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19日] Aug 18, 2021

좋은 사람들과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I(내향형)의 마법사는 <20세기의 여름> 휴무일이면 동굴로 기어들어 가듯 영화관을 찾는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검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한숨도 쉬고 쉼도 얻고 싶어서 머리를 디밀고 자궁 같은 동굴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번 주에는 무슨 영화를 하는가, 영화관 어플을 켜고 검색해 본다. 보고 싶은 영화면 좋고 아니어도 적당한 영화면 된다. 보고 나서 조느라 자괴감이 들지 않을 정도면. 어! 그런데 이번 주에는 계륜미의 데뷔작이 개봉을 하네?
<남색대문> 자그마치 2002년 영화다. 20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 왜 갑자기 개봉을 하는지. 게다가 한국에서는 최초 개봉이란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계륜미는 마법사의 뮤즈 아닌가?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그녀를 보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마법사의 최애 여배우는 그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것은 말할 수 있는 비밀이다.
이 영화는 특별할 게 없다. 20년 전 작품이지만 나름 잘 만들어진 세련되고 풋풋한 영화다. 2년 간 배우들을 찾았고 3천명의 오디션을 보고는 정작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견한 이가 계륜미였단다. 그리고 5년 뒤 말할 수 없는 비밀.
1년 후, 3년 후, 5년 후..
우린 어떻게 되어 있을까?_ 영화 <남색대문> 中
뭘 어떻게 되나. 너는 슈퍼스타가 되어버렸지. 마법사의 뮤즈로다가 말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17살이나 많은 가난한 영화감독이랑 사랑에 빠지지. 자신의 5년 후를 그때의 그녀는 알고 있지 못했다.
그것은 비밀이다. 2021년의 우리에게 1년 후, 3년 후, 5년 후의 미래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록되어 있으니 비밀이다. 아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비밀이 아니다. 비밀은 기록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세기를 뛰어넘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를 찾으러 너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 여행의 어떤 곳에서 너의 운명을 만났다면 너는 그곳에 멈출 수 있는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타 먹지 못한 국민연금이 아까워서, 하다만 업무가 생각나서, 만나기로 한 수많은 약속들이 떠올라서 너는 다시 돌아갈 거야. 너가 떠난 그 우주로. 그러니 운명을 찾고 있다 말하지 말거라. 화들짝 놀라 달아날 테니.
그게 좀 충격이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찾아냈다고 그 우주로 갈 수 있을까? 내가 살던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와 그녀의 우주로 달려갈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하지 못할 거고 그래서 그러고 살고 있는 거다.
타인과 조우한다는 건 새로운 우주, 새로운 시공간에 들어가는 일이다. 나의 세계가 전복되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그것은 낯설고 당황스럽다. 그것을 감당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그러니 살던 우주를 떠나지 못하는 네게 감히 사랑을 언급할 자격 따윈 없다.
[스팀시티]에는 우리의 1년 후, 3년 후, 5년 후가 기록되어 있다. 3년이 지나 <20세기의 여름>을 맞이한 우리 중 누구도 3년 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5년 후의 우리 모습 역시 어떤 시공간에 존재하게 될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이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우주는 지금 붕괴되고 있다. [스팀시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이 선명해질까?
_ 영화 <남색대문> 中
그건 누가 알까?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포탈이 닫힌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이 포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어하지만
뭔가 남은 게 있을 거야
그 남은 게
우릴 어른으로 성장시키겠지._ 영화 <남색대문> 中
<20세기의 여름>을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에게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더라도 우리는 어른이 되고 있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다. 그리고 마법사는 그대들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 역시.
그러니 계속 걷자.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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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