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100’이 될 수 없는 이유

2019.03.01 

 

 

‘50’이 ‘100’이 되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수성가하려면 자신을 깎는 노력과 함께 운도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세상에는 많은 ‘50’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100’이 되고 싶어 합니다. ‘50’이 ‘100’이 되는 것을 누구는 ‘성공’이라 부르기도 하고, 누구는 ‘목표’라 부르기도 합니다.
 
필요하다면 ‘100’이 되어야겠지요. 게다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50’으로 역부족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100’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50’이 ‘100’이 되기는 요원합니다. 재능과 열정 그리고 기회.. 인적, 물적 기회가 동시에 주어지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개인의 꿈을 위해서라면 그 일은 소망 가운데 이루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일. 내가 아닌 모두의 필요를 위한 일이라면 우리는 힘을 합해야 합니다. 이럴 때의 ‘50’은 또 다른 ‘50’과 함께, 또는 ‘25’, ‘10’들과의 연합으로 ‘100’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50’이 ‘50’과 연합하여 ‘100’이 되는 일. 쉬운 듯 보이지만 실은 ‘50’ 스스로 ‘100’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50’과 ‘50’이 만나서 ‘100’이 되어 시너지를 내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커다란 함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함정의 첫 번째는 과장된 자기인식입니다.

많은 ‘50’들은 자기를 ‘50’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50’은 참으로 애매한 위치이거든요. 확률이 반:반.. 성공할 확률 50% 실패할 확률 50%.. 즉, 시도해 보지 않은 ‘50’이라면 아직 성공할 확률 ‘50’에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은 좀처럼 연대하려 들지 않습니다. 아직 자신의 가능성에 기대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지요.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 확률을 다른 ‘50’과 함께 할 수 있겠지만,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은 승자독식의 유혹을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에게는 손 내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신들에게 빌붙거나 갈취하려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실패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제서야 자신이 ‘50’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요. 반쯤은 포기하고, 반쯤은 꿈과 열정만 손에 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 즉 ‘온유’해진 상태가 되어야 손 내밀 수 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주변에 다른 ‘50’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게 되죠. 두 번째 함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함정 두 번째, 역시너지

‘50’과 ‘50’이 만나 시너지를 정상적으로 낸다면 그 결과는 ‘2,500’이 되어야 합니다. 시너지는 곱하기이니까요.

: 50 X 50 = 2,500 _ 시너지 효과

그런데 만신창이의 ‘50’과 ‘50’이 만나면, ‘2,500’은 커녕 둘의 합인 ‘100’도 안 나옵니다. 무기력을 절감한 ‘50’과 ‘50’이 서로 미루고 또 상대에게 의지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50’과 ‘50’의 시너지는 도로 ‘50’이 되고 맙니다.

: 25 + 25 = 50 _ 역시너지 효과

이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결과입니다. 이런 시도는 결국 포기로 이르는 지름길로 내달리는 꼴이 되지요. 그리고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서라, 내가 다 해봤는데 아무 소용없더라.”
 
동역자란, 같은 목표를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 손해 보거나,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는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함정은 ‘100’의 현상 유지 입니다.

어떤 ‘50’이 행운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100’이 되었다고 합시다. 이 ‘100’이 ‘50’을 끌어 줄까요? 그런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100’이 계속 ‘100’이려면 ‘100’들과 일해야 하기 때문이죠. 수성은 쟁취하는 것보다 어려우니까요.
 
많은 ‘50’들이 ‘100’들을 보며 불평 합니다. 왜 ‘100’이나 가졌으면서 ‘50’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느냐고?그것은 프로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100’이 ‘0’이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왜냐하면 자수성가한 ‘100’은 자신 외에는 아무런 안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매번의 도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뾰족한 산꼭대기에서 하이힐 신고 춤추는, 젓가락들의 군무 같은 아슬아슬함입니다. 그런 그에게 다른 ‘50’들에게 나누어줄 여유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답답하시죠? 그러면 ‘답은 있나요?’ 그렇게 묻고 싶으신가요? 저도 묻고 싶습니다. 저도 아직 ‘50’이거든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저도 스스로 ‘100’이 되면 ‘50’을 거둘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수성가한 ‘100’, 성공하려고 몸부림치는 ‘70’, ‘80’들에게 삐대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요구하지도 빌붙지도 않으려구요. 그래야 당당하겠고 또 그래야 ‘100’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100’에게 아무리 살신성인해도 ‘100’이 되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얻은 ‘100’인데요. 당신에게 떨어지는 것은 고작해야 ‘5’나 많아야 ‘10’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은행 금리 정도의 호의밖에 베풀지 않으니까요. 착취당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대신, 스스로 ‘100’이 되기 전에, 혼자 걸어가는 ‘50’을 만난다면 예의 주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연대를 도모해 보기는 하겠습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50 X 50’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50 X 50’의 관계는 절대 깨어지지 않습니다. ‘50’ 혼자서는 절대 ‘2,500’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해야, 아주 잘해야 ‘100’이 될까 말까 한데, ‘2,500’ 이라니..
 
누군가 정말 현명한 ‘50’을 만난다면 당신과 ‘2,500’의 꿈을 꾸어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그러다 늙어 죽을 것 같아 일단 ‘100’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당신이 ‘50’이라 느껴진다면, 게다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기댈 누군가도 없이 이미 ‘100’을 향해 걷고 있다면, 한 번쯤 共作所와의 연대를 생각해 보셔도 좋습니다. 꼭 손잡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달리는 ‘50’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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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10년 전의 글입니다.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보니, ‘100’이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2,500’이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럴수록 ‘2,500’이 되는 일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식이 아닌 번식 말이죠.

50 X 50..

50 X 50 X 50 X 50 X 50 X 50 X 50 X 50 X ……….

어떻습니까? 어디 우주정복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이 미련을 못 버리고 아직도 ‘50’으로 남아 있습니다. 허파의 바람이 잔뜩 들어가 ‘2,500+α’ 만 꿈꾸다 보니, 이제 ‘100’은 시시해져서 거저 줘도 하고 싶지 않아 큰 일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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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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