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산화되거나 희미해지거나
시애틀이 낳은 천재적 뮤지션 2명이 있습니다. ‘지미 핸드릭스’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두 사람 다 모두 27세에 요절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천재적으로 발현하여 엄청난 이슈를 몰아대다가, 글쎄요, 에너지가 폭발하다 신체가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암튼 증발해 버렸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 가 버렸습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지미 핸드릭스’는 활동기간이 5년이 채 안됐고, 3장의 정규앨범과 1장의 라이브 앨범을 냈을 뿐입니다.z
‘지미 핸드릭스’는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기에 핸드릭스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 일화 중에,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지 못했는데, ‘지미 핸드릭스’ 방에 들어가 보면 빗자루 지푸라기들이 매일 널려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지미가 빗자루를 들고 방에서 미친 듯이 기타 치는 상상을 하면서 빗자루를 “연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에서 하도 빗자루를 기타라고 상상하며 들고 다녀서, 학교 직원이 “얘 기타 안 사주면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악기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요청은 거절당했다고 한다.
14살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쿨렐레를 찾게 되고, 이걸 가지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들, 특히 “Hound Dog”를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물론 악보 따위 없고 그냥 귀로 듣고 따서 연주. 15살에 아버지가 선물해준 5달러짜리 어쿠스틱 기타가 첫 기타 다운 기타였고, 이때부터 맹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밴드도 결성해서 연주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쿠스틱 기타만으로는 음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일렉트릭 기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돼서, 16살에 ‘Supro Ozark 1560 S’라는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갖게 된다.
‘지미 핸드릭스’는 원래 왼손잡이였는데, 처음에 아버지가 오른손잡이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이는 당시 왼손을 쓰는 것은 악마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방에 있을 때는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 아버지가 방을 떠나면 왼손으로 연주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원래 아버지 때문에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가 정확한 리듬감을 요하는 피킹을 왼손으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왼손잡이 연주로 바꿨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핸드릭스는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도 연주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 특이한 스킬은 핸드릭스가 악기점에서 이런저런 기타를 오디션 해볼 때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한다. [1]
대단합니다. 기타 안 사줬으면 어쩔 뻔했나요. 하루에 9시간씩 연습했다는 ‘커트 코베인’도.. 천재라고 하기엔 열정이 더 대단합니다.
‘커트 코베인’은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이슈와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단 두 장의 정규앨범을 냈을 뿐입니다. 떡 진 머리를 하고 음악 외에는 관심이 없던, 샌프란시스코에 널렸던 그 거지들이 시애틀에 모여, 말 그대로 거지 같은 ‘Grunge music’ (Grunge:먼지, 때)이란 쟝르를 만들어 버리고, 시끄러운 음악뿐 만 아니라 지저분한 패션까지, 전 세계를 열광시킨 겁니다.
미국 시애틀을 중심으로 유행한 그런지 뮤직(grunge music)에서 유래해 1980년대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도회적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에 그 기원을 둔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고 구속받지 않기를 원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돼 외면적으로는 낡아서 해지고 아무렇게나 대충 걸친 듯한 스타일이지만, 실용적이고 감각적이며 편안함과 개성이 녹아있다. [2]
영재를 추적한 어떤 방송에서 영재는 단지 학습능력을 미리 당겨서 쓸 뿐, 임계치에 도달하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결론을 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에너지는 한정적인가 봅니다. 그걸 일시에 모아서 한 번에 터트리느냐, 평생에 나눠 쓰느냐에 따라, 가늘고 긴 인생을 살거나, 짧고 굵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요절한 천재들은, 그러니까 남들은 평생 사용할 에너지를 쭉 끌어 모아다가 한 번에 터트리고 산화해 버린 겁니다. 사실을 알면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겠습니까. 죽을 걸 알며 달려가는 용기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재들은 두렵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다다르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니까요.
‘이소룡’은 자신이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을 예상했다는 주장도 많은데 <용쟁호투> 출연 당시 악당 두목 한을 맡은 석견에게 “아저씨(석견은 이소룡 아버지와 친구였음), 아무래도 제가 아저씨보다 먼저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기 몇 달 전에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었고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프랭크 시나트라’의 를 비롯한 좋아하는 노래를 장례식에 틀어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례식 때 그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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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이 낳은 또 한 명의 천재. ‘이소룡’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33세에 요절했습니다. 시애틀의 한 묘지에 자신의 아들 브랜든 리와 함께 묻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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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한 순간에 멈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중에 의해 떠받들어 올려진 자신은 이미 평범한 시절의 자신이 아니고, 에너지는 이미 발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이대로 산화할 것인지, 밸브를 잠그고 하강할 것인지. 밸브를 잠그고 하강하는 일,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초심을 잃었다는 몰아치는 비판과 재능이 다했다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하고, 예전 같지 않은 인기와 떠받들던 시선의 싸늘한 변화를 견뎌내야 합니다. 바람 빠진 풍선이 되든지, 하늘 높이 날아오르다 기압 차로 터져 버리든지, 천재들이 선택해야 할 두 가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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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X세대의 아이콘이었던 ‘커트 코베인’. 그리고 한국 X세대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 9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고 비슷한 시기에 한껏 떠올랐던 두 사람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산화해 버린 커트와 바람 빠져버린 태지, 누가 더 행복할까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커트와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태지의 차이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커트를 이용하려고 했다고 손가락질하며, 심지어 커트의 죽음의 배후라고까지 의심하는 아내이지만, 커트는 진정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사랑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커트와 태지의 같으면서도 다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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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선택이 옳은 건지, 저는 모릅니다. 옳은 선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 다 모두 행복한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하고 존중하고 싶습니다. 다만 현재 지구에는 이 두 사람의 에너지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산화되거나..
희미해지거나..
저는 태지의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1992년, 그때에 쏟아졌던 에너지의 실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태지의 지금의 행로를 보면 그때의 그건 그냥 파이프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원지가 아닌 파이프.. 파이프는 밸브를 잠글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연료를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그러나 진원지는 밸브를 잠글 수 없습니다. 에너지 그 자체이니까요. 그러므로 ‘커트 코베인’, ‘지미 핸드릭스’, ‘이소룡’은 모두 멈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직감하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파이프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죽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밸브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연료가 사라지면 텅 빈 채로 남아, ‘텅 텅 텅’, 요란한 빈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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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넘치는 그의 유서를 보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고 해도 아무도 욕할 수 없겠지만, 진원지라면, 그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럼 꼭 마약 먹고 뒈져야 천재란 말이냐고 되묻는다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진 존재들이 그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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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지혜롭게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칼이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울 수 있을까?
얼음이 차가우면서 따뜻할 수 있을까?
불꽃이 타지 않으면서 빛날 수 있을까?
달콤한 소금과 짠 설탕,
아프지 않은 주사와 쓰지 않은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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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안정이라는 명목하에 성질이 분명하지 않은 것들 간의 이종교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미치도록 강렬한 에너지 때문에 미쳐 버리고, 온몸을 불사르도록 뜨거운 열정 때문에 불타 버리고, 거침없이 질주해대는 스피드 때문에 산산이 부서져 버린, 천재들을 뭐라 할 수 없습니다. 본성대로 살아간 그들을 안타깝다 할 수 없습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니까요. 불꽃으로 태어났든 전봇대로 태어났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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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천재의 말로 말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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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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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