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슬픔은 영원히
Sep 11. 2022 l M.멀린

직관은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빈센트가 자신의 생을 마감한 곳. 그곳을 마지막으로 대륙을 떠나려 했다. 그가 생을 마감함 37번째 해에.
10여 년 만에 그곳에 이르렀다. 빈센트는 왜 여기서 자신의 생을 마감했을까? 아니다. 죽으려고 온 곳이 아니니 여기는 나아가다 만 곳.
세계는 하나다. 그러나 환영이라면 세계는 수도 없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내 앞의 세계가 참인지 거짓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인간인지 환영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허상과 대화를 나누는 나는 참으로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고 있을 테니. 귀를 자를 만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간단했다.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세계. 나를 제외한 세계, 나 이외의 타인은 모두 단 한 사람이다. 그러면 그것은 세계 전체를 포함하고 있으니 나와 타자, 나와 대상, 나와 상대는 그것으로 우주 전체일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참’은 단 한 사람이었다. 내 앞의 단 한 사람.
테오는 빈센트의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렸을까? 그를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을 그는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에게 글을 썼다.
그를 접한 건, 그림이 아니라 글이었다. 편지였다. 대화였다. 그가 동생과 나눈 편지글들을 읽고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의 삶과 닮아 있었다. 많은 이들의 경로가 그러했을 것이다. 테오의 아내는 형제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빈센트의 그림을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주고받은 글들을 번역하고 출간하는데, 생을 다 바쳤다. 두 사람의 편지글 663편 중 526편을 번역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아이가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부숨에 왔다. 그리고 우리 둘이 먹고살기 위해 하숙생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그들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빨래하고 청소하는 기계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테오는 내게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아니,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고 함이 옳다. 그는 내게 아이 말고도 또 하나의 유산을 물려줬다. 빈센트의 작품. 나는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가치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테오와 빈센트가 평생 동안 모은 이 보물들을 아기를 위해서라도 잘 보존해야겠다. 그게 나의 일이다.
_ 요한나의 일기. 1891년 11월.
테오는 그의 단 한 사람이었다. 요한나는 테오의 단 한 사람이었고 고흐 형제는 요한나의 단 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집 안 가득한 무가치한 빈센트의 그림부터 처분하라고 했지만 요한나는 한점도 빠짐없이 수습하고, 이런 행동을 이해 받을 수 있는 예술가들의 동네에 하숙집을 차렸다. 그녀의 하숙집은 자연스럽게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빈센트가 단 한 사람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_ 오베르 쉬르 우아즈,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한 하숙집 앞에는 늘 그와 그의 단 한 사람을 위한 잔이 놓여 있다.
Van Gogh The Traveler
아직도 나는 어딘가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여행자인 것 같다.
_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8월
그는 37년 동안 4개국 38개의 다른 주소를 가져야 했다. 그림 도구와 몇 권의 책이 그의 가진 것 대부분이었다. 가난한 화가는 사치스러운 예술을 하고 있었다. 물감이 필요한 예술이라. 돈 없이 할 수 없는 예술. 그리고 수입의 대부분, 아니 테오의 지원 대부분은 물감을 사는 데 쓰였겠지. 하고 싶은 창작을 돈이 없어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슬픔은 영원하다.
_ 빈센트 반 고흐
슬픔에 빠지지 않으려 그는 이곳 오베르에 묶는 70일 동안 70점의 그림을 그렸다. 더 이상 그리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는지. 그는 마지막에 혼신을 모두 쏟아냈다. 그리고 총상을 치료하지 않기로 했다. 죽음을 선택했다. 다 이룬 것이다.
오베르에서 연필 한 자루를 샀다. 화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창작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작가에겐 그저 연필 한 자루면 충분하다. 그리고 돈이 없어 쫓기듯 여행을 떠나야지, 슬픔은 영원하니까.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에는 해바라기를 심어 놓아 봉분을 이루고 있다. 이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인 그의 무덤에 그의 명성을 따라 수많은 추모객들이 화환을 가져다 놓을까 생각했는지, 그 광경을 하늘에서라도 바라보면 마음이 상할까 그랬는지, 해바라기로 뒤덮인 그들의 봉분에는 화분 하나 놓을 자리가 없다. 아니 놓을 자리를 없앴다. 그것이 옳다. 이제 와 다들 뭐라고. 이것은 그 둘의 세계이고, 빈센트와 단 한 사람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저 엿볼 뿐.
They are immense expanses of grain under clouded skies, and I have not hesitated to try to express melancholy and extreme loneliness.
_ Letter 649,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1890년 7월
사람들은 그의 삶을 비극적이라고 안타까워하지만 단 한 사람을 가진 이는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런 예술가는 세상에 많지 않다. 많은 예술가가 단 한 사람이 아닌 모두를 위해 예술을 하다가 그만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단 한 사람을 가진 이는 창작을 멈출 수 없다. 그가 관심을 거두기까지. 그것은 소중하다.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 보아주는 단 한 사람. 읽어주는 단 한 사람. 그러면 나는 글을 쓸 이유가 충분하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래왔다. 단 한 사람을 향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직관은 가지 말라고 했나 보다. 단 한 사람을 찾기 전에는. 행여나 글쓰기를 멈출까. 읽고 있는 단 한 사람 그대를 향해.
극도의 쓸쓸함과 외로움,
그것과 공존할 수 있을까? 창작자에게 찾아오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주저 없이 맞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을 연료 삼을 수 없다면 우리는 무가치하게 반복되는 대화를 갈망할 테고,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표피적인 공동체를 찾아다닐 거야. 그도 한때 그랬지. 광부들과 낮은 공동체를 꿈꾸고 창작자들과의 공동체를 시도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가진 단 한 사람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가 보아주기에 그림을 계속 그렸지. 동생이니까 하고 단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은 것은 그가 경제적으로 의존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었던 거야. 서로서로 성장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의 창작은 혼자만의 창작이 아니었던 거야.
공동체적 창작을 꿈꿨던 그에게 그것은 알지 못한 채로 주어진 소중한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알려졌다. 우리는 그것을 모방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지만, 단 한 사람을 향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건 반복될 거야. 단 한 사람에게서 다시 단 한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슬픔. 자신의 때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쓸쓸함. 그것은 영원하니까. 그것이 창작자의 연료이니까.
기쁨은 이내 사그러들지만,
슬픔은 영원하다.
그리고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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