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하다가
[시력검사 時歷檢査] Feb 17. 2022 l M.멀린
그해의 안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거다. 신드롬이라고 불리우는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걸 양보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을 거다. 뭘 믿고 그런 걸까?
그의 양보는 기가 막혔지만, 그러고 뒤도 안 돌아보았을 때만 유효하다. 운과 기회는 질투가 강해서 자신의 내민 손을 부끄럽게 했을 때는 그 어떤 이유로도 매몰차다. 저주가 따라온다는 말이다. 반복의 저주.
그의 양보는 반복되었다. 그의 신드롬은 양보와 철수의 아이콘으로 정착되었다. 반면에 그의 양보로 기회를 얻은 이는 ‘그럼 체면 불구하고’ 내리 3선을 했다. 그리고는..
그때의 안이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걸 요즘 윤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과 기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게 그의 여주인장이 말하던 영력인가?
안은 양보했지만 윤은 ‘염치 불구하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했듯 ‘자기는 원래 진보지만’ 운을, 운명을, 받아들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탄핵했던 진영의 대선후보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일까? 혹자들은 대통령 병에 걸리면 뭘 못하겠냐 하겠지만, 그럴 거면, 그게 원래 꿈이었다면, 그 진영의 검찰총장까지 되어서 그렇게까지 들이받을 수는 없다.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화형에 처해대던 이들과 한편을 먹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다음을 노리지.
그게 문제다. 운과 기회는 일사천리지. 다음이 없다. 그게 범인과 비범인을 나누는 결정적 경계이다. 운을 따를 것이냐. 실력을 따를 것이냐. 아니 이 판은 운이 좌지우지하는 판이냐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판이냐.
실력으로만 살아 온 이들이 겪는 좌절이 여기에서 주로 시작된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뜯어보자면 운이 아닌 일이 없지만, 운칠기삼의 구성이 달라질 때 그리고 기삼으로 버텨왔다고 믿는 이들이 주로 하는 실수는 대운이 들었는데 그걸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음이 있을 거라 믿는 것이다.
운이 밀려오는 것은 마치 서핑선수에게 파도가 일어나는 것 같아서 그것이 멈출 때까지 파도의 흐름을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종료는 파도의 권한이다. 그걸 실력이라고 착각하고 마음에 드는 다음 파도를 타겠다고 홀라당 내려서는 백날 자세를 잡아봐야 같은 파도가 다시 오는 일은 없다. 새로운 파도가 올 뿐이지. 다른 해변에.
그걸 아는 이들은 운이 왔을 때, 대운의 흐름이 일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잘 타고 데려다주는 데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내릴 타이밍을 알고 잘 내리는 것이 실력이다. 체조 선수가 넘어지지 않고 착지를 하듯. 그러나 선수가 파도를 일으킬 수는 없다.
역사에 만약이 없지만 만일 그때의 안이 양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신드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까? 반면에 고시에 9번이나 낙방한 윤은 인생에 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도는 깨달은 것 같다. 운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후보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징계와 좌천의 나날들 속에서 그는 무엇을 곱씹었을까?
사람들은 삶에서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것, 대운이 밀려올 때 오히려 당황하고 허둥지둥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고심’을 한다. 운을 면밀히 뜯어본다. (뜯어본다고 아냐? 운인데) 무지성으로 지를 때는 언제고. 실력으로 살아왔다는 이들일수록 더욱 이런 태도를 보인다. 물론 장고 끝에 악수 두고, 기회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 그러나 운과 기회를 놓쳐 아쉬운 것으로 끝이면 좋지만, 그것은 뒷맛이 개운치 못해서 사람에게 대운의 크기만큼 미련을 남기고 사람은 그 미련을 소화하지 못한 채 갇혀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그것으로 남은 일생을 소모하는 이들도 있다. 안처럼. 마치 그게 자신의 꿈이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안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출마를 망설였다고 한다.
출마를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로는
첫 번째로는, 자신이 박원순 변호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양보해야 할지에 대해서,
두 번째로는, 자신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서울대 대학원 원장직을 그만두게 되면 서울대와의 신의를 깨는 행동이 되는데 이렇게 신의를 깨면서까지 출마해야 할지,
세 번째로는 자신이 정치를 한다면 10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 할 텐데 자신이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런 사람의 꿈이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조차도.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로는 아버지가 결사반대를 하셨다고. 암튼 부모님 말씀은 끝까지 듣고 볼 일이다.
대통령이 꿈이 아니었던 것은 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의 여주인장 말처럼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대운을 활용하는 비결이다. 힘을 빼고 ‘어쩌다 보니’. 물론 그 실력은 이미 현직 대통령이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운명이다’며.
그러나 그런 이들이 통치하는 세상이 평화로울까? 대통령의 실력이란 분열된 국민의 의견과 정서를 중재하고 통합해서 공동체의 미래를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일 텐데, 그런 일은 도통 안 해 본 이들이 운으로만 그 자리를 꿰차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운 없는 절반의 국민들에게 미련을 남기는 일이요, 운빨만 믿고 이것저것 저지르다 운이 다하고는 철창행을 면치 못하는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아닌가. 더이상 운빨로 뽑힌 지도자 밑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정치사에서 운빨로만 대통령이 되던 시대가 도래하고는 세상은 혼란해졌다. 그래도 이전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삶에 도전과 좌절의 역사를 한아름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대운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그 자리에서 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이 나라는 각자의 운과 실력에 따라 진일보해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기준은 각자) 이 나라의 지도자가 대운에만 기대어 그 자리를 획득하기 시작하고는 나라는 온통 굿판이 된 듯 주술만 난무하는 듯하다. 아이들을 제물로 삼질 않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세상이 혼란해진 이유는 더이상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가 아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일은 반민주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염치 없는 일도 아니고 황당한 꿈도 아니다. 그때의 아이들은 대통령을 꿈꾸었고 리더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중에 대통령이 나오고 리더가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단련된 상처가 가득했다. (그것이 협잡이었을지언정 국민들을 이토록 무안하게 하진 않았다.)
아무도 리더를 꿈꾸지 않는 세상은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대회만 줄창 열어제낄 분이다. 문명이란 리더가 이끄는 세상을 말한다. 철새들조차 리더가 있고 동물들도 리더가 있는데 리더가 없는 무리는 각자도생을 하다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다. 어디선가 리더가 나타나고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또 생겨난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성숙한 의식과 시스템으로 정착되지 않은 공동체는 운빨로 그 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들만 득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실력으로 먹이를 쟁취하는 사자와 호랑이가 이끄는 공동체에 일원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하이에나들에게 콩 반쪽마저 착취당하는 무리에 일원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지금 ‘탈중앙’이 아닌 ‘탈리더’를 꿈꾸며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대회의 무한궤도를 돌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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