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일곱째 날

+ 마스터 회의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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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스스로를 해방시켜 가는 과정은 신의 의지가 우주에 구현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에게 신의 의식이 불어넣어 진 순간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창조의 본질입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개체로 여기고 끊임없이 투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개체이자 전체입니다. 자신을 진화의 부분으로 여기는 것은 피조물로서의 겸손이겠으나, 진화의 전체로 여기는 것은 창조 의지에 대한 순종입니다. 모든 것이 인류의, 그대의 상념과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의 환영으로서의 우주와 물리적 진화 작용으로서의 우주가 만나는 경계에 인류의 의식이 서 있습니다. 그 경계에서 염(念)이 물질이 되고 파동이 물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는 그러한 창조의 과정을 신을 대리하여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멈춰지지 않으며, 번복되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는 기록된 역사입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그것의 복판에서 인류는 꿈꾸고 사랑하기를, 도전하고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관한 모든 기억은 레테의 강 아래에 잠들어 있고, 아카식 레코드의 서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장의 과정 속에서 꿈으로 피어나고, 만남의 과정 속에서 사랑으로 드러나 집니다.

멀린의 의식은 회전하는 마법사들을 뒤로 하고, 회의장을 벗어나 멀리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멀린을 둘러싼 우주의 언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기록된 미래에까지 멀린을 이동시켰습니다. 그곳에는 마침내 지구를 벗어나 별들에 정착하기 시작한 인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일하고 사랑하고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둥근 것은 지구만이 아니니, 둥근 별 모두에 인류의 씨앗이 뿌려지고, 적응하는 인류의 손길에서 세상에 없던 것들이 별들의 환경에 맞게 발견되어지고, 개발되어지고 있었습니다.

우주는 지구별처럼 복잡스럽고, 갈등하며, 파괴되고,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우주선들이 서로 대적하기 시작하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별들은 각자의 이념과 세계관, 이익과 유불리에 따라 연맹을 결성하고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영원히 소멸하고, 어떤 것은 강한 것에 종속되거나 흡수되었습니다. 갈등과 전쟁은 우주 전체를 폭력 속으로 몰아넣었고, 별들은 파괴되거나 폭발하고, 팽창하거나 거대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곳에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와 연대를 잃지 않은 인류는 어떠한 상황, 어떠한 순간에도, 우정을 쌓고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주로 뻗어 나간 인류는 이제 어떤 종의 명칭이 아닙니다. 인류는 생존의 방식이고, 우주적 매커니즘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인류와 결합하고,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번식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인류는 동물과, 어떤 인류는 식물과, 어떤 인물은 기계와, 어떤 인류는 음악과, 어떤 인류는 텍스트와, 어떤 인류는 별과, 그리고 또 어떤 인류는 지금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과, 결합하고 진화하여 새로운 개체로 재탄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신적 의지의 실현입니다. 그것은 이미 기록되어 있으니 누구도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변경하려는, 저지하려는, 모든 의지와 행위조차 이미 계산되어 있고,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멀린의 의식은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먼 미래에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 궁극에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모든 것, 창조된 모든 것, 발생한 모든 것, 기록된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조화로웠습니다. 그곳은 창조의 일곱째 날이라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조의 일곱째 날, 그곳에서 멀린도 안식하고 싶었습니다. 지친 마법사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영원한 안식의 세계에서 무한한 쉼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멀린은 마법사입니다. [스팀시티]의 마법사입니다. [스팀시티]가 일곱째 날에 도달하기까지, [스팀시티]의 마법사로서의 멀린의 임무는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멀린의 의식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멀린은 조금이라도 더, 창조의 일곱째 날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보여지고 들려질 뿐,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미래는 들여다본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뒤로 물러나는 미래의 역사가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멀린의 의식 속에서 빠르게 흘러갑니다. 멀린은 결정된 미래의 장면들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만, 우주의 언어는 그럴 필요 없다며, 알아야 할 때, 만나야 할 것들과 알아지고 만나게 될 거라 말했습니다. 마법사들의 미래기억 속에서, 그것들은 필요한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기억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 다시 지구 상공입니다. 돌아오고 있는 멀린의 의식 속에 갑자기 [스팀시티]가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앗, 저것은 [스팀시티]!’

그것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멀린은 그냥 알았습니다. 저것이 [스팀시티]구나! 그것이 건물인지, 땅인지, 대륙인지, 도시인지, 공동체인지, 모임인지, 책들인지, 음악인지, 생명체인지, 사람인지.. 형체를 규정할 수 없고 모양을 말할 수 없지만, 멀린은 또렷하게 느꼈습니다. [스팀시티]가 떠오르고 있다는 걸.. 멀린은 그것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결박을 풀 수만 있다면 손을 뻗어 그것, [스팀시티]를 만져보고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때, 떠오르던 [스팀시티]가 제자리에서 뱅그르르 회전하더니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안돼. 저.. [스팀시티], [스팀시티]가 가라앉고 있어요. 아아 이런..’

[스팀시티]는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떠오르던 [스팀시티]는 깊은 바닷속으로, 아니 그것이 바다인지 대륙인지도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미지의 광활함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멀린은 뭐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깨어 있는 것은 의식뿐. 몸은 여전히 거미 대장의 안전포승줄에 결박되어 있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몸부림을 쳐보지만, 몸부림을 칠수록 의식의 하강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마침내 멀린의 의식은 다시 회의장 공중에 매달린 자신의 몸속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멀린을 둘러싼 마법사들의 회전운동은 점점 빨라지고, 회전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마법사들의 몸에 타다닥~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온 회의장이 열기로 가득해졌습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상사와 경시청 요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법사들의 마스터 회의가 열렸던 움직이는 마법의 성은 크게 요동치며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멀린은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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