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갇혔습니다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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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갇혔습니다. 오도 가도 못합니다. 꾸준히 계속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벗어나려면 제자리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제자리걸음은 마치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성장하는 일입니다. 키가 자라나는 일입니다. 성과가 조금이라도 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조금이라는 성과도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래프가 단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면 전년대비, 전월대비, 전일대비 소폭 성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거대한 위기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테니까요.

갇히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너무 쟀다던지, 지나치게 무모한 실수를 반복했다던지, 암튼 무엇이든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면 앞뒤 사방을 모두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갇혀있는지 말이죠. 그런데 그거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앞뒤 사방 모두 각각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이래서, 저 길은 저래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냥 제자리걸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그렇게 결론 내리고 맙니다.

차라리 제자리걸음이라도 분명하게 걷는다면 땅을 파고 들어가기라도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지구 반대편에서 뚫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대단하다!’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지치기 쉽습니다. 앞뒤 사방의 풍경이 늘 똑같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없으면 사람은 금방 지루해지고 지칩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데 아주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것은 주로 중독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구강중독(야식, 담배, 술..), 관계중독 등등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시키는 메뉴도 매일 똑같습니다. 좀 다른 메뉴를 시켜봐도 좋겠건만, 한참을 뒤적거리다, 배달 앱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메뉴를 눌러보다, 결국 맨날 시키는 그걸 오늘도 또 시킵니다. 그게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늙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얼굴이 창백하기만 할 뿐입니다. 귀신이거든요. 살아있으나 죽은 자, 죽었으나 살아있는 척하고 있는 좀비이고 귀신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얘기는 언제나 같습니다.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 소싯적의 한 가닥, 격렬했던 인생의 한순간만을 끊임없이 리플레이합니다. 그 얘기만 합니다. 술만 취하면 떠들어 대는 그 소리 말이죠.

현재를 살고 있지 않으니 그들의 삶은 과거의 한순간에 그냥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늙지도 않고, 백년 천년을 삽니다. 나이를 묻지 말고 기억을 물어보세요. 그 사람의 현재를 물어보세요. 제 나이를 살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사람은 늙습니다. 근육은, 피부는, 사용하면 늙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쌓이고 여기저기 상흔이 남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늙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점점 젊어집니다. 젊은 정신은 그들을 더욱 달리게 합니다.

갇혔으면 빠져나가야 합니다. 탈출을 감행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제자리걸음 한 거 아닙니까? 죽을까 봐 말이죠. 덕분에 죽지도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귀신으로 말이죠. 아.. 뭘 많이 하고 있다고 Todo List를 들이대지는 마십시오. 제자리걸음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법이니까요. 성장하는 사람은 격렬하지만 바쁘지 않습니다. 계절이 언제나 한결같던가요? 날씨와 기온조차 매일매일이 다릅니다. 그러니 달릴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24시간 365일 달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일을 하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시간은 그리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사람도 많고 저마다의 할 일도 나누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쁜 사람은 혼자 모든 일을 걸머지고 제자리걸음 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야 그래도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빠져나갑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넘어지는 겁니다. 그냥 앞으로, 뒤로, 고꾸라지는 겁니다. 왜냐구요. 스텝이 엉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리걸음의 스텝과 달리기의 스텝이 같을 리 없습니다. 쓰는 근육도 다르고 내딛는 보폭도 다릅니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건너뛰어야 하고 강물은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달리는 사람의 근육은 다양한 환경에 반응합니다. 그러나 제자리걸음 하는 자의 스텝은 중력만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리걸음의 스텝을 멈추려면 일단 스텝이 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니, 몸은 체력장 다음날처럼 욱신욱신 쑤시고 여기저기가 아프기 마련입니다. 넘어지는 순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들기도 합니다.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그리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뜨는 순간, 별거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게 두려우면 꺼지시고..

그러나 일단 한 번 고꾸라지고 나면 하늘이 보입니다. 제자리걸음 하느라 앞만 보던 시야가 자유로워지며 파란 하늘,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걷고 있는,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동안 자기한테 뭐라 할까 봐, 같이 뛰자고 손이라도 내밀까 봐, 애써 외면해 왔던 그들이 웃으며 휙휙 지나갑니다.

“hola! buen dia!”

웃어주세요. 넘어졌다고 쪽팔릴 거 없습니다. 곧 웃으며 달려간 그들이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곧 모두 인생 대로에서 만나게 되어 있지만요. 그런 겁니다. 달린다는 건.. 실수가 많고 실패와 시행착오, 쪽팔림과 억울함, 분노와 좌절이 마구 교차하는 일입니다. 지구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계곡과 골짜기, 산과 바다, 폭풍과 태풍.. 그런 속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그러니 스릴 만빵입니다. 그런데 모든 종이 다 그렇게 삽니다. 심지어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나무와 바위 조차 폭풍 한설을 견뎌냅니다. 홍수에 잠기기도 하고 가뭄에 말라비틀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온실 속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그대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귀신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자리걸음은 지루합니다. 귀신의 일상이 얼마나 지루합니까? 그냥 가끔 불쑥,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워!’하고 놀래킬 뿐입니다. 잘 달리는 사람들 겁이나 줄 뿐입니다. 권태로울 뿐입니다. 무기력할 뿐입니다. 그냥 그날이 그날 같을 뿐입니다.

제자리걸음은 빨리 멈춰야 합니다. 무릎 나갑니다. 물론 인생의 어떤 시점에 앞뒤 사방으로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시절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달리는 자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달리느라 지쳤으니 기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숨을 고르며 가만히 있습니다. 성장하느라 지친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고 휴식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구는 둥글고 지금도 쉬지 않고 돌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갇혔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걷고 달리는 지구 위에서 가만히 서서 중력을 견뎌내시느라 얼마나 힘듭니까? 제일 편안한 걸음은 지구의 속도로 달리는 겁니다. 지구와 함께 달리는 겁니다. 바람과 함께, 폭포와 함께, 떨어지고, 솟아오르고, 흐르는 겁니다. 그게 제일 쉽습니다. 그건 그냥 몸을 맡기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견디는 건, 참는 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건.. 못 할 짓입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지구 위의 어떤 종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귀신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갇혔습니다.
뭔 말인지 모릅니까? 됐습니다. 그냥 제자리걸음이나 하십쇼.

휘리릭~

P.S.
어딜 아닌 척 돌아봅니까?
니 얘기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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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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