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얼마나 짧은지

by M.멀린

[멀린’s 100] Aug 18. 2022 l M.멀린

길고 지루하기만 한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계산해 봅시다. 일단 평균수명을 80년으로 잡고 앞뒤로 10년을 뺍니다. 앞의 10년은 인간으로서의 인식이 충분치 않고, 뒤의 10년은 아프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이 계산은 팔팔하게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보려는 겁니다.

그럼 일단 20년 빠집니다. 60년 남았죠. 여기서 1/3은 잠을 자니까 다시 20년을 빼면 40년 남습니다. 인생 길죠?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살아버렸으니 남은 인생을 계산해야 합니다. 당신이 10살이면 40년이 남았겠지만, 당신이 20살이면 33년, 30살이면 26년, 40살이면 20년, 50이면 13년, 60이면 6년이 남은 겁니다. 긴가요? 짧은가요?

그나마 이 계산은 차라리 좀 후합니다. 건강여생로만 계산한 거니까요. 그러나 사회여생로 계산하면 상당히 박해집니다. 20살이 되어야 성인이 되니 앞에서 일단 20년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정년을 65세로 잡으면 뒤에서는 15년을 공제해야겠네요. 그럼 80년-35년=45년. 이런 건강여생에서 15년이나 줄어버렸네요. 그리고 잠도 자야 하니까 다시 1/3을 또 공제하면, 켁, 겨우 30년입니다. 세상에, 당신이 20살이어야 30년이 남는 겁니다. 당신이 30살이면 23년, 40살이면 16년, 50살이면 10년, 60살이면.. 뭐 그렇습니다. 인생 참 짧지 않습니까?

그나마도 여기다 대학생활, 한국 남자의 경우 군생활까지 합하면 더 줄어듭니다. 65세 정년이란 것도 일부 정규직에나 해당하니 저것도 전부가 아니네요. 아, 물론 인생 다 저 하기 나름이니 죽기 전날까지 팔팔하게 살다 갈 수도 있고, 소년 시절부터 자기 인생을 의지적이고 적극적으로 펼쳐갈 수도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워 하루를 Full로 쓸 수도 있으니, 그럼 여생을 좀 더 확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인생 참 짧지 않습니까?

인생을 내 의지대로, 내 마음대로 펼쳐갈 시간이 30~40년이라고 해도 그중 얼마나 유의미하게 사용하겠습니까? 먹고 싸고 잡담하고 뻘짓하고 멍때리는 시간들까지 다 합하면, 사람이 실제로 사용하는 유효인생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그런데 그나마도 지겹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도 참 지겹고 길게만 느껴집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라니 얼마가 남았는지 계산해 보는 일은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뒤돌아보고 ‘나 뭐 했나?’ 싶으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이 없을 겁니다. 뭔가를 제대로 해보려면 참 짧은 시간이고, 포기하고 대충 살자면 감옥에서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의 신비입니다.

결국 측정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여생은 오늘 하루뿐인 것입니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가 내 여생의 전부입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가상현실에서 깨어난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눈 감는 순간 이 가상현실로부터 분리된다고 생각하면, 하루는 여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캐릭터를 최대한 활용해야 겠죠. 그러면 여생은 무한합니다. 죽음도 잠과 같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방식일 뿐이니까요.

눈을 감는 일은 동일합니다. 눈을 감고 의식이 이 시공간을 떠나는 일이니, 잠과 죽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호흡이 있고 없고는 잠들었거나 죽어있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에게나 구분될 뿐입니다. 꿈속을 여행하는 나는, 현실이라는 꿈으로부터 떠나와 있을 뿐. 물론 이어지는 꿈을 꾸듯이 우리는 현실을, 생을 연속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에 남은 여생은 30~40년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연속되지 않고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다면 수만 생을 거듭해도 원점인 카르마 그 자체이겠죠. 그런 측면에서는 하나의 생이 끝나고 하나의 생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믿음은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끝나지 않고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하는 인생이라면 튀는 레코드판처럼 얼마나 지독하고 지겹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의 1/3을 다른 시공간에서 깨어난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회를 얻는 일일 테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 인식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선 안 됩니다. 성장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오로지 현실 인식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젯밤 꿈과 오늘 밤 꿈이 연결되어 성장하는 걸 인식하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현실 인식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가 아니고 인식일 뿐이라 할지라도 중요합니다. 성장하는 것은 의식이지 몸이 아니니까요. 몸은 쇠퇴할 뿐. 진화는 성장 그 자체고 진화하지 않는 존재는 썩어 없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현실이라는 시공간에 의식을 접붙인 채로 중력을 따라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무의식의 바다로 의식을 확대해 가는 것입니다. 정복해 가는 것입니다. 인류의 의식은 그 인식의 모험에 이제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꾸 꿈과 현실을 혼동하고, 꿈과 현실을 분리하고, 아무 데서나 뛰어내리는 겁니다. 어리니까요.

뭐 이상한 얘기는 그만하고 현실로 돌아옵시다. 그러니까 그대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냐는 말입니다. 멍때리며 킬링 해댈 만큼 그렇게나 많이 남았습니까? 그대의 여생은 내일, 다음 생으로 무리 없이 연결될 만큼 떡밥을 잘 회수하는 중입니까? 나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잘 쌓고 있습니까? 남의 인생, 남의 이야기에 낭비할 만큼 이루고 맛보고 충분히 즐겼나요? 아님 이생망이라 어차피 틀린 인생, 고물상에 떠넘기기로, 남의 여생 씹고 뜯는 일에 모조리 갖다 바치기로 서약이라도 했나요? 인생이 짧습니다. 참 짧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기에는 인생만큼 불확실한 게 없습니다. 어젯밤 꿈을 오늘 밤 또 꾼다는 보장이 없듯, 인생도 내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그것을 지금 해야 합니다. 할 수 있게 하는 일에 시간을 써야 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미루면 어느새 어느새 잠들 시간이 다가옵니다. 게다가 오늘의 욕구는 내일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화장실 들어올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서로 다르듯, 지금의 욕구가 나이 들어도 살아있을 리 없습니다. 어젯밤 꿈을 오늘 밤 또 이어 꾼다는 보장이 없듯 그대의 욕구가 내일도, 십 년 뒤에도, 그 나중에도 여전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사라진 욕구는 좀처럼 되찾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뤄둔 그것을 위해 쌓아 온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헛짓거리가 되는 겁니다.

생이 연속된다고 믿으면 우리는 오늘 바로 지금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생과 생을 이어가며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생이 연속되지 않고 한 번 뿐이라고 믿는다면, 아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인생이 고작 저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땡! 하고 종료되는 겁니다. 그리고 너는 사라지는 겁니다. 영원히. 그래서 오늘을 살라는 겁니다. 영원하고 확실한 건 오늘뿐이니까.

오늘을 살란 말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건, 오늘도 내일도 살지 않고 있는 의식 때문입니다. (주입된지 모르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어제에 붙들려, 오늘도 내일도 살지 못하는 나의 의식 때문에 유효한 오늘은 언제나 낭비되고 있습니다. 나 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말입니다. 나가 놀 것이지 뭐 하자고 이따위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누가 듣는다고, 누가 읽고 누가 깨우친다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요? 욕구가 치밀어 올라 그렇습니다. 글을 쓰고픈 욕구가 말이죠. 그걸 오늘 해소하고, 내일로 가려고 쓰고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은 나가 놀 겁니다. 오늘은 오늘은 글을 썼으니까요. 그런데 아마 내일도 글을 쓸 겁니다. 오늘도 오늘도 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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