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테면 도망쳐라

 

나는 너를
팔짱 끼고 돌아서서
오도 가도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다.

여기서 또 도망가면
나는 너를 여기서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너는 버려졌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버린 것은,
너 자신을 버려 버린 것은,
돌아서서 도망쳐 버린
바로 너다.

가혹하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한들
소용없다.
그렇게 투정할 기운이 있거들랑
돌아서서 정면으로 너를 직면해라.
도망가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이를 악물고
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분명 너는 참혹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
바라보는 순간
가면 속의 너는
더욱더 가련한 모습으로
네게 도움을 청하고 있을 게다.
제발 이제는 숨을 좀 쉬고 싶다고
제발 나를 이제 이 외면의 자리에서 놓아달라고..

도망칠 테면 도망쳐라.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버티고 서있을 테니..

네가 너를
너 스스로를
직면하기까지,
해는 멈추고
달은 뜨지 않으며
비는 내리고
먹구름은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너하고 나,
그리고 가면 속의 너만 남아
지루하고 긴긴 대치를 하고 있을 테다.

삼십 년 사십 년을
이렇게 돌아서서 외면한 채
흘려보낸 너에게,
돌아서라고
이제 너를 만나라고
다시 입을 열어 말하고 있다.

너는 여전히 귀를 틀어막은 채..

 

[2010.09_ asahikaya_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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