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누가 무사를 얻는가

[MOVIE 100] Dec 30, 2021 l M.멀린

 

 

“난 싸우는 데 지쳤소. 나이 탓이겠지.”

 

노련한 무사는 대부분 지쳐 있다. 싸움, 전쟁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노련해진 만큼 에너지가, 마음이 바닥나 있다. 마음을 쏟았던 전우들을 계속 잃어왔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엔 너만 한 때가 있었지.
‘훈련하라’, ‘전장에서 앞장서라’, ‘누구든 전쟁 영웅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네 꿈이 완성되기 전에 늙어 버리고
그때쯤이면 네 부모와 친구들도 모두 죽었을 게다.”

 

명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부모와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마당에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사의 남은 존재 이유는 그저 생존일 뿐이다. 그러니 용병을 구하려거든 보상이라도 두둑이 쥐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목숨값이니.

그러나 도둑 떼의 습격이 예고된 가난한 마을의 농민들은 무사에게 후한 보상을 해 줄 수 없다. 그들이 가진 것은 목숨 같은 쌀뿐. 자신들은 기장을 먹더라도 무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삼시세끼의 쌀밥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목숨을 걸 무사가 있을까? ‘줄 수 있는 건 삼시세끼 쌀밥이 전부입니다.’ 하는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무사가 어디에 있을까?

 

“사무라이 양반, 당신에게 주는 거요.
저놈들은 뭘 먹는지 아슈? 기장이오.
당신에겐 쌀밥을 주면서 기장으로 먹고살지.
그들이 줄 수 있는 최선이지.”

 

최선이라고. 그것은 마음이라고. 보다 못한 이웃이 무사에게 저들의 마음을 들어 보인다. 농민들이 준비한 그릇 가득히 쌓아 올린 고봉 쌀밥을. 그건 그들의 최선이 담긴 마음이고 간절함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숨이다.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은 그것이고, 그 쌀을 얻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신들의 터전이다. 모든 것을 내어놓고 맨주먹만 남은 마을 청년 리키치의 손은 간절함과 서러움이 폭발하여 간신히 무릎을 부여잡은 채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알겠소, 그만하시오.”

 

얻었다. 무사의 마음을 얻었다. 리키치의 떨리는 손으로 쌓아 올린 고봉 쌀밥.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인 간절함 마음과 최선의 쌀밥이 무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대, 누군가의 진심과 간절함.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는 최선과 마주한 적이 있는가? 그 간절한 떨림에 흘러내리는 마음으로 가슴을 적셔본 적이 있는가?

 

“당신들 음식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다.”

 

그런 마음을 만나면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과 조우하기 위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로 세워온 무사라면.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허튼 일에 휘말리지 않고. 허망한 보상에 마음을 놓치지 않고. 어렵고 고단한 길을 걸어 온 무사라면. 드디어 때가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자신을 건 무사에게는 전우가 허락되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들이 어려움에 처한 걸 알겠소.
그리고 당신이 왜 (농민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는지도 알겠소.
하지만 내가 승낙한 건 단지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요.
깊은 우정은 때때로 우연한 만남에서 이뤄지는 법이니.”

 

 

깊은 우정만이 우연한 만남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렬한 죽음까지도 함께 할 운명의 만남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만남은 무엇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진정한 무사들의 도원결의. 도원결의, 그것은 아무 데나 갖다 붙일 만큼 가벼운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온 삶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진심과 간절함을 받아들이는 무사의 선택과 태도로써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무거운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에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 망설이는 대답이, 주저하는 핑계가 필요 없다.

 

“사실 난 어려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네.
부도 명예도 얻지 못할 걸세.
그래도 같이 갈 텐가?”

“예.”

“이번엔 죽게 될지도 몰라.”

 

하하하 웃는다. 목숨을 함께 할 전우는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사의 말에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미 당신의 마음을 얻었는데.

 

 

“농사꾼들은 늘 이런저런 걱정을 하지요.
비, 가뭄, 바람.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걱정하며 살지요.
오늘도 그렇고요.
별 뜻 없이 그저 두려워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뭔가 해 주길 바라면서
왜 우릴 두려워하죠?”

 

자신들을 도적 떼로부터 구원해 주려 온 무사들을 농사꾼들은 두려워한다. 그들은 맞서 싸워 본 적이 없고 그들은 언제나 걱정하며 땅을 일구어왔기 때문이다. 땅을 일구는 일은, 농사를 짓는 일은 걱정하는 일이 전부다. 자신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고 비와 가뭄, 바람이 한 해의 농사를, 자신과 가족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해 살아 온 이들, 우주와 자연에 기대어 살아 온 이들이 무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 온 이들이니.

그리고 전쟁은 끝이 났다. 농민들은 마을을 지킬 수 있었고 다시 땅에 씨앗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사는 전우들을 잃었다.

 

“이번에도 우린 졌군.
이긴 건 저 농민들이지 우리가 아냐.”

 

농민들을 구원한 것은 두려움일까? 간절함일까? 무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 찬란했던 순간, 마음과 마음이 교통했던 전장의 흥분. 서로 등을 맞대고 적과 대치하며 느낀 뜨겁고 믿음직스럽던 체온.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그건 실패다. 그건 진 거다. 그건 이긴 게 아니다. 전우를 잃었으니 그건 모두를 잃은 거다.

강렬한 일체감 속에 죽어 간 전우들은 행복했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무사는 땅과 자신을 지켜낸 농민들을 바라보며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그들 뒤로 산이 되어 역사를 이루고 있는 전우들의 무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그런 순간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다면 무사는 언제든 다시 쌀밥 한 그릇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넌 아니다.
이긴 건 우리가 아니니까.

 

 

 

위즈덤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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