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면접

 

 

 

 

 

“혹시 알바 뽑으세요?”

아니 어떻게 알고 물어보는 거지? 마법사는 깜짝 놀랐다. 방금 알바 모집 공고를 써 붙이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묻는 이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앳돼보이는 여학생이었다. 붉은 체크무늬 교복에 파란 백팩을 멘 폼이 한참 공부에 매진해야 할 수험생 같아 보였다.

“아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아침에 타로를 뽑았는데.. 여기로 가라고 하더군요. 알바를 뽑을 거라고.”

“네? 타로요??”

여고생은 난데없이 호주머니에서 타로카드 덱을 꺼내 보였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손때가 까맣게 묻고 귀퉁이들이 닳아버린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카드 덱이었다.

“오..이건 학생, 아 학생 맞죠?”

“네, 학생 맞아요. 타로를 배우고 있죠. 물론 요 앞 여고에 다니고 있기도 하구요.”

“요즘 학교에선 타로도 가르쳐요?”

“아니요. 하지만 제 전공이긴 해요.”

학생은 자신의 전공이 타로라고 말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관심과 취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보다. 하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고 마법사는 생각했다. 본인도 전공이 마법이니까.

“전공이라구요? 그래, 타로가 뭐라고 하던가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여기로 가면 알바를 구할 거라고.”

“알바를 찾는 중이에요?”

“아니요. 꼭 그렇진 않아요.”

“그럼 여길 왜 온 거죠?”

“타로가 가라고 했으니까.”

“설마 타로가 가라고 했겠어요? 여기 가면 알바를 구할 거라고 했겠지.”

“네??”

학생은 자신이 왜 이곳을 찾아왔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로가 시켜서 왔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알바를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로는 여기에 가면 알바를 구할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고생은 알바를 구하고 있지는 않았다. 타로의 말을 있는 그대로 추종하고 있을 뿐.

“타로를 뽑으려면 구체적인 질문이 있어야 하는데, 뭐라고 물은 거죠? 알바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타로가 여기 가면 알바를 구하고 있을 거라고 답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알바를 구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전공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죠. 타로가 뭐라고 말하건 그대로 해보기 같은 것 말이에요. 질문은 일종의 오늘의 운세 같은 것이었어요.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었죠. 그랬더니 여기를 가면 알바를 구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타로가.”

“그렇군요. 그건 정확했네요. 실은 막 알바 모집 공고를 붙이려던 중이었거든요.”

마법사는 일단 학생을 자리에 앉으라 하고 무얼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자신은 아직 커피를 마실 줄 모르니 다른 차가 있냐고 묻길래 마법사는 히비스커스티를 추천했다. 학생은 좋다고 하고 백팩을 그대로 멘 채로 카운터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며 동시에 커피를 내리는 마법사의 동작을 훑었다.

“사장님은 알바가 필요해 보이네요.”

“왜요? 바빠 보여요?”

“어설퍼 보여요.”

“네? 어설퍼 보인다구요? 뭐가요?”

“다요. 카페는 처음 해보시는 거죠?”

“오호, 타로 마스터의 눈에는 모든 게 보이나 보네요. 맞아요. 카페는 처음이에요. 이것도 어쩌다 하게 돼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학생은 어떻게 알죠? 커피도 마실 줄 모른다면서.”

“마실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마시지 않는 거예요. 아직. 성인이 되면 마시려구요.”

“그래요? 그 학교에선 커피가 학생 취식 금지 음료인가요?”

“하하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 금기랄까요? 성인이 되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어떤 금기 말에요. 실은 저 술도 담배도 잘하거든요.”

학생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서는 지퍼를 열고 손을 깊숙이 집어넣어 뭔가를 끄집어냈다. 화장품 파우치처럼 보이는 이쁘장하게 생긴 케이스를 열자 담배가 톡 튀어나왔다. 학생은 한 까치를 빼서 마법사에게 내밀었다.

“같이 한 대 피우실래요?”

“후후 그럴까요?”

마법사는 빙그레 웃으며 학생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았다. 그리고는 학생을 주방 뒷편 테라스로 안내했다.

“실내는 금연이라. 여긴 좀 아늑하죠.”

주방 뒤편 테라스에는 캠핑용 의자 2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커피 찌꺼기가 담긴 재떨이용 머그컵이 올려져 있다. 흡연 손님들을 위한 일종의 흡연실이나, 주로 마법사의 멍때리기 일광욕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사장님은 관대하신 분 같아요. 제가 이런 식으로 하면 대부분 당황하거나 호통을 치는데 말이죠. 적어도 불편해하거나.”

“관대는 아니고. 나는 혼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요. 누가 피우면 함께 피우죠. 담배는 내게 그래요. 일종의 접대용이라고 할까? 학생이 피겠다니까 피우는 거죠. 함께.”

“아, 그러면 저 때문에 피우시는 거예요? 그럼 안 피우셔도 되는데.”

마법사는 주방에서 가져온 가스용 토치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학생에게 건넸다. 그러자 학생은 됐다면서 파우치에서 멋지게 생긴 지포 라이터를 꺼내 팅~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열었다. 지포 라이터에는 중세 기사가 검을 들고 말 위에 올라탄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커피도 안 마시면서 담배는 왜 피우죠?”

“담배를 피우니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거예요. 사람이 절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하하하 수학 선생님이 좋아하겠네, 학생.”

“네? 왜요?”

“분수를 아니까.”

“분수라니요? 무슨 분수 말이죠?”

“아, 가분수, 진분수 몰라요? 분수? 세상은 분모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행동이 커지면 분모든 분자든 그에 따라 반드시 영향을 받는단 말이에요. 1/1은 없죠. 그건 균형이 아니에요. 분자가 마구 커지다 뒤집히고 분모가 늘어나다 폭발하죠. 그게 세상이에요. 술 담배 대신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분수를 아는 행동이죠.”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그런데 사장님도 마스터세요?”

“마스터? 타로 마스터? 아니요. 난 마법사예요.”

“네? 마법사요?”

“네. 마법사.”

학생은 마법사라는 말에 두 눈의 동공이 번쩍하고 커지기 시작했다. 동공을 둘러싼 검은자위가 물감처럼 번져 마침내 눈동자 전체가 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에서 쏟아져 나온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타로 카드는 마법사 카드로부터 시작해요. 지수화풍地水火風 4원소를 다루는 마법사 말이에요. 그런데 사장님이 마법사라구요?”

“저는 4원소가 아닌 5원소를 다룬답니다.”

“아, 그 사주팔자 명리에서 말하는 5원소, 오행 말씀인가요?”

“아니요. 사랑 말이에요. 제5원소는 사랑이에요.”

“사랑?”

“아직 사랑을 해 본 적 없죠?”

“짝사랑은 해봤어요.”

“영어 선생님이요? 교생 선생님이요?”

“하하하 체육 선생님이요. 잘 생겼거든요.”

“후후 그런데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네? 왜요?”

“사랑은 상호작용이거든요.”

“상호작용?”

“서로 말이에요. 서로서로, 오고가고, 주고받고. 그게 사랑이에요. 생각 속에서 혼자 하는 사랑은 환상이고, 공상이고, 망상이고.. 뭐든 사랑은 아니죠. 상처받더라도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차이고, 거절도 당하고 배신도 당하고 그게 사랑이에요. 그래서 아름다운 거죠. 가슴 아프기도 하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어렵네요. 전 아직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전공을 아직 시작도 못 했네요. 사랑도 못 해 본 사람이 삶의 지혜를 어떻게 마스터 할 수 있겠어요. 짝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머리로 아는 지식은 지혜가 아니죠. 4원소든 5원소든, 원소만 가지고 뭘 만들 수 있겠어요. 섞고, 뒤집고, 나누고, 부수고, 합치고 하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산도, 바다도, 나무도, 바위도 생겨나는 거죠. 사람도 사랑을 해야 태어나는 것처럼. 그래서 제 5원소는 사랑이에요.”

학생의 검은 눈동자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종의 절망감과 기대감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인,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어허, 이러다 울겠네. 왜 그래요? 아직 사랑을 못 해봐서? 앞으로 수도 없이 할 텐데.”

“모르겠어요. 5원소가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뭔가 절망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열망이 마구 솟기도 하고, 아득하고 아련하고.. 순간 감정이 복잡해졌어요. 저도 사랑.. 할 수 있겠죠?”

“그럼요. 누구든,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생은 아직 시작도 안 되었으니까.”

“언제 시작되죠? 제 삶은 언제 시작되는 거죠?”

“마법사를 만났으니까 이제 시작되겠죠. 타로카드에서 마법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던가요?”

“아, 그거 알아요. 타로 카드에서 마법사의 팔은 시작을 의미하는 ‘알레프’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고 어제 읽던 책에서 봤어요.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마법사 카드에 대해서 읽었네. 오늘 마법사 사장님을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 ‘알레프’라. 내가 어제 읽은 책에서는 ‘알레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작은 알레프는 언제나 우연히 나타납니다. 당신이 길을 걷고 있거나 어떤 장소에 앉는 순간, 갑자기 온 우주가 거기에 있는 거죠. 제일 먼저 일어나는 일은 펑펑 울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겁니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감동의 울음이죠. 스스로에게조차 설명할 길이 없긴 하지만, 당신은 그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는 중임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때 학생의 검은자위로 가득 찬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끝까지 연 수도꼭지같이 굵은 눈물 줄기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마법사는 당황해서 얼른 주방에서 티슈를 가져다 그녀의 눈 밑에 받쳤다. 두툼한 티슈 뭉치가 금방 흥건해졌다.

“사장님.. 저 왜 우는 거죠? 눈물이 그치지 않아요.”

“알레프에 들어왔군요. 학생의 눈이 그것을 보았어요.”

학생의 눈은 그것을 보았다. 알레프. 세상의 모든 시공간이 들어있는 작은 지점. 그곳에서 자신의 지나 온 수많은 생과 예정되어 있는 미래, 가능성으로 확장되어 있는 수많은 현재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끝도 한계도 알 수 없는 무한한 우주를 밤하늘처럼 깊고 검은 학생의 눈이 모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은하수 같은 눈물과 함께 바로 이 작은 테라스 공간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우주들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가챠들처럼 20세기 카페 뒷골목을 가득 채우고 그 위로 학생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풍선 인형처럼 가벼워진 학생은 마침내 두둥실 떠올랐다.

“사장님 아니 마법사님, 그 책에서 뭐라고 해요? 큰 알레프는 뭐라고 말하던가요?”

“아, 그러니까. 잠깐만요. 어제도 여기 앉아 읽었는데.. 아 여기 있군. 자, 내가 읽어줄게요.

‘큰 알레프는 아주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는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우연히 작은 알레프에서 만났을 때 일어납니다. 서로 다른 이 두 에너지는 서로를 보완하고 자극해서 연쇄반응을 일으키죠. 이 두 에너지는 전구의 불을 켜는 건전지의 양극과 음극 같은 것이죠. 두 에너지가 같은 빛으로 변하는 거예요.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 충돌하는 두 행성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만나는 연인들처럼. 두 번째는, 그러니까 특별한 사명을 위해 운명이 선택한 두 사람이 적확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발생하죠.’

쏟아져 나온 우주 가챠들은 크게 원을 그리며 풍선처럼 두둥실 떠 오른 학생의 주변을 감싸 안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운으로 둘러싸인 별처럼 학생의 몸이 번쩍였다. 그러나 학생은 자신을 둘러싼 이 신비로운 광경보다 마법사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이 더 궁금했다.

“적확한 장소요? 적확한 장소가 뭐죠?”

“아니, 학생 이 책을 읽었나? 다음 문장이 학생의 질문과 같아요.

‘”적확한 장소 란 무슨 뜻이죠?” 내가 묻는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 살 수도 있고 함께 일할 수도 있지만, 딱 한 번만 만나고 영영 헤어질 수도 있어요. 이 세상에서 그들 둘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속수무책으로 분출되는, 바로 그 물리적 지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그렇게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깝게 끌어당긴 것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헤어지는 거죠.”‘

“아아. 마법사님. 아아 저 지금 보았어요. 우리의 지난 생을. 25세기의 우리를. 우리들에게서 사라진 마법사님을 여기서 만났네요. 흑흑..”

그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학생의 몸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오고, 쏟아져 나왔던 모든 우주가 학생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휙 하고 빨려 들어가 버렸다. 재떨이 위에 놓인 두 대의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간 시간이었다.

“흑흑.. 왜 떠나신 거죠? 마법사님. 그때 왜 우리를 버리고 떠나신 거예요? 아아. 근데 기억이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25세기의 기억이, 꿈에서 깨듯 빨려 들어가 버리고 있어요.”

“그대로 두어요. 학생. 우리는 오늘 새로운 우주를 시작하고 있는 거랍니다. 기억은 가능성일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난 건 알레프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타로카드가 알려준 그대의 알레프, 그리고 얼떨결에 열게 된 여기 20세기 카페. 이 공간이 알레프에요. 여기는 크고 작은 알레프가 열리고 닫히는 포탈이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영영 헤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포탈에 도달했으니까.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께서 원한다면, 사랑을 한번 알게 된 이들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답니다.”

꿈에서 깨듯 기억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던 학생은 마법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마법사는 카운터에서 담요를 가져다 학생에게 덮어주었다. 곤히 잠든 학생 위로 미쳐 빨려 들어가지 못한 미래들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담배 연기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는 뜨거운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위대한 사랑과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전쟁 같은 사랑이 모두 담겨 있었다. 마법사는 흩어지는 미래들을 바라보며 다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는 학생이 테이블 위에 놓아둔 타로 카드를 펼쳐 보았다.

‘음.. 마르세이유 덱이군.’

잠든 학생의 앞날을 생각하며 펼쳐진 타로 카드들 사이로 한 장의 카드를 뽑자 바보 카드가 나왔다. 바보 카드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시던 마법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하냐 얘기하죠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나 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 왜이리 바보같기만 하냐 얘기하죠
나는 바보의 사랑을 하나 봐요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나 봐요

 

** 바보 카드에 대한 해설

바보 카드에 씌어진 프랑스어 ‘마(Mat)’는 ‘바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마토(Matto)’라고 부르는데, 이 두 단어 모두 이집트 신화의 ‘마트(Maat)’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마트는 지하 세계의 여신으로 오리시스와 나란히 앉아서 죽은 자들을 심판한다. 막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를 다는 데에 사용되는 깃털도 마트라고 부른다. 이것은 광대 복장을 한 바보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곧다는 뜻, 균형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바보가 어깨에 인, 봇짐을 묶은 막대기가 저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바보는 한 손에 빨간색 지팡이를 쥐고 다른 손은 봇짐을 묶은 막대를 어깨에 이고 있다. 바보의 복장은 알록달록한 광대의 옷이다. 그리고 머리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뿔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어딘가를 향해 막 길을 나선 형상이다. 바보의 길이 시작되는 광경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카드의 그림이다.

바보는 실은 바보가 아니다.

대 비밀 타로 카드의 여행은 바로 이 바보의 여행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바보는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의 길은 뚜렷한 목적이 없다. 어디에 닿을지 누굴 만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법사의 시작과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 시작이라 하겠다.

바보 카드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바보의 길을 가로막는 듯, 바보의 한쪽 다리에 달려드는 개의 모습이다. 개에 관한 중세의 전설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은 ‘겔러트’란 이름의 개 이야기다. 영국 웨일스의 한 왕자에게 겔러트라는 사슴 사냥개가 있었다. 왕자는 외출할 때에는 젖먹이 아들의 요람을 돌보게 할 정도로 이 개를 신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요람은 뒤집혀 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겔러트의 입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왕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겔러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말짱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핀 왕자는 방 한구석에 죽어 있는 송아지만 한 늑대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개는 그 충직함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뒤집어쓴다. 이것은 바보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으레 바보가 하는 짓이 어리석다고 업신여긴다. 영리하게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한다고 나무라면서 말이다. 자기의 길을 성실하게 걷는 사람에게 우리는 바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보 카드는 이러한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진정한 자기 길을 가려는 바보는 이 세계의 문을 열게 된다.

바보 카드가 가리키는 것은 사람들의 숱한 손가락질과 오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입문자를 말한다. 이것이 곧 참된 나(眞我)를 찾아 나서는 구도의 길이다.

대 비밀 타로 카드 22장이 가르쳐주려 한 것은 결국 이 발걸음이다. 길이 있고 길을 걷는 나그네가 있다. 그는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의 길은 별난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망설이며 한쪽으로 밀쳐낸 길일 뿐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바보, 그는 비웃음 가운데 완성을 추구하는 자다.

이 카드는 어떤 일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주 나온다. 이를테면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면 어떨까, 유학을 가면 어떨까, 그 사람과 사귀어보면 어떨까 등등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을 보여주는 카드라 할 수 있다. 애정 문제에서 바보 카드는 오해의 연속인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원하는 상대와 이어지지만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이 카드가 나왔을 때는 우선 시간을 갖고 장기전을 펼쳐가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섣불리 덤비면 꽃을 얻지 못할 것이다.

_ 정통 타로카드 배우기, 정홍경, 정연의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20세기 카페 

 이전편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