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순풍인가 역풍인가
Sep 16. 2022 l M.멀린

<위즈덤 레이스>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는 쥘 베른이다. 낭트에 오기 전까지 그가 <해저 2만리>, <지구에서 달까지>, <지구 속 여행> 등의 작가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좋아했던 <15소년 표류기>까지.
그의 상상은 많은 것들이 현실화 되었다. 잠수함, 입체영상, 해상도시, 텔레비전, 우주여행, 투명인간 등의 개념을 사상 최초로 제안했거나 혁신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1989년에 우연히 발견된 그의 미발표 원고에는 지금의 컴퓨터와 인터넷 같은 기술도 등장한다고. 1828년에 태어나 1905년에 죽은 19세기 작가의 상상력은 인류 진보의 방향을 정했고 인류는 착실하게 그의 상상을 현실로 가져오는 과업을 행해온 것이다.
SF 문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쥘 베른은 실은 ‘Futurist’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의 개념들은 단순한 상상이 아닌 구체적인 기술적 고민과 연구를 미래로 확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구에서 달까지>에 표현된 유인 우주 비행을 위한 이론들은 아폴로 계획상의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고. (작중 대포를 발사할 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미국 영토 내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에 대포를 설치하는데, 이 위치가 실제 케네디 우주센터와 거의 일치한다. 심지어 같이 언급된 위치는 실제 휴스턴에 위치한 존슨 우주 센터 근방이다. 또한 작중 서술된 포탄의 궤도마저 실제 아폴로 계획의 궤도와 유사한 수치였다. _ 나무위키) 그의 시선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진보하는 인류의 미래를 향한 것이기에 그의 상상은 매우 가치 있다. 그리고 그의 상상은 한 세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을 검색하다 놀란 것은 그의 작품 중에 <서기 2889년>을 발견하고 였다. 여기 또 1000년 뒤의 미래를 상상한 사람이 있었다니. 1889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그로부터 1000년 뒤인 2889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번역본이 없어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29세기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마법사가 떠나온 30세기로부터 한 세기 전의 사람들은 21세기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많은 SF 작품들이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인류의 미래 예측은 자주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일부일뿐인 인간에게 무슨 죄가 그리 많다고. 좌충우돌하며 우주 시스템의 버그를 찾아내고 확장성을 도모하는 것이 인류의 사명인 것을. 모험하지 않는 자는 도태될 뿐이다. 그리고 쥘 베른의 상상 속 인류는 지구고, 우주고, 지하고, 해저고 상관없이 모험하고, 도전하고, 탐험하고, 경험하는 인류이다. 호모 노마드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쥘 베른의 과제를 수행 중이다. 이제 우주로 나아가야 하니 말이다. 또 누군가 들은 지저地底세계 탐험을 시작하겠지. 고작 지구의 표면에서 깨작거려 놓구선 환경을 파괴해 봐야 얼마나 파괴했다고. 소행성 충돌 한 번이면 멸종할 것들이. 그래서 돌아오는 재앙은 인류에 국한된 것이며 종들은 그저 변화의 순환을 경험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 인류의 죄라면 나아가지 않는 것. 일주를 시작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일 테다.
여기 낭트는 쥘 베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의 정신을 본받으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그중에 기계 동물원이 있는데. 폐조선소의 버려진 고철들을 활용하여, 쥘 베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기계화된 동물로 재창조해 내었다. (낭트는 조선업으로 흥했던 도시인데, 유럽의 그런 도시들에서는 폐조선소 공간을 재창조해 내 문화 콘텐츠로 탈바꿈시키는 흐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기계 동물 테마파크 ‘레 마신 드 일 Les Machines de L’ile’ 의 기계 동물들은 매우 감동적이다. 모두가 사람이 조종하고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로봇 태권브이와 훈이의 공진화를 상상케 하는데.

생물학적 진화의 길을 거부하고 도구적 진화를 선택한 인간의 선택이, 인공지능 생물체를 창조하게까지 된 인간의 선택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지 마법사는 의문이다. 도구적 진화를 선택함으로써 빠르게 지구의 정복자가 될 수는 있었으니, 그것의 계속은 태권브이와 훈이의 관계처럼 공진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태권브이에게 자아를 심겨주는 것 말고 말이다. 본능이 아닌 선악을 판단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생물은 인간의 고유한 것으로 두고, 기계는 기계의 역할을, 인간은 인간의 역할을 하며 서로를 발전시키는 방법으로도 진화가 가능할 텐데.
마법사는 그러한 방향의 진화는 어떤 모습일까를 가끔 생각해보는데 여기 기계 동물원은 그것의 어떤 형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인간이 조작할 수 있는 기계 그리고 그 기계와 함께 진화해 가는 인간. 메카닉이 돋보이는 이 테마파크의 기계 동물들은 저것을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 쳐 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텐데 하는 의문을 불식시켜 주었다. 테마파크 바로 옆의 대규모 작업장에서 지금도 동물들이 제작되고 관리되고 있고 그 현장을 관람객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부실한 테마파크들의 작동하지 않는 대부분의 기계들과 달리 여기 테마파크의 기계 동물들은 매우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었으니.

가만 보고 있자니, 기계적 작용을 제외한 모든 전자 제어 시스템을 붕괴시킨 <듄>의 세계관이 떠오르며, 이것은 도구적 진화의 어떤 유토피아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인류의 진보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Futurist 들의 개념적 도전과 경계와 검열이 없는 이미지들로 급격한 진화를 이루었는데. 이제 우주로 나아가야 할 인류에게 그 상상의 현실화는 어설픈 창조주로서의 월권이 아닌 만물과의 공진화의 방식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어떤 이들은 종말을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데 1000년 후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상의 계속은 유토피아적일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이들은 무언가를 상상하고 만들어낸 이들일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쥘 베른의 미래 기억은 여전히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죽고 거의 100년이 흐른 뒤에야 발견된 작품 <20세기 파리>에서는 1863년의 시점에서 100년 후인 1963년의 프랑스 파리를 기록하며, 텔레비전, 에어컨, 유리로 만든 고층빌딩, 엘리베이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국제금융시스템까지 예측하면서도, 인문학을 전공한 청년이 비지니스와 엔지니어링으로 가득 찬 20세기에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다가, 입대 시도조차 드론으로 가득 찬 군대 시스템 때문에 거절당하고 빈곤 속에 죽어가는 현실을 예언했으니. 더 이상 아무도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을 거라는 그의 20세기에 대한 상상은, 아무도 시집을 사지 않는 21세기의 현실로 실현되고 말았다. 감춰졌던 이 소설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사람들은 계속 시를 쓰고 읽었을까?
그러니 누구든 미래를 기억해내고 원하는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것은 말이고, 글이어도 현실이 되고, 상상할 줄 모르고 복종하기나 하는 인간들은 주어진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 바칠 테니, 미래는 결국 꿈꾸는 이의 몫이 되는 걸, 기억해 내는 이의 몫이 되는 걸.
고향 낭트의 언덕에서 자신의 글이 가득 실현된 100년 뒤의 미래를 보며 쥘 베른은 뭐라 말했을까?

아직 시작도 안 했네.
자네는 아직 지구도 못 떠나보지 않았는가.
하지 않겠는가, 우주는커녕 지구의 반도 밟아보지 못한 인간들아. 그러고 보면 블록체인/암호화폐를 기반한 창작자들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스팀시티]의 미래 기억은 그에 비해 초라한 건 아닌지. 100개 도시까지는 지구에 만들어도 1000개의 도시는 별들에 만들어지겠지.
“그건 순풍입니까? 역풍입니까?”
_ <80일간의 세계 일주> 中, 상하이로 가던 기선의 선장이 태풍의 기미를 알려오자 잠시 고민하던 포그씨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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