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Sep 08. 2022 l M.멀린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으므로, 내 집, 내 식탁, 내 침대의 내 자리를 상상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여행자이고, 같은 질문, 같은 피로, 같은 두려움, 같은 이기심과 같은 너그러움을 갖고 있으므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내가 구했을 때 얻었으므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내가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내가 찾아 나서자, 나는 구하던 것을 발견했다.
_ 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낯섦은 여행자의 특권이다. 여행자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낯설고 그 시선으로 살던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두려움일 수도 뜻밖의 환희와 기쁨일 수도 있다. 익숙한 에펠탑은 그저 그런 지나치는 풍경이지만 여행자의 눈에 에펠탑은 ‘아, 이것이구나’ 감탄을 자아내고 만다. 살던 이는 누려 볼 수 없는.
그래서 여행자들은 이것저것을 찾아 보고 또 경험하려고 그곳에 간다. 그리고 경험하면 이내 ‘본 것’이 된다. 다시 찾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 여행자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이방인이 될 여행자에게 살던 이들은 친절하지 않다. 그들은 곧 떠나버릴 거니까. 마음을 붙였다가 그들이 곧 떠나고 나면 마음을 떼어내야 하니까. 그래서 관광지에 사는 이들은 무심하다. 불친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심하다. 가끔 예의로 미소를 보여줄 뿐이다. 여행자는 그게 때로 서운하지만 자신들도 자신의 처지를 안다. 그럼에도 자꾸 아쉬워 파고드는 건 로컬이다. 로컬들만 아는, 로컬들이 서로서로 가꿔 온 숨겨진 공간들을 자꾸 파고든다. 떠날 거면서.
유명 관광지들은 그렇게 침탈당한다. 여행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자꾸 파고드는 이방인들로 로컬의 안식처는 자꾸 발견되고 오른다. 지대가, 지대가 말이다. 유명의 대가를 처 자시는 건 모두 지주다. 로컬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했던 살던 이들은, 오히려 그 꿈 때문에, 그 성실함 때문에 자신의 설 곳을 스스로 내어주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로컬이 다시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착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살 것이 아니라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내 집, 내 식탁, 내 침대의 내 자리를 상상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로컬과 같은 질문, 같은 피로, 같은 두려움을 가진 여행자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그건 인생과 다르지 않은데. 우리는 어떻게든 자리를 확보하고 자리를 지키려다 대가를 모두 자본에게 헌납하고 다시 이방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건 아마도 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자연의 법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나무는 가지지 못한 것을 인간은 가졌으니까.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계속 떠나야 한다.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도 그것은 여행이지 회귀가 아니다. 인간은 머물 수 없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그 본능을 벗어나려고 쏟아낸 스트레스가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나무를 뽑아다 여기 심었다 저기 심었다 해봐라. 시들지 않을 나무가 있나. 반대로 인간을 한 곳에 박아다 천년만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 봐라. 제정신일 인간이 있을까? 그것을 스스로 그러겠다고, 자본의 몫인 잉여를 자신에게 쌓겠다고 헛된 꿈을 꾸는 인간들이 자꾸 여행자가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방인, 두드려도 문을 열지 못하는 이방인.
그래서 여기, 파리는 파리다. 이곳에는 과연 로컬이란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온통 여행자 투성이이다. 그들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오~ 샹젤리제’를 흥얼거린다. 그들 중 누군가는 여기 살고 싶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꿈꾸던 곳에 도착했다는 기쁨과 설렘으로만 충만하다. 그리고 오고 또 온다. 로컬들의 공간은 세계인의 뽐내기 공간으로 점령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것은 이 도시의 날 것이 되었다. 이방인이 아닌 여행자들의 도시. 로컬과 여행자를 구분할 수 없는 도시.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계속 이곳을 찾고 이곳에 둥지를 튼다. 일생이 아닌 하나의 계절 동안.
그런데 잉여 쌓기에 익숙한 이방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충격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20~30대 일본인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다가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다는 일명 ‘파리 증후군’. 파리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피해망상이나 우울증 등을 겪는 적응장애의 일종이란다. 우리는 이 광경을 꿈을 목전에 둔 이들, 이제 막 성취에 도달한 이들에게서도 보게 된다. 환상과 현실의 괴리. 여행자와 이방인의 괴리. 잉여와 이동의 괴리, 나무와 인간의 괴리.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대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그리고 여행자는 구했을 때 얻게 되고, 두드리면 문이 열리고, 찾아 나서면 구하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방인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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