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횟집 추방기
“진짜 마법사 맞습니까? ‘마.법.사.’ 란 말이죠?”
그는 20세기 카페 맞은편 <조선횟집>의 사장이다. 다부진 인상에 일 잘하게 생긴 탄탄한 몸을 가진 그는 탈북민, 아니 추방민이다. 북에서 추방을 당했다고. 치열한 경쟁으로 오픈하기 무섭게 사라지는 식당들 속에서, 게다가 전 세계적 팬데믹 때문에 상권이 초토화되어 가는 와중에도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골목 사장들 사이에선 독하다, 대단하다 평가를 받는 그가 20세기 카페로 마법사를 찾아왔다.
“탈북이 아니고 추방을 당했다고요?”
“뭐 그렇게 됐슴다. 그기 신기합니까? 내래 마법사가 더 신기한데.”
분명 추방을 당했다고 했다. 탈출이 아닌 추방. 그러니까 그는 북한을 탈출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원산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고 했다. 횟집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역 해안부대를 순시하던 위원장 동지가 자신이 운영하던 횟집을 방문해서 회를 먹고는 갑자기 자신을 추방시켜 버렸다는 게 아닌가.
“왜요? 회에다 독약이라도 탔습니까?”
“고거이 무신 소립니까? 경을 칠 일이지. 어느 안전이라고. 맛있다고 매운탕까지 싹싹 긁어먹더란 말임다. 그런데 추방이라니. 당최 아직까지도 내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오.”
그는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한 상 가득 차린 회를 모조리 싹싹 발라 먹고는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위원장 동지는 크게 웃더니 그를 추방시키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바로 눈이 가려진 채로 잠수함에 실려 남태평양 어느 바다에 던져졌다고.
“살아야지 않겠소. 그래도 내래 바닷사람 아이오. 미친 듯이 헤엄을 쳤지비. 그런데 폭풍이 몰아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나더니 그대로 나를 삼켜버리지 않았겠소. 아, 이제 딱 죽는구나 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그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커다란 보름달이 바다 위를 비추는데 그 위에 하얀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엄청난 크기의 백마 위에 머리가 하얀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겁에 질려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는데 백마가 바다를 헤치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더니 한 발짝 앞에 멈추어 서서,
“내래, 마법사가 뭔지 알기나 하간. 북에서는 마법사를 가르치지도, 어디서 볼 수도 없단 말이오. 그러니 내가 그이가 마법산지 어케 알았겠소? 그이가 가만히 나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더니,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묻더란 말이지. 내가 달달 떨면서 모르겠다니까, ‘마.법.사.’ 그러는 게 아니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자기가 마법사라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아, 그런데 그이가 낮은 목소리로 ‘마.법.사.’ 그러는데 비린내가, 나도 회치고 산 인생이 반백년인데 세상 처음 맡아보는 비린내가 진동을 하지 않칸. 그 양반도 회 꽤나 자셨는지. 암튼 그러고는 소원이 뭐냐고 묻는 거 아니겠소. 소원이 뭐냐고? 아, 내 소원이 뭐겠소? 사는 거지. 이대로 물에 빠져 죽지 않고 다시 사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살고 싶다고, 날 바다에서 건져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이가 알겠다 그러더니 뭐라 뭐라 주문을 막 외우더라고. 그리고는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지. 근데 그 주문이 뭔지 아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어느 섬 해변에 미역에 감겨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곳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 해변에서 낚시를 하던 원주민들에게 발견되었다고. 그리고 그는 그 섬에 횟집을 열었단다.
“횟집을 열었다구요? 지천에 널린 게 물고기인 남태평양에서 횟집을요?”
“고저 나도 살았으니 뭘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물고기 잡고 회치는 일이니 머 그렇게 됐소. 널린 게 물고기이기도 하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담배를 한 대 물더니 솔직히 대박이 났다고 말했다. <조선횟집>은 바누아투에서 제일 잘나가는 식당이었다고. 손님들이 아침부터 밀려들어 대기 행렬이 해변 끝까지 늘어섰단다.
“비법이 있습니까? 흔해 빠진 게 물고기인 동네에서 어떻게?”
“마법사 양반, 회 좋아합니까?”
“물론이죠. 없어 못 먹습니다.”
“무슨 맛으로 먹습니까?”
“무슨 맛으로 먹다니요. 회 맛이 그 맛이 그 맛이지. 솔직히 초장 맛으로 먹긴 합니다만.”
“하하 잘 알고 있슴다. 고거이 비법 아니겠슴까.”
“아~ 초장!”
<조선횟집>은 초장 맛집이었다. 그러니까 그 섬나라 원주민들에게 매콤달콤한 초장 맛을 전수한 것이다. 할머니가 담그시던 고추장 비법을 일찌감치 전수받은 그는 남태평양 섬나라에 초장을 보급할 생각을 했다. 그러자 중독성이 있는 그 맛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래, 돈 좀 벌지 않았겠소. 창고에 고기보다 돈이 더 많이 쌓였단 말이오.”
그는 그곳에서 북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본주의의 맛을 볼 수 있었다. 부르죠아로 계급상승을 이룬 것이다. 탈출이 아닌 추방 덕분에.
“아니 근데, 초장을 쓸 생각을 어찌했습니까? 그 사람들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내래, 아까 그 꿈인지 생신지 속에서 마법사 양반이 주문을 외웠다고 하지 않았소? 그 주문이 뭔지 짐작이 아이 갑니까?”
“주문이요? 무슨 주문이었죠?”
“같은 마법사라니 짐작할 줄 알았더만. 아 그니까, 고저 그 백마 탄 마법사 양반이 주문을 딱 외우는데 ‘초장초장 푸른초장’ 하더란 말이지. 그게 딱 기억이 나지 않았겠소. 내래 무릎을 탁 치며, 아 그래 초장이다! 여기 사람들한테 초장을 먹여보자! 그래서 빨간 초장을 상에 딱 내놓았는데 뭔가 임팩트가 빠진 듯하더란 말이지. 그래서 거기다 와사비를 딱 얹지 않았겠소. 주문처럼 ‘푸른 초장’ 말이요. 그거이 대박이 난 거지.”
푸른색 와사비가 얹어진 빨간 초장. 초장의 맛. 그것이 <조선횟집>을 대박집으로 만든 비결이었다. 푸른 초장을 파는 <조선횟집>은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소문이 나 바누아투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고.
“아~ 그렇게 되었군요. 푸른 초장을 파는 횟집이라니. 근데 떼돈을 버셨다면서 어찌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남태평양에서 떵떵거리고 계속 사시지.”
“누구는 안 그러고 싶겠소. 사람 팔자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지. 그 작은 섬나라에 뭐 변변한 산업이 없지비. 그래서 그 나라는 ‘황금 여권’이라고 부르는 시민권을 판단 말이오. 13만 달러만 내면 시민권을 내주니 뭔가 구린 인간들이 세계 여기저기서 시민권 쇼핑을 하러 오지 않겠소? 아니 한번 오지 않아도 시민권을 내준다더만. 그러니 문제가 아이 생기겠소? 마약이니 밀수니 각종 범죄에 악용된다고 힘 좀 쓰는 나라들이 눈치를 주니까네 정부에서 몇몇 문제 국가의 신청은 받지 않겠다 했는데, 고거이 시리아, 이라크, 이란, 예멘 그리고 북한이 딱 걸렸지 뭐요. 참나, 내가 그 풍랑도 헤치고 살아남았는데 공화국 출신이란 딱지가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알았겠소? 인생 참 거시기하지 않소?”
규제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그는 바로 추방을 당했다고 했다. 시민권 신청을 하려면 5년 이상 위의 나라 이외의 국가에서 거주한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그리고 내년이면 5년째가 되는 해라고 했다.
“그래서 뭘 좀 건져 왔습니까? 창고에 물고기보다 많이 쌓인 돈은 다 어떻게 하구요?”
“뭘 건져왔겠소. 추방 아이 당해봤소? 고저 몸뚱아리만 딱 내보내는 거요. 뭐 하나 가지고 나갈 수 없단 말이오. 그래도 이번에는 잠수함에 태워 바다에 던져지지는 않았지비. 어느 나라로 가고 싶냐기에 남조선으로 보내달라 했지. 그래도 말이 통하는 데가 낫지 않겠나 싶었는데..”
<조선횟집>이 남조선에서 그 특유의 ‘푸른 초장’으로 성공을 재현할 수는 없었다. 남조선의 횟집은 초장을 내주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다만 이미 증명된 성실성과 생존력으로 그는 이 남한 땅에서도 자리를 잡고 5년 가까이 버텨오고 있었다. 그 사이 이 나라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각종 전염병이 휩쓸고 대통령이 탄핵되기도 하고,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태우고 가던 배가 전복되어 타고 있던 승객과 학생들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일도 있었다.
“남조선 말임다. 잘살아 보겠다고 이북에서 탈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고거이 다 목숨 걸고 하는 일들인데 말이지. 요즘은 그기 그럴 만한 일인가 싶단 말임다. 배 좀 안고프려다 산 채로 죽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지. 게다가 산다고 또 다 사는 게 아니더라고. 경쟁은 어찌나 치열한지. 아니 이 조그만 동네에 횟집이 몇 개요? 회 못 먹고 죽은 물귀신들만 사는지. ‘푸른 초장’으로다간 승부가 안된단 말임다. 이게 뭘 해도 이미 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속도는 당최 따라갈 수가 없단 말이지. 내래 빨리 이 나라를 떠야..”
그때 밖에서 빠지직하고 뭔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횟집 입간판을 지나가던 승합차가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무 재질로 된 입간판이 부서지면서 승합차 엔진룸 하부에 박혀 버렸는데. 횟집 사장은 인상을 찡긋하고는 팔짱을 끼고 자동차 주인이 어떻게 나오나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승합차 주인은 당황한 듯 차 문을 열고 나와서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엔진룸에 박혀버린 간판 조각을 빼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조각이라고 하기엔 운행을 방해할 정도로 큰 조각이라 달고 정비소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간판 조각을 붙들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횟집 사장은 창고로 가서 개마고원 벌목할 때나 쓸 것 같은 거대한 얼음 분쇄용 전기톱을 들고 나왔다. 다부진 인상의 횟집 사장이 전기톱에 부릉부릉하고 시동을 걸자 그 모습은 마치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주인공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압적인지 구경하느라 모여든 주변 상인과 행인들은 일시에 조용히 얼어붙었다. 횟집 사장은 전기톱으로 단숨에 간판 조각을 분리해 냈다. 조각은 순식간에 반쪽으로 잘려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숨죽이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합차 주인은 상황이 해소되자 도리어 횟집 사장에게 성을 내기 시작했다. 입간판을 도로 경계에 세워놓아 자신의 자동차가 피해를 봤으니 변상을 하라는 것이다. 횟집 사장은 어이가 없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핏대를 세우는 승합차 주인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당신 맘대로 하슈 하고 뒤돌아 다시 20세기 카페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승합차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횟집 사장의 억양에서 북한 출신임을 알았는지, 그의 등뒤에 대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추방시켜 버려야 한다며 거친 쌍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듣다 못 한 횟집 사장은 마침내 뒤돌아 분노를 폭발시켰는데,
“야 이 XXXX XXXXX XXXXX”
주문을 외웠다. 하늘을 보며. 그는 분노를 담아 남한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초월적 욕문을 외웠, 아니 폭발시켰다. 그것은 폭발이 분명하다. 그 데시벨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승합차의 모든 유리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으니까. 심지어 승합차 주인이 쓰고 있던 안경의 유리알마저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자 승합차 주인은 겁에 질려 유리 조각이 나뒹구는 승합차에 올라타고는 급후진해 달아나 버렸다. 승합차가 쌩하고 골목을 빠져나가자 횟집 사장은 똥 밟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20세기 카페로 돌아왔다. 마법사는 직관을 따라 내린 아이스 마메리카노 한잔을 만들어 그의 앞에 내놓으며 물었다.
“사장님, 괜찮습니까?”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마법사가 내온 마메리카노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일 없슴다. 빨갱이라니, 종간나 시키가. 추방은 무슨. 내래 이번에는 꼭 탈출하고 말갔시오. 이놈의 나라, 사람들 마음씨가 저 모양이니 더러워 어이 살겠소.”
그는 이번에는 추방이 아닌 탈출을 모색하는 듯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생존해 온 그지만, 이 나라의 속도와 부조리는 도대체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남조선의 고된 추방 생활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주변을 살펴보고는 마법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며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근데 마법사 양반, 마법사라고 하니 내가 하나 물어봅세다. 마법사 양반도 주문을 외우오?”
“네? 무슨 주문 말입니까?”
“아니 그니까, 내가 재산을 모두 바누아투 가게 뒷산 저수지에 묻어 놓고 나왔단 말이지. 이건 비밀이오. 어디 가서 발설하면 내래 가만 있지 않겠소.”
“그럼 말씀을 마시던가. 내가 언제 비밀을 말해 달랬습니까?”
“아아 그런 뜻이 아니고. 내래 마법사 양반을 믿지. 믿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요. 날 살려준 것도 그 마법사였지 않겠소. 그래서 하는 소리요. 내 복채는 두둑히 하리다.”
“복채라니요. 저는 마법사지 점쟁이가 아닙니다.”
“어허, 이 양반 까칠하긴. 그니까 내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요. 가만 들어보시오. 내 재산이 말이지 그 저수지에 묻혀있지 않겠소. 금고에 넣어가지고 딱 봉해서 묻어놓았는데 말이지. 그 비밀번호가 당최 생각이 안 난단 말이오. 게다가 이걸 어디에 적어놓지도 않았단 말이오. 누가 보면 어카겠소? 그래서 그냥 외워버렸는데 고거이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거요. 그러니 이를 어쩐단 말이오.”
“그냥 건져다 업자 불러서 금고를 열든가, 부숴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고거이 문제가 있소. 실은 금고 안에 든 게 현금이나 금 이런 게 아니고, 코인이란 말이지. 코인, 암.호.화.폐. 금고에 든 게 지폐가 아이고 개인 지갑이 든 USB란 말이오.”
“네? 암호화폐라구요? 아니 그 나라도 암호화폐를 씁니까?”
“한참 됐소. 그긴 구린 인간들이 많으니까네. 얼마나 좋소. 추적도 안 당하고. 심지어 구호단체도 암호화폐로 구호자금을 직접 나눠 준단 말이오. 그 나라가 화산이니 지진이니 자연재해가 많거든. 근데 정부가 빤하지 않겠소? 다 중간에 해 처먹으니까네 아예 피해 주민들한테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어주고 직접 암호화폐를 지급 한단 말이오. 그래서 고거이 그 나라에선 꽤나 보편화되어 있소. 나도 그래서 재산을 모조리 암호화폐로 바꿔다 패스워드를 걸어서 금고에 넣어놓았는데 말이지. 그 개인 지갑 패스워드가 당최 기억이 안 난단 말이오. 쉬워서 잊을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게 점점 가물가물해지지 않겠소?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아예 생각이 나질 않는거요. 그런데 고거이 꿈에서 마법사 양반이 외운 주문이었단 말이지.”
” ‘푸른 초장’ 말입니까?”
“아니, 그거 말고 그 뒤에 한 문장이 또 있어요. ‘초장초장 푸른초장’ 뒤에 무슨 사라지는 소린데 말이지. 후? 히? 헤? 화? 아 뭐라 뭐라 했는데 내래 그걸 조선말을 영타로 전환해서 패스워드로 저장해 놨는데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아. 미치겠단 말이지. 그런데 당신도 같은 마법사 아니요? 고저 그 마법사들이 쓰는 말들, 자주 외우는 주문이 있지 않소? 그중에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아하.. 그렇군요.”
마법사는 순간 그가 잃어버렸다는 패스워드가 직관적으로 떠올랐다. 횟집 사장의 환상 속에 나타난 마법사와 20세기 카페의 마법사가 동일 계열이라면 그 뒤에 따라온 문장은 뻔한 것이다. 그러나 주문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없는 법. 게다가 하나의 생에 마법사를 두 번이나 만나는 일은 (그게 꿈이든 생시든) 흔한 일이 아니니, 이것은 매우 직관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뭐 생각나는 게 있소? 말 좀 해 보시오. 내 사례는 두둑히 한다니까. “
“음.. 집히는 게 있습니다만, 제가 직접 그 지갑을 봐야겠군요. 그래야 더 정확하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만. 그럼 바누아투에는 언제 가실 수 있죠?”
“아, 내년이요. 내년이면 5년 의무 거주 기간이 끝나고 다시 바누아투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겠소. 그럼 나랑 같이 갑시다. 내 극진히 모실 테니.”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그기 뭡니까?”
“크루즈를 타고 가야 합니다. 오대양을 모두 건너서 마지막으로 그 섬에 도착해야 합니다.”
“엥? 그러니까 고저 그 지구를 한바퀴 돌아야 한단 말이오? 바다로? 크루즈로?”
“네 그렇습니다. 반드시 크루즈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크루즈라..”
마법사는 횟집 사장의 제안을 수락하며 이상한 조건을 달았다. 크루즈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바누아투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법사는 왜 크루즈를 타야 한다고 했을까? 그리고 크루즈를 타고 지구 한 바퀴를 돌면 횟집 사장이 잊어버린 패스워드를 마법사는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양반, 왜 크루즈를 타야 한다는 거지? 지구 한 바퀴는 또 뭐고? 괜히 눈탱이 맞는 거 아인가? 음.. 이거 쉽지 않구만.’
‘패스워드라.. 잘됐네. 이참에 크루즈나 타봐야지.’
두 사람은 각자 이 상황을 해석하느라 말없이 빈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손해 볼 것 없는 마법사와 횟집 사장의 지구 한 바퀴 크루즈 여정이 도모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조선횟집> 사장의 추방기가 아닌 탈출기가 될 것이다.
20세기 카페에 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감도는 가운데, 건너편 <조선횟집>의 창문에 내걸린 대형 TV 모니터에선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크루즈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뉴스에 이어, 담배꽁초를 함부로 길거리에 버렸다는 이유로 네티즌의 온라인 여론재판에 의해 추방당한 한 전직 평론가가, 망명을 시도하다 호주 공항에서 탑승거부를 당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외신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 전직 평론가의 머리에는 앞쪽에는 ‘별점 평론 타도’, 뒷쪽에는 ‘여론 재판 중지’라고 쓰인 머리띠가 둘려 있고, 다른 한 손에는 화염병 대신 와인병이 들려 있었는데, 현장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바누아투에 추방민들을 위한 지상천국을 건설하러 가는 중이었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편 바누아투 보건당국은 팬데믹 봉쇄를 위해 바이러스 감염 유행국인 한국인의 입국을 불허했는데, 전직 평론가는 자신은 망명객이니 상관없다며 밀입국을 시도하다 보안요원에 의해 발각되었다고. 보안요원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발각 당시 만취한 채로 비행기 엔진룸 속으로 기어들어 가 잠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횟집으로 돌아가다 이 보도를 본 횟집 사장이 흠칫 놀라며 그 평론가를 알아보았는데,
“어! 저 동무래, 아랫 골목에서 호프집 하던 사장인데.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쯔쯧.. 그렇잖아도 요즘 코빼기도 안 보인다 싶더니만.”
“아, 저 평론가 말이죠.”
“마법사도 아는 사람이오?”
“인터넷에서 유명하더라구요. 사람들이 미치광이라 부르던데요.”
“미치광이라고? 별명하고는. 저 양반, 이 동네에서 진정성 없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말이지. 말은 많은데 뭘 끝까지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아 그렇군요. 그런 것도 ‘진정성이 없다’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바누아투에는 왜 갔을까요?”
“지상낙원 만들러 갔다 하지 않소? 미치광이가 만든 지상낙원? 매드 오아시스네 매드 오아시스. 아니 근데 왜 하필 바누아투지? 저 양반도 저수지에 뭘 묻어 놨나?”
순간 마법사의 머릿속에는 모종의 음모가 스쳐 지나갔다. 미치광이로 위장한 음모? 횟집 사장에게 빨갱이라며 욕을 하던 승합자 주인의 수상한 검은 양복과 깨져 버린 유리 안경의 정체는? 횟집 사장으로 가장한 북한과 남한 첩보부대의 이중 스파이? 수학여행 중인 학생들을 태우고 가던 배의 의문의 전복 사고와 횟집 사장을 남태평양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잠수함의 연관성. 황금 여권을 파는 가난한 섬나라 바누아투와 암호화폐. 그리고 전 세계적인 팬데믹 때문에 운행이 전면 중단된 크루즈까지. 그런데 크루즈를 타고 지구 한 바퀴를 돌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는 마법사에게 내린 직관은 도대체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모종의 거대한 음모가 인류를 위협하려고 암투를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마법사에게 일었다. 엉거주춤 그럼 수고하라며 인사를 남기고는 황급히 횟집 뒷방으로 들어가 버린 횟집 사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법사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음.. 주문은 ‘초장초장 푸른 초장’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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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