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왕국
Jan 21. 2024 l M.멀린 l 에필로그

겨울왕국은 다른왕국이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드는 게 아닌. 그래서 손을 씻을 수도 없다. 얼어버릴 테니까.
겨울왕국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얼음을 깨고 나왔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바닥부터 기어서.

17년 전 그는 뮤지컬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뭐든 같이 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작은 아카데미를 열었고 그는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그는 학생들과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첫공을 마치고 나는 그를 끌어안으며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며 감격했다. 한 번도 뮤지컬을 만들어 본 적 없는 그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낸 작품은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하지만 마음과 정성은 미숙하다. 그들은 모두 혼돈에 휩싸였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를 잃지 않았다. 그는 다시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오롯이 자신만의.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다시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는 오랜 세월 바닥을 기어야 했다.
7년 전 우리는 우연한 일로 런던에 가게 되었다. 그는 그때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자신의 뮤지컬을 공연하는 꿈. 그리고 나는 런던에 가게 된 우연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 일은 혼돈에 빠져 들었으나 우리는 비켜날 수 있었다. 나는 덕분에 그를 잃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다시 기었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려는 찰나 코로나가 터졌다. 그는 전기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다. 배달 가는 길이라며 뮤지컬을 계속할 거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눌려있던 용수철처럼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런던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새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런던레코드>라고. 그는 내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나는 ‘must dream’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티눈 박힌 발을 질질 끌며 런던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런던은 비싸고 비쌌다. 간신히 찾은 공연장 리스트 몇 개를 전해주며 나는 런던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런던은 비싸니까.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지난 화요일, 뮤지컬 <런던레코드>의 런던 공연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공연은 토, 일. 공연장은 발로 찾은 바로 그곳.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런던도 비싸지만 우리의 꿈도 비싸다. 감격이 밀려왔다. 런던이라니. 그리고 17년 만에 다른왕국의 궁전에서 그의 첫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역시 해냈고, 나는 우연히 행복해졌다.

그는 공연소개를 하며 제대로 준비를 못해 엉망진창이라고, 홍보도 못 했지만 이게 제 스타일이라고, 아무도 안불러줘서 그냥 왔다고,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알고들 오셨냐고, 두 명 앉아 있을 즐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모두 우연히 행복해졌다. 앞으론 런더너들이, 세계인들이 행복해지겠지. 그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고 첫공이었겠지만 나는 피날레다. 나는 그를 잃지 않았으니까. 그의 감격스런 첫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까. 런던에서. 이것이 나의 London Record.

하지만 그는 얼음에 갇힌 마법사를 녹이진 못했다. 불시도착, 정시출발하는 마법의 열차는 예정된 시각에 the other palace를 떠나버렸으니까. 이것으로 그와의 시즌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법에 기대지 않고 기어오르기의 명수이니, 마법사는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다른왕국 성벽 위에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 몇 번의 겨울을 보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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