“쩝. 그런 건 위대하신 아이작 요원 같은 분이나 하시는 거고. 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거미처럼 운명이나 기다려 봐야죠.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으니.”

천년여왕은 날개를 활짝 펴서 마법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법사의 거칠어졌던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생각했다. 분열되었던 공동체들, 영원을 말하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 낯선 감정들, 날 선 말들. 그리고 반복되었던 이별과 헤어짐들. 마음을 닫아건 건 마법사였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며 제자리를 지키는 이 역시 마법사였다. 20세기 카페도 그런 역사를 한 층 더 쌓는 시도가 될지 모른다. 물론 상처와 실패도 함께 남겠지.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고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공동체는 깨어진 것이 아니다. 마법사는 이제야 아이작이 무슨 뜻에서 마법사에게 이 공간을 맡겼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랑의 기다림이 있는 곳에서 공동체가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이 마법사 동지, 카페 문 안 닫슴까? 손님이래 있었나 모르갔구만. 고래 명색이 개업 날인데 파리 날린 거 아임미?”

횟집 사장의 목소리다. 오늘 손님은 없다. 그러나 20세기 카페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기다리는 마법사가 있으니. 누구든 만나게 될 이들이 이곳을 찾아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기록된 역사니까.

“손님을 기다린 게 아니에요. 친구들이 다녀갔어요. 또 온다네요.”

마법사는 카페 문을 닫기 위해 마감을 시작했다. 청소할 것이 많았다. 실내에는 친구들이 벗어버리고 간 거미줄로 만든 고치들이 여기저기 허물처럼 늘어져 있었다. 친구들은 돌아올 것이다. 고치를 벗어버리고 갔으니.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다 보면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청소하느라 들락날락할 때마다 사랑을 성취한 자들이 울리는 골든벨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남자가 떠난 야외 테이블에는 반지 대신 약봉투에 든 붕어빵 2개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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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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