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카니즘’으로부터의 독립선언
2011.03.01
뭐가 착한 거니? 뭐가 나쁜 거니? 뭐가 악한 것이고 뭐가 선한 것이니? 기준은 무엇이니?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니? 너는 무엇을 보고 착하다 하고 무엇을 보고 악하다 하니? 건널목에서 신호를 지켜 건너면 착한 거고, 무단횡단 하면 나쁜 거니? 복도에서 떠들지 않고 줄 맞춰서 걸으면 착한 거고, 시끄럽게 왔다갔다 하면 악한 거니? 자기 마음에 불편함을 감추고 사람들 앞에서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면 착한 거고, 분을 참지 못하고 성질을 내면 나쁜 거니? 오로지 착하다는 그 말에 매여 자신은 내팽겨 둔 채, 사람들의 이리가라 저리가라에 졸졸졸 왔다갔다 하는 것이 선한 것이니?
세상에 착한 것, 나쁜 것 따위는 없는 거야. 존재하는 것은 각자각자의 입장뿐이지. 네가 착하다고 말하는 그것은, 너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그것일뿐. 네가 악하다고 말하는 그것은, 너의 입장과 다른 그것이지.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아이고 너 참 착하구나” 사람들은 자기자신도 못 챙기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넌 참 착해빠졌구나”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차카니즘’에 걸려, 자신의 인생을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있단다. 이 이데올로기는 얼마나 강력한지 어떤 논리에도,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고, 수많은 영혼들을 오로지 “아이 착하다!” 이 말 한마디로 제압하지. ‘착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 따윈 없어. 오로지 엄마의 의견, 아버지의 의견, 사람들의 의견만 있을 뿐이지. ‘착한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건 눈치 보기, 분위기 살피기, 비위 맞추기, 일단 참고 보기, 아닌데도 그런 척하기, 싫은 소리 못하기 따위들뿐. 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마저 그러고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착해진 거니? 세상에 처음 태어난 너는 전혀 착하지 않았어. 사람들의 상황이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고, 자고, 싸고 하지 않았니? 배고프면 울고, 불편해도 울고, 추워도 울고, 졸려도 울고.. 태어난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왔지. 그러다 언어를 알게 되고, 얼굴을 익히게 되면서, 웃고 있는 저 인간이 나의 엄마라는 것, 나의 아빠라는 것을 깨닫고는 마냥 즐거워하다가, 자신의 생명줄이 저 인간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지. 그리고 그 인간들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하는 거야. “너 엄마가 장난감 가지고 놀고 나면 치우랬지. 착하지 않아.” 밥을 안주는 거야. 장난감 안 치웠다고 말이야. 치사하게 말이다. “학습지 다 하면 과자 사줄게. 착한 아이는 그런 거야.” 도대체 이 엄마는, 또 누구에게서 이런 어이없는 이데올로기를 세뇌 받았을까? 엄마의 엄마? 엄마의 친구?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차카니즘’을 강요하고, 자신은 여전히 사람들의 온갖 ‘차카니즘’에 단단히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리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물으면 “엄마가 그랬어, 아버지가 그랬어, 누가누가 그랬어”라며 자신의 의견은 전혀 없고, 온통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뿐인 허수아비가 되어 살아가는 거야. 안타깝게도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이놈의 ‘차카니즘’은 한 사람의 인생을 꽁꽁 묶어놓는 사슬이 되어버리고 말지.
딸아, 세상에 선과 악은 없는 거야.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어. 그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과 억압에 묶여 있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적도 되고 아군도 되지. ‘니 편’, ‘내 편’이 있을 뿐인 거야.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은 없는 거지. 우리의 기준이란 얼마나 얄팍한지, 같이 험담하면 ‘내 편’이었다가, 다른 사람과 밥을 먹으면 금세 ‘남의 편’이 되곤 하지. 오늘은 둘도 없는 동지였다가, 내일은 천하의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들의 선악 기준이란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선악과를 만든 건,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야. 선악을 알게 된 사람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선악을 알기 전의 사람은 그저 모두 하나였을 뿐이야. 그때에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 같은 생각을 따르는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야. 아마도 처음에는 그저 ‘다름’뿐이었을 이 단어가, 갈등과 분쟁이 생겨나며 정말 ‘선’하고 ‘악’한 것이 되었지. 마치 의회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이 주로 보수적인 의견을 내어서 ‘우파’라고 불리고, 좌측에 앉은 사람들이 진보적인 의견을 내어서 ‘좌파’라고 불리던 것처럼 말이야. 지금은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 안에 단순한 자리 구분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이라는 단어에도 동일한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지. 그리고 사람들은 한 사람을 두고도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한단다.
사람들이 나를 ‘선’이라고 부르든 ‘악’이라고 부르든, ‘착하다’고 부르든, ‘나쁘다’고 부르든 중요한 건 ‘나’야. 내가 되어야지. 사람들의 ‘무엇’이 아닌 ‘나’. 그 ‘나’가 사람들에게 ‘선’이라고 불리든, ‘악’이라고 불리든, 어쨌든 그것은 ‘나’인 거야. 내가 없고 서야 선도 악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너는 선도 악도 아니고 그냥 ‘너’ 인 거니까.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선과 악은 그나마도 희미해져 간다. 도리어 10%는 미국 어떤 학자의 무엇, 15%는 동네 사람들의 무엇, 30%는 엄마의 무엇 등,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둥지가 틀어져 있는지 몰라. 아무리 뒤지고 뒤져봐도 고유한 너는 찾아 볼 수가 없지. 네 속을 들여다 보렴. 네 마음과 생각의 옷장 속에는 온통 남들이 입다 버린 쓰레기들로 가득할 테니까. 이건 돈 많은 이모네 옷 그리고 이건 괴롭히고 욕만 해대는 이웃 누구의 옷, 이건 겉만 그럴 듯해 보이는 어떤 교수의 옷..
딸아, ‘차카니즘’에서 벗어나라. 사람들의 무엇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찾아야 해. 너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려고 씌워준 ‘차카니즘’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해. 그래야 너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거야. 욕 좀 먹고 나쁜 사람 소리 좀 들으면 어때? 어차피 네가 착한 척을 아무리 해도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 소리를 들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 너를 먼저 찾고 너의 입장을 고수해 나가렴.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건 ‘나’가 먼저 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란다. 진정한 ‘나’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불려진 ‘착한 너’는 아무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없어. 그것은 사람들의 차카니즘에 의해 하루아침에 달라지고 버려질 테니까. 오늘은 너를 ‘착하다’고 불러준 사람들이 어느 날 입장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너를 ‘나쁜 년’이라고 부를 거야. 너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안간힘을 쓰고 그들의 뒤를 쫓아다니겠지. 그러다 너희 편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너희 편들이 너를 떼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면 너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거야. 어느 편에 설지 고민하지 말고 너의 자리를 만들어. 누가 와도, 누가 보아도, 그냥 ‘너’인 너만의 자리를 만들어야 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잡고 서면 우리는 굳이 누구를 나쁘다 착하다 말할 수 없을 거야. 저 사람은 저렇게 다르고 이 사람은 이렇게 다르고.. 그래서 우리는 늘 대화하겠지. 나도 다르고, 너도 다르니, 어떻게 다른지 늘 분별해야 할 테니 말이야. 그곳에서 배려와 이해는 피어나는 거야. ‘네 편’과 ‘내 편’ 뿐인 세상에서 어떻게 배려와 이해가 피어나겠니? 그 속의 배려는 그저 사람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속의 이해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술수일 뿐인 거야.
딸아, ‘차카니즘’에서 벗어나는 길은 ‘독립선언’뿐이다. 누가 뭐래도 “난 나야!” 라고 너 자신의 독립을 선언하는 거야. 사람들에게 너는 어떤 사람인지 당당하게 말하렴. 너의 생각과 다르면 참지 말고 너의 생각을 이야기 해. 사람들은 당황하겠지. 너는 언제나 말 잘 듣는 ‘착한아이’ 였으니까. 대든다며 윽박지를지도 몰라. 이때 쫄지 말고 당당하게 너를 말하는 거야. 딸아.. 할 수 있어. “내 생각은 달라요. 아버지” 말할 수 있어.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제 생각은 그러니까..”가 아니라 “아버지 내 생각은 달라요!” 하는 거야. 목청도 우렁차게! 하는 거야. 사람들은 놀라 자빠질지도 몰라.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 한탄할지도 모르고 “사람이 변했어. 쯧쯧” 혀를 찰지도 몰라. 그럼에도 너는 “이것이 내 생각입니다! 맘대로 하세요. 나도 맘대로 할 테니까!” 할 수 있어야 해. 그러면 처음에는 갈등이 불같이 일어날 거야. 너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테고, 몹쓸 놈이라고, 다시는 보지 않으려 들지도 몰라. 그러나 이것이 시작이지. 너는 너의 독립을 선언하고 너의 자리를 틀어쥐고 앉게 될 거야. 그러면 욕하며 떠나갔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둘 찾아오지. 그리고는 조심스레 묻게 되는 거야. “넌 누구니?” 사람들이 이제야 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 그저 말 잘 듣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따라다니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저렇게 당당한 너를 보고, 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있니. 그들도 너를 알아야 너와 관계를 할 테니 말이야. 세상이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니? 배척을 하든, 친구를 하든, 어쨌든 네가 누군지 알아야 사람들도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야. 너는 너의 생각을 말하고, 너의 감정을 말하고, 너의 관심을 표현할 때, 사람들은 너와 어디까지 대화하고, 어디까지 배려하며, 어디까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되는 거지. 그러면 너와 사람들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일방의 압력이나 통제가 아닌, 서로가 다른 인격으로서 삶을 논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이상적이다.. 한없이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절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너의 영역을 한없이 침범해 들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감정이 이렇고, 자신의 생각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너의 생각과 감정 따위는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마구 금을 넘어와 버리는 거야. 그리고는 너의 내면의 방에 죽치고 앉아 나가지도 않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거야. 너의 내면의 방에는 엄마가 하는 신세한탄, 시누이가 하는 시기질투, 옆집 아줌마가 떠들어 대는 남편 흉 따위들이 가득가득 쌓여만 가지. 동네 버려진 폐가처럼 말이야. 멈추렴. “닥쳐, 이것들아 네 머릿속에서 당장 꺼져!” 한마디면 되는 거야. 그래도 안 가거든 몽둥이를 들고 혼쭐을 내서 십 리 밖으로 쫓아 버리려무나. 소금도 쫙쫙 뿌리고.. 네 머릿속에 쓰레기들은 비닐 팩에 꽁꽁 압축포장해서 분노의 소각장에 던져 넣어버리고는, 지하 암반에서 끌어올린 차디찬 암반수에 소방호스를 연결해서 깨끗이 씻어내 버리는 거야. 그것도 개운하지 않으면 스팀청소기로 바싹 닦아내고, 왁스로 빡빡 문질러서 반짝반짝 광을 내는 거지. 그리고는 깨끗하고 번쩍번쩍 빛이 나는 너의 마음의 방을 이제는 너만의 것들로 하나하나 채워가는 거야. 그러면 이제 아무도 생각 없이 네 머릿속에 쓰레기들을 툭툭 던져 넣지 못할 거야. 모두들 너의 방 앞을 지나가려면 조심스러워지겠지. 지나가도 되냐고 네게 묻고 또 허락을 받을 거야. 혹 그럼에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예전처럼 불쑥불쑥 침범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사나운 불독 한 마리를 키우렴. 확 물어버리게..
‘너 자신’은 ‘너 스스로’ 지켜야 해. ‘차카니즘’이란 모름지기 동네 거지 마냥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옛다 이거나 먹어라’며 부스러기나 던져주는 교활한 아량일 뿐이란다. 너를 더 이상 사람들의 의견과 판단에 묶어 두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활능력을 갖추어 가렴. 그러려면 먼저 독립부터 해야 하지 않겠니? 100년 전 아오네 장터의 유관순 누나처럼 가슴에 너만의 깃발을 품고 너를 자기편이랍시고, 이리로 저리로 끌고 다니던 사람들 한복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거야. 그리고는 당당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너의 발걸음이 어떤지 사람들에게 보여 줘. 언젠가 그들은 너에게 박수치며, 너를 열렬히 환호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네가 스스로 서는 그날 말이다. 그날이 너의 삼일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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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