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망설여라

시작하기 전에 망설여라.
운명이 너를 쥐고 흔들기 전에..
운명이 네게 숨 쉴 틈 없이 몰아치기 전에..
일단 시작되면
너는 정신도 차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가혹한 운명의 폭풍이 몰아치고
아직 각오도 서기 전에 너는 링의 한복판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너는 운명에게 네 머리채를 쥐인 채,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기 시작한다.
멈출 수도 없고 멈춰지지도 않는 거친 물살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뻑뻑 공포의 눈물만 흘려대는 것이다.
그리고 연신 후회만 하는 것이다.
망설임 틈도 없이 질주하는 네 운명의 폭주에
너는 망설여 보지도 못하고 계속 후회만 하는 것이다.
손써볼 틈도 없이 계속 후회만 하는 것이다.
네가 사용한 너의 자유의지의 모든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이를 악무는 것이다.
초점 없이 흐리멍텅하던 눈을 날카롭게 하고
흐물거리던 주먹을 손톱이 박히도록 틀어주고는
일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너의 링에 이제야 올라서는 것이다.
서릿발같이 눈을 부릅뜨고
주먹이 터져나가라고 힘을 쥐어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야 너의 링에 네가 올라선 것뿐이다.
운명은 너를 한치도 봐주지 않는다.
삶의 링 한복판에 던져놓고 시작종을 울려대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정신없이 얻어터지는 수밖에 없다.
칠전팔기는 시작도 해 보지 못한 것이다.
너는 이제 네 인생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뿐이다.
전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만 몰려드는 것이다.
전략과 전술은 끝없이 얻어터지는 가운데 몸에 배는 것이다.
너는 이제야 배우는 것이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법을.
울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을.
슬퍼도 웃는 법을.
그래서 너는
넘어지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쓰러지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서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하다 보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고
너는 그저 아무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채로
운명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운명에 간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울부짖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나의 운명,
이제 받겠노라고
이제 수용하겠노라고
그러면 그러면
너는 운명보다 앞서기 시작한다.
너 스스로 선택한 운명에 질질 끌려가는 네가 아니라,
어느새 일어서고 달리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때를 기다리느라 지루해 하는 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운명보다 빨라진 직관으로
운명을 도리어 재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너는 하늘을 날으고 구름을 움직이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한 자신에게,
견뎌낸 자신에게,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게..
시작하기 전에 망설여라.
아직 시작 전이라면 망설이고 또 망설여라.
그리고 선택하지 않겠거든 도망치고 또 도망쳐라.
블랙홀 같은 운명이 네 그림자라도 발견하고 빨아들이기 전에
흔적도 남기지 말고 사라져라.
그러나 선택했거든 이제 망설임은 없다.
할 수 있는 건 후회뿐이다.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할지언정
망설일 수는 없다.
다시는 망설일 수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지금!
아직 선택 전이라면,
아직 시작 전이라면,
망설여라.
마음껏 원 없이 망설여라.
기회는 지금뿐이다.
[2009.09_ tate modern_ 빈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