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게임을 그만두었다. 줄넘기 덕분에
2019.04.18
줄넘기 덕분에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이제 게임을 하지 않는다. 공부 때문이 아니다. 학교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어떻게 재미있을까? 죽지 못해 다니는 게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아니었던가? 아니다. 마법사의 고딩시절도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다. 물론 공부할 새는 없었다.
아이는 도전했던 지역 명문고에 가지 못했다. 줄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 2지망으로 가게 된 학교는 혁신형 고등학교였다. 음 그러니까, 공부를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혁신형 학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인데 그냥 손놓고만 있겠는가? 대안학교도 아닌데.. 그러나 학교의 분위기 말이다. 어쨌든 명문고에 비해 스트레스가 덜한 학업 분위기, 그에 따라오는 친구들의 정서가 아이에게는 행복감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요즘은 게임 안 해?”
“피곤해..”
“피곤하다고? 게임도 안 하시는 데, 뭐 하시느라 피곤하신가?”
“학교에서 너무 놀아서..”
“헉..”
“애들이랑 놀다가 집에 오면 지쳐.”
아이는 집에 온다. 친구들은 학원에 간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가 가상공간이 된지는 오래되었다. 현실 세계에서 쫓겨난 망명 십대들은 온라인 세계에 임시 정부를 세우고 유튜브와 톡이라는 거대한 온라인 제국을 장악했다. 인강을 핑계삼아.. 그들은 집이든, 학원이든, 어디에 있든지 간에 가상공간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있다. 몸은 함께 있지 못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계속 상호작용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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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하느라 게임할 새가 없는 거겠지. 그런 거다. 요즘 아이들은 톡 하느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연결되고 싶은 욕구, 어우러지고 싶은 욕구, 부모를 떠나 무리를 이루고 싶은 욕구, 타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것이 사춘기 아이들의 본능이 아닌가.
마법사도 그랬단다. 그렇게 너만 한 나이 때에 대학로를, 종로거리를, 광화문 일대를 쏘다니고, 웃고, 울고, 싸우고, 신나고 그랬단다. 그러니 어찌 네게 공부하라 하겠는가? 부모가 하지 않은 것을 돈 좀 주면서 아이에게 시키는 일은 폭력이다. 다 너 잘 되라 그러는 거라고 씨부리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은 얼마나 비겁한가?
성공은 부모가 유리하다
산업사회의 부흥은 정점을 넘어서 몰락을 향해 가고 있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 이것이 이 아이들의 미래이다. 개별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세대 전체로는 부모세대를 넘어서기 어려워졌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성공의 확률은 자녀보다 부모가 더 높다는 이야기이다. 부모가 이룬 토대가 자녀가 일궈가야 할 토대보다는 더 낫다는 말이다. 그러니 도전은 부모가 해야 한다. 기회도 부모가 더 많다. 그리고 그 부를 물려주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인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압축성장을 해 온 대한민국의 사회는 언제나 자녀들이 부모보다 기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정체될 대로 정체되어 있다.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물론 이웃나라 일본처럼 곧 인력이 모자라는 인구구조가 닥쳐올 테니, 그때쯤은 사람 귀한 줄 아는 때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로봇 대체율이 세계 1위인 국가이다. 로봇이랑 경쟁해야 한다. 쉽지 않다.

자녀들이 이룰 토대보다 부모세대가 이미 이룬 토대가 더 많고 강고하다. 물론 좀처럼 내놓지 않고 세대 간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는 하다만서도.. 그러니 성공의 확률은 부모가 더 높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어야 한다. 물적 자산이든 인맥이든 경험이든 말이다. 그것이 어른의 할 일이다. 부모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다. 뭐 하러 뽑아놨나. 그런 걸 잘 조절하고, 정당하게 걷어다가 함께 성장하고, 다음세대에게 기회를 열어주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이 정부의 할 일이 아닌가. 암것도 안 하고 있으니 우리는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각개전투를 하는 수밖에.. 각자도생을 하는 수밖에..
아이는 방학 때마다 외국에 나가 보기로 했다. 첫 방학에는 독일에 가기로 했다. 마침 독일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지인이 있어서 그곳으로 먼저 보내보기로 했다. 잘 적응하고 좋아하면 그냥 거기서 대학도 다니고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국내에서 대학가는 일은 별 볼 일 없고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굳이 가겠다면 등록금이 무료인 독일에서 갈래면 가라, 등록금 미리 준다 생각하고 보내는 거다. 그렇게 말했다. 물론 어차피 한국에서 대학에 가려고 준비를 하면 학원비도 장난이 아닐 테니, 이래저래 손해나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투자는 아빠에게 한다.
대신 유산은 물려준다.
저작권으로다가..
누가 그랬다. 최고의 유산은 저작권이라고.. 그래서 마법사는 글을 쓴다.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글을 쓴다. 마법사가 죽은 뒤에 그 세대가 좋아할 만한 글을 쓴다. 이 시대의 세대들은 당최 알아먹지를 못하지만, 미래의 세대는 다를 거라 기대하며 적어도 1,000년 동안 익힐 글을 쓰고 있다. 마법사는 1,000년 뒤의 미래에서 왔으니 무슨 글을 써야 1,000년을 읽힐지는 잘 알고 있다.
아이는.. 그냥 놀면 된다. 대학을 가든, 게임을 하든, 카톡을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어차피 뭘 해도 쉽지 않은 세대이다. 그러니 엄한 거 하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별 볼 일 없는 게 낫다. 대신 성공은 아빠가 한다. 그러니 투자는 아빠한테 한다. 대가는 유산으로 쇼부 치자.
아이는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이에게 유산 물려주는 것을 금기시하는 정서는 없는 자들에게만 있다.(줄 것도 없으면서)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유산을 물려주려고 한다. 그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옳다. 부모의 성공에는 아이의 희생이 반드시 전제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가정과 일을 동시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선택이 있어야 한다. 선택 이후에는 다른 것에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선택을 한다. 가정을, 그리고 성공은 아이에게 양보한다. 그래서 아이를 들들 볶는다. 성공은 너가 해야 하니까. 아이는 하고 싶지도 않은 부모의 성공을 대신하느라 인생을 허비한다. 인생이 망가진다. 반대로 하면 안 되나? 성공은 부모가 하고 아이는 안정된 환경에서 가정을 이루면 안 되나? 그냥 자기의 삶을 살면 안 되나?
음.. 안 되나 보다.
마법사는 반대로 살고 있다. 아이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마법을 연마하고 있다. 아이는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성공한 마법사의 딸로 살아가면 된다. 엄청난 저작권의 유산 위에서 유유자적하며 게임이나 하면 된다.
사회환원은 아이가 하게 하면 된다. 왜 부모가 사회환원을 하려고 하는가? 부모의 성공은 아이의 운까지 모두 가져가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의 몫을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사회환원의 과업을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세대와 세대 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유산이 개인에게 상속되어지는 방식보다 세대의 유산이 세대에게 상속되어지는 것이 안정적이고 바람직하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함께 살아가려면 더욱 그러하니 말이다. 나의 후손들에게도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아이는 좀 자부심에 쩔어 있다. 친구들은 학원 갈 시간에 집에 오는 자신의 모습에, 친구들은 과외 받을 방학에 외국에 놀러 가는 자신의 삶이 흡족하다. 그래, 그래라. 네 팔자 좋은 걸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니. 그러나 마법사는 보고 싶은 게 있다. 이렇게 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말이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과외를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지어 한글을 미리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어교육을 미리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들..
“도대체 어쩔려고 그래?”
그 소리를 지겹게 들었다. 그러나 아이가 계속 1, 2등의 성적을 다투고, 선행학습도 하지 않은 영어성적이 학원 다닌 아이들보다 좋게 나오자, 심지어 지역에서 다들 선망하는 명문고에 아깝게 떨어지자, 그들은 입을 점점 다물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그건 아이가 특별해서 그런 거라고 도망치고 있다고 한다. 특별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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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수학 시험은 시간이 모자라 늘 문제였다. 누굴 닮아 그런 거였겠지만
그래서 좀 보고 싶다. 아이가 이렇게 살아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게 정말 가능한지 말이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아이가 보여주면 좋겠지만.. 뭐 그렇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인생을 그 딴 일에 실험하며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십대는 한 번뿐이니까.
아이는 줄넘기 때문에 명문고에 가지 못했지만, 아이는 줄넘기 덕분에 게임을 그만두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명문고를 지나,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다른 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매일 어두운 얼굴로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는 명문고 아이들의 힘든 표정을 보며, 아이는 안 가길(못 가길) 잘 했다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정신승리일 수도 있다.ㅎㅎ)
게임.. 재미없는 게 당연하다. 실컷 했으니 말이다. 프로게이머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까지 했으니,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지 않기로 한 이상 더 재미있을 게 무언가. 게임이란 어차피 레벨업의 판타지가 아닌가. 뭐든 그렇다. 세상의 일이란 할 만큼 하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흥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유혹과 싸울 일이 아니다. 질릴 때까지 해보는 거다. 그게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제 아이는 또 다른 레벨업을 찾고 있다. 그건 아마도 바다 건너 미지의 대륙이 될 듯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좁은 한반도에서 5천만이 대굴빡을 굴리고 있으니 살기가 힘든 거다. 중동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들은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너의 호기심이 이끄는 세계로 장벽을 넘어가 보라는 말이다. 그게 한국에서 대학가는 것보다 쉽다. 그리고 그게 더 잼나다. 아빠도 그랬다. 남들 가는 길에서 열심히 도망쳤다. 그리고 아빠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마법사가 되었다. 아빠가 마법사인데 못할게 뭐 있겠니?
그러니 성공은 아빠가 한다.
그러니 투자는 아빠에게 한다.
그러니 너는 니 맘대로 살 거라.
그러나 유산은 물려준다.
확률은 얼마나 되냐고?
너가 공부해서 서울대 갈 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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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