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바비가 된 P씨의 아내

[MUSIC 100] Aug 05. 2023 l M.멀린

P씨는 혀를 끌끌 차며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사라져 가는 가부장제 종교의 열성 신도답게 무너져 가는 구 시스템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부모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거든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어다.’ 아이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가족을 벗어나선 안 돼요.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건 가족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이에요. 결혼도 하기 전부터 따로 살기 때문이에요.”

“성인이 되면 독립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요즘 사람들은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오히려 다 큰 아이들이 부모에 의존해서 좀처럼 자립하지 못하는 게 사회문제인 것 같은데 말이죠.”

마법사는 P씨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이 P씨를 더 자극했다. P씨의 승합차는 남성역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남태령 고개에서부터 피난 차량들처럼 끝도 없이 넘어오는 차들이 인근 사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에 지친 P씨는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대한 한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몰락해 가고 있는 가부장제에 대한 P씨의 강력한 신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독립이요? 독립이 뭐죠? 부모를 떠나도 우리는 가족입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 돕고 보호받고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 구성원인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공동체가 다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 각자 살 궁리를 해대지만, 아무도 자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자립을 해야 독립을 하죠. 독립한답시고 혼자 나와 살면서 부모 카드에 의존해 사는 애들이 무슨 독립을 했다는 겁니까? 사람들은 가부장제를 고리타분한 구습쯤으로 여기지만 다들 잘난 부모,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못한 걸 한스러워하지 않습니까? 가부장제, 대가족제도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제도예요. 함께 어울려 살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야죠. 부모자식도 서로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 고소고발을 해대는 사회가 어찌 살만한 사회겠어요.”

“음.. 그 얘긴 일리가 있네요. 독립보다 자립이 먼저죠. 가족이란 경제공동체고, 모름지기 가부장이라면 경제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돈 못 버는 가장에게 순종할 가족은 없죠. 사랑도 경제적 보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정뿐이고 그럴듯한 말 아니겠어요? 금강산도 식후경, 사랑도 식후애니까. 먹이고 입히는 게 부모의 역할이고, 먹이고 입혀야 부모의 은혜죠.”

마법사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러니까 P씨가 신봉하는 가부장제 기반 가족제도의 핵심은 결국 가장의 경제력이 아니겠냐는 말로 말이다. P씨는 실은 요즘 셋째 아이의 유학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 가부장제의 수호자답게 P씨는 대가족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다섯이다. (게다가 모두 아들이다.) 덕분에 그는 저출산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다둥이 자격으로 금싸라기 같은 강남땅 한복판에 지어진 대형 아파트에 입주할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물론 임대아파트이다. 20년짜리. 그는 마법사에게 자주 말했다. 요즘 세상에 둘은 하나보다 못한데, 셋을 나을 거면 넷을 낳는 것이 ‘다둥이’ 혜택을 톡톡히 챙겨 먹을 수 있다고. 저출산 시대의 다둥이 자격은 실로 막강해서 온갖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다. 그는 지갑 속에서 다둥이 카드를 척 빼 보이며 공영주차장과 각종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무료 통과하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마법사는 이 시대의 마법은 다산에서 나오는구나 생각하며 ‘아이 낳을 용기’야 말로 이 시대의 전략이 아닌가 생각했다. 

“근데 유학 간다는 셋째는 어떻게 됐어요? 이번 방학 이후 바로 나가는 겁니까? 왜, 좋은 기숙학교에서 입학허가가 나왔다면서요?”

“그게 좀.. 고민이 많아요. 지난번에 나갔을 때 답사를 가봤는데, 시설이 너무 좋더라구요. 커리큘럼도 잘 되어 있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이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되기는 하겠더라구요. 근데..”

“아, 그래요? 그럼 무조건 보내야죠. ‘근데’가 웬 말입니까? 아, 학비가 너무 비싼가?”

“뭐, 아무리 비싸도 아이한테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든 마련해야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랑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아이는 엄마 아빠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떨어져 지내다 애가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까 봐 망설여지는 거죠.”

P씨는 아이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대(?)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부모 동반 불가’. 임대, 아니 아이의 독립은 P씨에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이는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 곁을 떠나선 안 되는 존재이니까. 아이에게 아무리 좋은 기회여도 가장인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일은 그에게 금기와 죄악같이 여겨지는 것이었다. 

“어허, 그것참 이해가 안 가는군요. 군대도 가는데 아이가 원하는 유학을 부모가 함께 살 수 없어 보낼 수 없다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제 아이도 성인 될 준비를 해가야 하잖아요? 초등학생도 아닌데.”

“아니죠. 결혼하기 전까지 아이는 부모의 케어를 받아야 해요. 혼자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건 아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못할 일이에요. 가족은 언제나 함께여야 하는데…”

“그럼 가족이 다 같이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요? 기숙사 대신 통학을 하면 되잖아요?”

“그러게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 아내랑 다른 아이들이 좀 아파트도 그렇고..”

대한민국의 저출산 정책이 P씨의 발목을 딱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남 한복판의 대형 임대아파트를 포기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아이 다섯을 데리고 어떻게 잡은 자리인데, 아무리 아이에게 좋은 기회라 해도 포기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커 보이는 것이다. 

“아내의 반대가 너무 커서 말이죠. 가려면 당신과 셋째만 가라고 하더군요.”

“네? 그게 무슨?? 가족은 떨어져 지내면 안 된다면서요? 그럴 거면 아이만 보내면 되잖아요. 기숙학교인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가족이 떨어지면 안되니까. 가려면 가족이 다 같이 가는게 맞는데 아내가 통..”

P씨의 표정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건 이 가부장제 대가족에게 드리운 갈등의 그림자이다. P씨는 한숨을 푹 쉬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실은 최근에 계속 일감이 줄어서 아내에게 넌지시 맞벌이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P씨의 아내는 다섯 아이를 돌보느라 결혼 이후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다. 경제적 책임은 오로지 P씨에게 지워져 있었고 그는 그간 그 임무를 강력하게 수행해 왔다. 낮밤도 주말도 없이 언제나 온갖 일거리를 찾아 경제력을 확보하는데 안간힘을 써왔다. 그 안간힘으로부터 그의 막강한 가부장적 권위가 지탱되었고 그는 가족들에게 강력한 가부장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당연히 P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의 말에 한 번도 반대를 하거나 항명(?)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재벌 회장급의 지위를 그의 가족들로부터 획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방심을 한 걸까? 그는 엄습해 오는 경제위기에 지쳐 고통 분담을 요구한 것인데 그것이 이 가부장제 대가족의 권력구조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와 이제는 성인이 된 큰 애를 불러다 말했죠. 이제는 같이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저 혼자 벌어서는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우니 좀 힘을 모아보자고 좋게 얘기했어요. 아내랑 큰 애도 처음에는 좀 당황해하고 안 해본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 막막해하더니, 운 좋게 금방 일자리를 구하더라구요. 그러고 나니까 두 사람 벌이가 저 혼자 버는 것만큼 되는 거예요. 저는 한결 수월해졌죠.”

일감도 자꾸 줄고 수월해진 김에 마음을 좀 놓았던 탓일까? P씨의 가부장권은 점점 나사가 풀려가기 시작했다. 경제력을 확보한 P씨의 아내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P씨의 아내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라는 접두사를 자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다가, 셋째의 유학 문제를 놓고는 ‘대립’을 한 것이다. 맞선 것이다. 이 집의 가부장에게. 이 집의 새로운 가부장이 누군지 한번 겨뤄 보자는 듯. 

“본인 의견이기만 하면 뭐가 문제겠어요. 여자들이란 안정된 환경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제가 없는 사이에 아이들을 세뇌? 설득시키는 것 같더라구요. 우리 가족이 여기를 떠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이겠냐며.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애들이야 엄마 말이 절대적이죠. 결국은 당사자인 셋째마저 그러는 거예요. ‘아빠, 아무래도 유학은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P씨 아내의 권력 찬탈은 점점 과감해져서 마침내 P씨를 비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이는 별로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가 다른 도시로 떠나보고 싶어 아이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며. P씨의 아내는 그가 출타한 틈을 타 아이들의 의견을 규합하고 벗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내었다. 그리고는 결정적 당사자인 셋째의 마음마저 돌려놓은 것이다. 유학은 선택에 불과한 것이라고. 가족을 떠나서 네가 잘될 것 같으냐고 말이다. 그리고 P씨에게는 그렇게 원하면 당신이 셋째만 데리고 떠나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우리는 알아서 살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자립의 힘으로. 마침내 아내의 협박과 회유에 포섭된 셋째는 유학 포기 모드로 돌아섰고 P씨는 난감해져 버렸다. 

“그러더니 또 이번에는 갑자기 운전 연수를 시켜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연습 좀 하라고, 피곤한데 교대로 운전도 하고 그럼 좀 좋냐고 그래도 무섭다며 안 하더니. 나보고 갈 거면 셋째 데리고 둘만 가라고 해놓고 나니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겠다 싶었나 봐요. 참나, 무섭다고 할 땐 언제고. 그 용기가 도대체 어디서 난 건지.”

P씨는 운전대를 빼앗기고 있는 줄 모르고 있다. 가부장제 대가족제란 모름지기 피라밋 구조하에서 안정적이라는 걸, 그리고 피라밋을 지탱하는 힘은 경제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가부장제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포스트 나 혼자 시대에, 여전히 ‘가족사랑’이라는 낭만 속에 잠겨 있는 P씨는, 정작 가부장제의 권력 매커니즘에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모르고 있었다. 

“예전엔 말이죠. 집안의 여자 어른들은 남자가 부엌에 얼씬도 못 하게 했잖아요. 물론 남자 어른들도 여자는 밖으로 내돌리는 거 아니라며 여자들을 통제했죠. 맞벌이가 웬 말이에요? 그건 남자의 무능과 동일어로 여겨졌어요. 마찬가지로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고추 떨어진다고 협박을 했잖아요. 그게 근데 불평등일까요? 경제력을 확보해야 하는 남편의 무게와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의 무게가 말이에요. 남자 어른이 의사결정을 독점한다고 그게 그렇게 좋기만 할까요?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데. 엄마들은 부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남자들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정작 이 시대에 선망의 대상은 누굽니까? 전업주부예요. 커리어 우먼이 아니라. 여성들이 선망하는 최상층 엘리트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가 아니라 재벌가 며느리라구요. 남성은요? 다시 태어나면 한 번쯤은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가부장인 사우디 왕자 한번 해보고 싶어 하지 않나요? 아내와 아이들을 주르륵 거느린. 솔직히 그게 바람피우다 이혼당해서 전 재산을 반띵 당한 백만장자보다 부럽잖아요. 안 그래요?”

최회장댁 막내 영남이의 말이다. 대가족이 함께 타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P씨의 7인승 낡은 승합차의 네비용 모니터에는 언제나 그의 최애 드라마인 전원일기가 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최회장댁 막내 영남이는 한심하다는 듯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훈수를 늘어놓고 있었다. 

마법사는 생각했다. 자립은 무엇이고 독립은 무엇인지. 이 시대에 가족, 가부장은 어떤 의미인지. 폐기 처분되어 마땅한 구습인지. 가지지 못해 저주를 퍼붓는 정신 승리의 유물인지. 그리고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혼자 살다 보니 집안일에 능숙해져서 굳이 여자가 필요 없다 느낀다는 남자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더 이상 여자들이 등을 토닥여 주지 않아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살로 위로를 대신하는 남성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남자 없는 여자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더 생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백마 탄 왕자님이 사라진 세상에서 여자들은 천상천하 여자독존, 아무 문제가 없다는걸. 자립과 독립은 그들의 권력이 된 지 오래라는 걸. 그때 모니터에서는 잠시 전원일기가 중단되고 넷플릭스 새로운 시즌의 광고가 흘러나왔는데, 남자들이 원인 모를 전염병으로 거의 전멸한 사회에서 살아남은 남성 중 꽃미남 3천명이 외부와 격리된 채 여자 쇼군을 섬긴다는 내용의 새로운 정치 드라마의 광고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P씨는 해탈한 듯 한마디 했다.

“그래, 수컷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전쟁도 멈추고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불균형이 일시적으로 잠시 남녀 성비의 균형을 맞추어 낸 거죠. 괜히 남아선호였겠냐구요. 줄줄이 딸딸이가 기본값이었던 게지. 고추를 괜히 문에 달았겠냐고. 흔한 일이 아닌 거야. 아들이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 아들들은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뭔가 생겨나겠죠. 사이보그 우먼 같은 거 말이에요. 근데 보세요. 곧 남자가 귀해질 테니.”

마법사는 이미 도래하고 있는 가모장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들의 미래가 심히 염려스러워졌다. 그리고 P씨와 그의 아들들의 미래 역시. 그의 가부장제에 대한 신념을 산산이 부서뜨릴 아들들의 여자들이 등장할 P씨의 근 미래가 어둡게 느껴졌다. 차라리 사이보그 며느리가 나을지도.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 하리라.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그리고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둔 나무 열매를 따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그는 경제력을 놓지 말아야 했다. 그의 경전을 따라. 

간신히 남성역을 벗어난 P씨의 승합차는 방배역 사거리에서 뒤늦게 꼬리를 물었다가 교차로에 갇혀 버렸다. 당장 차를 빼라며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경적 소리가 그에게 외쳐댔다. 

‘방빼’

 

 

_ 마법행전 2부 2장 <남자 없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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