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by mmerlin

[시력검사 時歷檢査] Mar 10. 2022 l M.멀린

 

0.73이 모자랐다. 1도 아닌 2도 아닌 0.73. 딱 그만큼의 운이 모자랐다. 실력으로 악으로 깡으로 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 온 사내에게 마지막까지 모자랐던 그것은, 실력으로도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운칠기삼. 아니 0.73. 반면에 운빨로 육개월 만에 대통령 자리에 앉은 다른 사내는 55%에 달하던 정권교체로 열기의 운빨을 까먹고 까먹다 겨우 남긴 그만큼. 칼끝 하나의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운으로만 따지자면 한반도 최고의 풍운아처럼 보이는 다른 사내라고 실력이 없겠는가? 신발 속 돌멩이처럼 구는 새파란 정치 선배 당대표를 끝까지 붙드는 실력도 실력이고 어쨌거나 양보의 아이콘을 자신에게 양보하게 한 것도 실력이지. 그러나 그의 진짜 실력은 9수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진득함일 테고 좌천과 유배를 반복하면서도 더럽다고 때려치지 않는 절치부심 같은 것일 테다. 그리고 인생에 온 단 한번의 기회, 단 한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체로 만들어 내는 실력. 이건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기술이긴 하다. 얼마나들 쪽쪽 빨리기만 하고 버려졌던가. 안전한 길을 가자면 대깨문 등에 올라타고 가만히만 있었어도 어디 공천 한자리는 했을 텐데 말이다. 그랬을까? 기회가 그런 것이던가? 그래서 한 자리나 하고 있는 풍운아를 본 적이 있던가? 대운의 기회는 못 잡으면 쪽박인 것을. 이 바닥 All or Nothing의 법칙은 대운일수록 더 강력하고, 더 큰 것을 노리는 이들이 살아남는 법이다.

그래서 오로지 실력으로 한발 한발 올라온 사내는 얼마나 한스러울까? 팔자가 원망스러울까? 누가 봐도 ‘최선’을 다했노라, 누구도 게을렀다 모자랐다 말하기 어려울 혼신을 보여주었다만. 심지어 불법과 탈법으로 점철되었더라도 말이다. 여기까지. 자신의 한계와 운이 여기까지라고. 그런데 그게 딱 0.73이라고. 이건 아쉬울 만큼인지 넘사벽인지 알 수가 없다만 아무튼 결과는 실패. 그러나 결과를 알고 한 말인지, 자신은 아직 젊다고, 도전은 계속될 거라는 말을 내뱉고. 험한 세상이 운 없는 이 사내에게 기회를 계속 줄지 모르겠다만 그라면 또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지. 그게 해 온 방식이니. 그가 살아 온 방식이니.

사내라고 왜 운이 없었겠는가? 그의 당내 라이벌들이 속절없이 사라져간 건, 그의 작업(?)이 아니라면 그만한 운이 또 어디 있겠는가? 비주류의 신분은 자기 당에서도 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운을 다 썼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오만했는지 악랄했는지 모를 아킬레스건들은 덮는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 없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도 없었겠지만. 비천한 가붕개 출신으로.

사내를 생각하자면 세상 운 없는 것들의 한이 느껴져 알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너도 나도 다르지 않을 테니. 가붕개 주제에 개천의 용이 될 꿈은 꾸지도 말라는 당에서 용 되려고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반면에 그딴 소리 하는 넘, 응징하겠다 나선 귀하신 몸은(9수를 했다지만 서울 법대 출신의 검찰총장을 가붕개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도리어 한강의 용이 되었으니 참으로 이놈의 팔자소관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세간 역술가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내의 사주에 관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하니, 아, 이건 팔자도 운도 아닌 사랑의 힘이었던가? “그럼 나보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일갈하던 죽은 대통령을 신으로 섬기는 당에서, 장차 영부인이 될지 모를 다른 사내의 아내를 밤거리의 가붕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던 이들이 이제 역관광을 당하게 생겼으니,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가? 이민이라도 가야겠는가? 왜 7시간 난교파티를 벌이던 대통령 밑에서는 잘도 살아놓구선. 그 대통령 탄핵한 검사의 아내가 아닌가.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운이고 어디까지가 실력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번 대선, 이번 대전, 두 사내는 각자의 방식으로 ‘혼신’을 다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모욕과 비난, 협박과 압박, 모함과 고소, 더러움과 치사함이 난무하는 저 자리를 왜 못 차지해서 안달인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리이니 저리들 욕심을 내겠지만, 한 사내에게선 채우지 못한 결핍의 극단이 보여 안쓰럽고, 다른 사내에게선 오르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올라, 그저 운명을 따랐을 뿐이라고 담담하기엔 신출내기 정치인이 갑갑하고 답답한 시간을 어찌 견뎌낼꼬 싶은 것이다. 다른 사내가 존경한다던 그 선배 대통령처럼 여소야대의 난국에 지쳐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 소리가 불끈불끈 올라올 게 빤하니 말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이 운 좋은 새내기 대통령 내외가 감당하기에 이 나라, 이 땅이 처한 상황이 언제나처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 성향은 저쪽’이라던 그 성향으로 구역질 나는 이쪽의 이전투구 견뎌내기가 만만치 않을 거기 때문이다. 하긴 영력으로는 내가 제일 세다는 영부인 걱정은 해서 뭐할꼬. 남편까지 알아서 잘 챙기겠지. 멀쩡한 자기 형제 정신병원 처넣는 부부의 정신건강은 또 얼마나 멘탈갑일까. 가붕개 주제에 임금님 걱정은 무슨.

두 사내야 알아서들 하라 치고 어쨌거나 0.73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초박빙, 초대립, 초갈등의 격렬함은 더더욱 칼끝을 예리하게 서로를 겨눌 듯 하니, 진짜 염려는 이것일 테다. 갈등은 변화의 동력이니 이제까지 우리네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더 첨단을 달리는 힘과 계기가 되어주겠다만. 죽어도 보기 싫은 얼굴들과 매일 마주해야 하는 거리의 냉랭함과 서려 있는 분노는 무엇으로 달랠 텐가.

노래나 듣자.

Why keep fighting
결국 같은 한국말들
올려다봐 이렇게 마주한 같은 하늘
살짝 오글거리지만
전부 다 잘났어

_ BTS ‘팔도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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