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없는 사진사와 우는 벽
벽은 울고 있었다. 낡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20세기 카페의 카운터 뒷 벽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 끝까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벽이었다.
‘뭐가 그렇게 슬플까?’
마법사는 그 벽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었다. 바라보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다. 벽이 잔뜩 눈물을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벽은 창문 밖으로 석양이 비추기 시작하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패인 틈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지길래 처음에는 옥상에서 물이 새나 싶어 살펴보면 하늘은 말짱하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물이 샌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새어 나온 물은 오래된 고목의 진액같이 끈적였다. 언젠가는 자기 얘기를 털어놓겠지 생각하며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마법사는 자꾸 바닥이 끈적해지는 걸 참지 못하고 마침내 먼저 말을 걸었다.
“왜 자꾸 우는 겁니까?”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요. 제 잘못이 아니라구요.”
“이걸 누가 치우라고. 매일 이렇게 울면 어떡해요.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제 같이 이 공간을 지켜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울면 어떡합니까? 뭡니까? 사정이나 들어 봅시다.”
“그런 게 어딨겠어요. 그저 눈물이 흐를 뿐. 죄송해요. 저 때문에 불편이 많으시죠.”
“불편하죠. 아주 불편하지만, 도대체 얘기를 해야 마법이라도 부려 볼 거 아니에요. 계속 기다렸다구요. 언제나 말을 할까 싶어.”
마법사가 다그치자 벽은 아예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물이, 아니 진액이 마구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시기 시작하자 마법사는 바텐 의자에 발을 걸치고는 난감해했다. 뭐라고 말을 더 걸 수도 없었다. 마음이 더 건드려지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홍수를 이룰 것 같았다. 마법사는 더 묻지는 못하고 가만히 울고 있는 벽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서쪽나라에서 왔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마법사님 맞군요. 저는 서쪽나라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해만 지면 그렇게 눈물을 흘린 건가요?”
“그런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법사님의 주문을 들으니 고향이 그리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고향이 어딘데요?”
“20세기죠. 제 고향은..”
“여기는 21세기에요. 우리 둘 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들어와 있군요.”
“마법사님은 어디서 오셨는데요?”
“나는 30세기에서 왔어요. 20세기를 거쳐 오기는 했지만. 21세기는 참 낯설죠?”
“네, 맞아요. 21세기는 낯설고 매정해요. 매일매일 이별하고 있죠. 제 이름은 인연의 벽이에요.”
“인연의 벽?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나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가고 이렇게 마법사님만 제 앞에 계시네요.”
“무거운 말이네요. 저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떠난다는 말에 벽은 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20세기에서 온 인연의 벽. 얼마나 많은 인연을 품고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별을 끌어안았을까? 이름에서부터 이미 슬픔과 아련함이 짙게 배어 나왔다. 게다가 20세기라니.
“20세기에, 사람들은 치열했어요. 치열하게 만나고 싸우고 또 헤어졌지만, 잊지 않았죠. 서로서로 잊지 않으려고 많은 기록을 남겼어요. 시인은 시로, 음악가들은 노래로, 화가는 그림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뮤지엄도 만들었죠. 그런 것들은 지금도 만들어지지만, 모두들 디지털 공간에 박제된 채로 지나가면 아무도 찾지 않죠. 아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해요.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0과 1의 디지털 조각으로 박제된다지만 발견되지 않으니 어떻게 알겠어요. 찾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21세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더군요. 숫자로 변환할 수 없으면 가치를 잃어버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런 걸 왜 하냐고 묻죠. 나는 왜 이런 시대에서 마법사를 하고 있는 걸까요? 22세기에는 달라질까요? 모르겠어요. 이대로 죽은 듯이 지나가야 하는 세기라니. 사막 같아요.”
“사람들은 내 앞에서 서로 속삭였어요. 사랑을, 우정을, 소망을, 열정을. 때로 내 몸에 그 흔적을 새기기도 했죠. 약속의 증표라고. 수많은 약속이 맺어졌고 그것들은 보증도, 보장도 없이 말과 눈빛으로 증명되었죠. 그래서 사기도 많고 상처도 많았지만 복수도, 용서도 모두 내 앞에서 이루어졌답니다.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내 몸에 모두 새겨넣었거든요. 말도, 눈빛도, 그림자도..”
벽은 눈물로 헐어 내린 자국 사이로 새겨진 사랑의 낙서와 믿음의 약속들을 보여주었다. 마법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움푹 패인 역사의 흔적들에 손을 대 보았다. 그곳에서 혁명의 함성과 전쟁의 포화, 해방의 선언, 성장의 아픔들이 울려 퍼졌다. 어둠이 내리는 20세기 카페, 인연의 벽에는 20세기 인류의 갈등과 연대의 상호작용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촤르르르~
아니 이것은 환영이 아니다. 누군가 실제로 인연의 벽에 대고 프로젝트 영상을 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머리가 없었다.
“실례합니다. 지나가다 벽이 울고 있길래.”
누군가 20세기 카페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만히 벽과 마법사의 대화를 듣고 있었나 보다. 이것저것 잔뜩 장비를 메고 지고 있는 그는 머리가 없었다. 목소리는 어디서 나는 걸까? 머리가 없는 손님은 작은 프로젝터를 손전등 삼아 마법사와 인연의 벽이 말없이 마주하고 있던 공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법사는 흠칫 놀랐으나 손님이 왔으니 커피를 내와야 한다.
“주문하시겠어요?”
“아 네. 여기는.. 카페군요. 저는 바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죄송합니다. 술은 팔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있죠? 커피?”
“네 커피와 차 종류가 있어요. 여기 메뉴판. 아 근데..”
손님은 머리가 없다. 그러니 메뉴판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는 메뉴판을 내밀다가 멈추었다.
“아 그냥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십시오. 대신 부탁이 있는데 여기 이 위스키를 좀 섞어 주실 수 있습니까? 커피 칵테일은 처음이긴 합니다만. 나는 한 잔 하고 싶거든요.”
머리 없는 손님은 코트 자락에서 삼분의 일쯤 남은 제임슨 위스키를 꺼냈다. 마법사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손님의 부탁이니 알겠다고 하고 아메리카노에 위스키를 섞었다. 비율을 얼마나 할지 알 수 없어 직관을 따라 내리는 마메리카노와 같은 비율로 섞었다. 술의 양이 좀 많은 듯했다.
“크으~ 커피 참 진하군요. 나는 사진사랍니다. 요 앞 남산공원에서 관광 온 사람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죠.”
머리 없는 사진사. 그는 자신의 직업이 사진사라고 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허공에 부어진 커피가 재킷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이 기이했다.
“머리가 없는데 사진을 어떻게 찍냐구요? 궁금하시죠?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거지 사람이 찍는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나는 필름 사진만 찍어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죠. 손님과 나 사이에는 믿음이 있답니다.”
머리 없는 사진사는 무얼 보고 셔터를 누를까? 사람들이 그의 기이한 모습에 놀라 달아나지 않을까? 질문이 마구 떠올랐지만, 마법사는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놀러 온 사람들은 내가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답니다. 이렇게 후드를 둘러쓰고 마스크도 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으면, 다들 포즈 잡느라 바빠서 내가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하죠. 요즘은 다들 고성능 카메라 한 대씩 들고 다니잖아요. 디지털카메라는 물론이고, 스마트폰이 웬만한 고급 카메라 성능 뛰어넘은 지 오랜데 말이죠. 그래서 나도 이제 굶어죽겠구나 했단 말이에요. 근데 희한하게 사람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달라는 거예요. 필름이라 바로 확인해 볼 수도 없는데 말이죠. 나도 그게 참 이해가 안 가요.”
“그것참 신기하군요. 그러고 보니 사진을 필름으로 뽑아본 지도 오래되었네요. 요즘은 다 화면으로, 모니터로만 보니까.”
“그래서 그른가? 필름 사진이라 인화해서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니까 다들 좋아하더군요. 게다가 요즘 그 MZ세댄가 하는 친구들은 필름 사진을 본 적이 없대요. 인화한 사진 말이에요. 그게 새로운가 봐요. 근데 여기 이 친구는 왜 울고 있죠?”
머리 없는 사진사는 벽이 울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마법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벽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인연에 대해, 20세기에 대해, 이별에 대해..
“이 친구도 나도 여전히 20세기를 살고 있군요. 그래도 나는 아직 사람들이 찾아주는데 이 친구는 많이 외로웠겠네. 나한테 20세기는 삶과 인연 그 자체였죠.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모든 순간을 기록했어요. 그리고 그걸 인화해서 온 방의 벽마다 붙여나갔어요. 기쁨과 슬픔, 공포와 환희, 절망과 소망의 순간들로 빼곡히 벽을 채워나갔죠.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지더군요. 새로운 우주가 열렸다면서. 모두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나는 카메라 뷰파인더에 비친 순간을 담을 뿐인데, 사람들은 아예 영혼을 모니터 속에 털어 넣어 버리더군요. 겁이 덜컥 났어요. 그건 진짜 삶이 아니잖아요.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들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예요. 거긴 호흡도 없고 온기도 없는데. 연속되는 분절된 장면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거예요. 그러니 책임을 지지도,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죠. 이것과 저것을 편집해 엮으면 새로운 사실이 탄생하니까. 무서워졌어요. 벽에 빼곡히 붙어 있던 사진 속 소중한 인연들도 하나둘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나는 그들을 현실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죠. 그들은 언제나 모니터 속, 화면 속으로만 나를 호출해요. 까똑, 까똑 부른 뒤에 자기 말만 하죠. 조금 진지한 얘기를 할라치면 반응이 없고, 바쁜가 보다 하고 기다리면 어디 다른 방에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간혹 현실에서 만나더라도 현실에서 만난 그들과 모니터 속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현실과 유리된 모니터 속 가상의 삶. 자고 일어나면 하나둘 현실을 떠나 모니터 속으로 이주한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와요. 그때마다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이 담긴 사진들이 바스락 부서져 내리고, 내 머릿속 기억도 함께 타들어 갔죠. 나는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상실감을 안고는 하루도 살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마다 칼로 머리를 잘라내기 시작했죠. 햄을 슬라이스 하듯 그들과의 남은 기억을 베어냈어요. 그건 가짜니까. 가짜 기억을 담고 살아갈 순 없어요. 남은 기억마저 썩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그의 머리가 사라졌다. 기억이 타버렸다. 찬 바람이 불고 석양이 지면 재가 돼버린 기억들 사이로 20세기의 추억이 타올라 그를 괴롭힌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는 위스키를 들이부어 그것들을 꺼버렸다. 그건 이제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 환영일 뿐이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인연의 벽도 잊었던 기억들이 타올라 상처를 건드린 듯 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기술이 마치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듯하지만, 기술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사람들이 아직 기술을 다룰 줄 모를 뿐인 거죠. 지금은 신기하고 마치 신세계라도 만난 듯 해서 모니터 속으로 몰려들어 가 버렸지만, 그곳에선 손과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느낄 수 없잖아요. 단단한 벽에 기대어 쉬는 편안함을, 따뜻한 인화지를 만지는 느낌을 디지털은 전해 줄 수 없죠. 그건 우리의 본능이니까. 창조는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들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거예요. 아니 우리가 다시 불러내면 되죠. 여기로 말이에요.”
“어떻게요? 어떻게 그들을 불러내죠?”
머리 없는 사진사와 인연의 벽은 눈물을 훔치다 말고 마법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법사는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낼 수 있다는 걸까? 어떤 마법을 부리려는 걸까?
“기술로 말이에요. 우리의 기억들, 추억들을 이 벽에다 상영하는 거예요. 가지고 있는 20세기의 기억들이 많잖아요?”
“아, 인화된 사진들 말이죠? 20세기의 기억들?”
“네, 그걸 아까처럼 이 벽에다 대고 상영하는 거죠. 다시 불러내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올 거예요. 지나가다 우연히 보고 들어온 사진사님처럼. 하나둘 찾아올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같이 노래를 불러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아! 이거 쎄쎄쎄 잖아요. 저도 할 줄 알아요. 우리 같이 해봐요.”
마법사와 머리 없는 사진사는 손을 마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마주쳤다. 잊고 있던 그것. 그러나 언제든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는 손뼉치기, 마주 잡기. 20세기 카페로 20세기의 노래와 손짓이 소환되었다.
“마법사님, 마법사님. 그렇다면 저를 하얗게 칠해 주세요. 제가 스크린이 될게요. 그때의 영상이라면 얼마든 제게 비춰 주세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환하게 비춰 줄게요.”
“아! 좋다. 그렇다면 내가 마법을 걸어볼게요. 음.. 이제 당신의 새 이름은 ‘인연의 물질적 발현’이에요. 고리가 끊겼던 수많은 인연들이 당신을 통해 기억을 되찾고 다시 연결될 거예요. 사람들이 모니터 속에서 뛰어나와 여기에서 함께 웃고 울고 즐기고 마시게 될 거라구요. 물론 저는 커피를 내릴 거구요. 모니터 속에서는 마실 수도 맛볼 수도 없는 마메리카노를 마시려면 여기 20세기 카페에 꼭 방문해야 할 테니까요.”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 없는 사진사는 부리나케 철물점에 가서 하얀 페인트를 사 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군대에서 페인트병이었다며 소싯적 솜씨로 빠르게 인연과 물질의 벽을 하얗게 칠하기 시작했다. 벽은 신이 났는지 연신 20세기의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사진사가 발라주는 하얀 페인트를 흠뻑 들이마셨다. 마침내 벽이 영상을 투사하기 좋게 새하얗게 칠해지자 사진사는 그간 꼭꼭 눌러 담아놓았던 20세기의 기억들,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하얀 벽에 상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쁨이 점점 차올라 그의 머리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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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