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밸류를 아니

Oct 22. 2022 l M.멀린

“아니 어떻게 두달이나 여행을 해요?”
“그러는 너는 어떻게 20년이나 한 직장을 다니니?”

여기는 Station F.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란다. 3만 4천 제곱미터(약 1만285평) 규모로 여의도 공원의 15배에 이르는 크기. 길이는 310m, 에펠탑을 눕혀놓은 것을 상상하면 된다고. 3,000개 이상의 워크 스테이션이 상시 돌아가고 있는 이곳은 프랑스 스타트업 정책의 핵심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 정책의 일부이다. 프랑스의 기업가 자비에 니엘이 사비 2억 5천만 유로를 투자해 만들었단다. 스타트업이 기업가 정신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하고 분열된 스타트업 생태계를 좀 더 하나로 뭉치고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낡은 철도기지를 리모델링 해 만든 이 캠퍼스는 규모만으로도 으리으리하고 압도적이다. 누구나 상상하는 스타트업의 힙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잘 버무려져 있다. 부럽게도. 그런데 이런 데서 일하면 크리에이티브가 마구 뿜뿜할까? 그리고 돈, 돈이 마구 벌릴까?

자유로운 복장과 사과 마크가 박힌 노트북, 여기저기 힙한 테이블과 의자에 자유분방하게 앉아 열띤 토론을 하는 인종 다양한 젊은이들. 이제 스타트업은 많은 청춘들이 선망하는 롤모델로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재벌 대기업의 뱃지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힙한 브랜드와 사과 마크 노트북만으로 자신의 현재적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세상.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수평적 구조와 자유로운 의사결정 시스템, 꼰대와 권위주의 따위는 발붙일 공간도 허락하지 않을 듯한, 이 참신해 보이기 그지없는 스타트업의 본질 역시 업業이 아닌가. 비즈니스 말이다. 그러니까 매우 관대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격식 없이 소통하는 그 대화의 모든 목적 역시,

멋지다! 그런데 너 얼마나 벌 수 있니?
내 돈 얼마나 불려줄 건대?

이것 아니냔 말이다. 그게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원단을 딜하는 닳고 닳은 보따리장수들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업의 본질이 아닌가. 그러니까 여기는 자아 실현의 장이라기보다 매출 실현의 별다를 것 없는 업장일 뿐이라는 거다. 그때에 깨져나간 환상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여전한 현실을 보여준다. 가치 실현의 장으로 포장된 그것 역시 먹고사니즘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인류는 언제까지 그 단계에 머물텐가. (물론 진정한 업業으로서의 그것은 언제나 고귀하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빌자면 지금의 인류는 인정 욕구를 충전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물론 아직도. 생존 욕구는 진작에 해소한 지 오래인데, 그러니까 전 인류가 먹고 살만큼의 부가 이미 지구에 풍족한데 그놈의 인정 욕구 경쟁이 부의 분배를 독점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굶어 죽고 누군가는 잔고에 0 하나를 더 붙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단 말이다. 그건 행복일까? 생존 단계의 욕구는 생존 자체로 행복하겠지만, 인정 단계의 욕구는.. 그래 그 인정은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얼마를 가져야 채워질까?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들의 인정 지갑이 도대체 얼마나 깊고 넓은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이 이르지 못한 단계, 인정 욕구 너머의 세계에서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걸. 그러니까 가치 실현의 단계에서, 자아 실현의 단계에서 그것은 ‘함께’, 나의 성장은 타인의 성장으로 확대된다는 현상을 목도하며 산산이 흩어질 것을, 참으로 열심히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잘 포장된 그 모든 세련된 이미지에도 목표는 하나같이 고루한 생존과 비루한 인정에 머물고, 확장되는 자아와 그러므로 나뿐만 아니라 타인이 함께 성장할 수 없으면 개인에 고착된 자아만으로는 인간의 욕구는 계속 불만족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질리도록 먹은 스타트업 센터의 수제 버거 세트를 먹고 또 먹다 지쳐 버릴 것이라는 걸.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원론적으로 굶어 죽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 도래한 지 오래다. 인정 욕구에 시달리다 자살을 할지언정 진짜로 굶다 죽는 일은 보편적으로 불가능한 시대에 이미 들어선 지 오래다. 그러니 추구해야 할 것은 ‘공동체적 가치’다. 그대가 가진 ‘가치’를 공동체로 확장시켜 ‘우리’와 통합하는 일. 돈을 넘어서는 ‘가치’, 매출로는 증명할 수 없는 ‘가치’,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 그것을 누구와 실현할 것인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아무 돈이나 덥석 받지 않는다. 아무 돈이나 덥석 벌지 못한다. 돈이 된다고 뭐든 하지 못한다. ‘우리’의 가치를 위배하는 일일 테니.

이 넓은 캠퍼스에 가득한 말 그대로 ‘스타트업’ 피플들 중에 몇이나 가치를 실현하려고 이곳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까? 말은 좋아서 세상 모든 이상과 공익을 다 실현할 듯이 피칭 해대지만, 악랄한 투자자 앞에서, 지랄 맞은 소비자들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내뱉은 ‘가치’를 지켜내는 스타트業家는 몇이나 될까? 어서 한몫 잡아 빨리 이 세련된 지옥에서 Exit 하는 게 꿈인 젊음이 내게 이렇게 묻는다.

‘아니 어떻게 두 달이나 여행을 해요? 나는 바빠 죽겠는데.’
‘그래 너 그렇게 바빠서 얻은 Exit으로 뭐할 거니?’
‘세계여행이요.’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넌 왜 사서 고생이니. Exit 하지 말고 여행하면 되지.’

이런 대화는 금물이다. 그럼 결혼은요? 양육은요? 노후는요? 쳇바퀴 도는 대화가 이어질 테니. 그럼 부러워 말든가. 그게 너의 가치면. 그게 너의 꿈이면. 구석기 원시인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생존 가치’를 실현 중이면.

소비하는 기계로서의 인류는 굶어 죽을 수도 없다. 정부는 왜 보조금을 주는가? 기업은 왜 공짜를 뿌리는가? 그들은 우리 없이 생존할 수 없다. 누가 사줘야 팔지. 영리하고 성숙한 인간은 자기 실현을 확장하기 위한 공동체적 ‘가치 Value’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시작할 진정한 스타트業은 그대의 ‘가치’이다. 그것이 여전히 인정 단계에 머물고 있다면 Station F에 지원하라. 여기 넓고 좋다. 그러나 자기 실현의 ‘가치’를 공동체로 확장하고 나를 넘어 ‘우리’로 통합하고 싶다면 <위즈덤 레이스>, <글쓰기 유랑단>에 지원해야지. 여기는 돈 많이 벌어주겠다고 설레발 쳐봐야 발가락 하나 들이밀지 못할 가치의 도시, Value City이니까.

그러니까
니들이 밸류를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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