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막장드라마로 본 삼성의 미래 (중)
그러니까 말입니다. 삼성의 미래도 역시 여인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조선이 건국할 때에 비하면 세상이 180도로 바뀌어 여성의 사회참여, 경제활동이 눈부시게 증가하였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아직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초일류 기업들조차 내부로 들어가면 조선왕조실록에나 나올 법한 가족 간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배 구조 개편, 경영권 승계, 복잡한 상속 전략 이전에 권력은 누구에게 갈 것인가? 그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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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 삼성그룹 24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335조이고 한국 증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5%입니다. 삼성그룹이 한국경제 비중의 약 3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한국에서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일에 30%는 삼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삼성家의 이야기는 부럽거나 볼썽사나워 보이는 남의 집안 이야기만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왕권 국가에서 왕이 누가 되느냐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남의 집안 문제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을 수 있지만 삼성이니까, 어쨌든 삼성이니까 말이죠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신덕왕후와 원경왕후의 경우에서처럼 삼성 역시 두 여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복남 CJ그룹 고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z
우리는 이 두 여인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후의 조종자들.. 아울러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른 여인들과의 역학관계 또한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는 남자들이 연기하는 여인들의 이야기이니까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두 며느리.. 먼저 삼성의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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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의 두 며느리

손복남 CJ그룹 고문 (맏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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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병철 회장의 맏며느리로 첫째 아들 전 제일 비료 회장 이맹희 씨의 부인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입니다. 1933년생으로 고령임에도 여전히 CJ그룹 남대문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업무를 볼 만큼 CJ그룹의 막후 실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성 가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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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고문의 아버지는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 국장을 지낸 손영기 씨이고 남동생은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현재 CJ그룹 임시회장을 맡고 있는 손경식 씨입니다. 아버지 손영기 씨는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외가 쪽 친척으로 이병철 회장과 원래 친분이 있어 아들 이맹희 씨가 4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라고 약속을 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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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기 씨는 공직 은퇴 후 사돈인 이병철 회장의 영입으로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의 경영을 맡았고 1976년 사망 후에는 손복남 고문이 최대주주로, 동생 손경식 씨가 사장으로 안국화재를 물려받아 경영하였습니다.

손 고문의 남편인 이맹희 씨는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로서 삼성의 적통 후계자로 주목되다가 196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그룹 경영을 맡게 되나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동생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떠오르게 되자 마치 세종의 형 양녕 대군처럼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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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부재와 몰락에도 손 고문은 정성으로 시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시어머니 박두을 여사를 모셨다고 합니다. 유교적 전통과 가풍을 따라 시아버지는 물론이고 시어머니가 2000년, 94세로 별세하기까지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아들 이맹희 씨는 무척 못마땅해 했지만 맏며느리인 손복남 씨와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많이 아꼈다고 합니다. 특히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각별했는데 고려대를 졸업한 이재현 회장이 삼성이 아닌 씨티은행에 입사하자 격노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삼성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가족 몰래 입사했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1년 후 제일제당 경리부에 평직원으로 옮긴 이재현 회장은 사원, 대리, 과장 등의 직급을 모두 거치고 1992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승진하게 됩니다. 그러자 삼성그룹 내에 다른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고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서둘러 제일제당을 삼성에서 분리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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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원래 이병철 회장 사망 후 ‘제일’자가 들어가는 삼성 계열사들과 안국화재를 이재현 회장에게 넘겨주기로 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 사장단 인사에서 측근인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겸 부사장으로 전격 임명하고 당시 상무였던 이재현 회장을 이사진에서 제외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재현 회장과 그의 외삼촌인 손경식 부회장의 의자를 치워, 이재현 회장은 이를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판단, 자기편 임원들을 불러 모아 결의대회를 하는 등 이건희 회장과 전면전을 벌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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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양측의 대립은 몰래카메라 사건까지 이어지는 데 삼성 비서실에서 이건희 회장 자택 바로 앞에 있던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을 염탐하고자 CCTV를 설치, 감시하다 적발된 것입니다. 이에 이재현 회장이 강하게 항의해 CCTV는 철거됐고, 이학수 부사장이 한 달 만에 제일제당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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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CJ그룹은 전신인 제일제당이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될 때 손복남 고문이 보유한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과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을 맞바꿈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1996년에 제일제당 그룹으로 공식 출범하고 1998년 손복남 고문이 이재현 회장에게 제일제당 주식 116만 주를 몰아줌으로써 이재현 회장 중심의 지배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은 2002년에 사명을 CJ그룹으로 바꾸고 삼성의 한 계열사에 불과하던 제일제당을 재계 14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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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복남 고문은 오늘날의 CJ그룹이 있기까지 산파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CJ그룹의 기틀을 세우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삼성그룹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하고 있던 동생 손경식 회장을 불러 그룹을 맡김으로써 CJ가 삼성과 분리된 후 연착륙할 수 있도록 했고 CJ그룹이 현재의 계열사 구조를 갖추게 된 과정뿐 만 아니라 이재현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스 사장 등 3남매의 역할 설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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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손복남 고문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 수발과 온갖 궂은일은 다 도맡아 해왔을 텐데 남편의 몰락으로 일거에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신세가 한탄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외국을 떠도는 남편과 한순간에 후계승계구도에서 밀려나 버린 자신의 아들을 생각한다면 그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자칫하다간 신덕왕후 강 씨처럼 자신의 아들, 딸들을 모두 잃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또한 이것은 이씨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이 씨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인지도 모릅니다. 띠동갑 뻘의 아랫동서가 친정의 힘을 업고 슬금슬글 위협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가 홍 씨 가문의 수하에 놓이게 될지도 모를 위기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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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홍라희 관장 (셋째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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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관장은 모두들 잘 알다시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셋째 며느리이자 이건희 회장의 부인입니다. 1945년생으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고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였습니다. 2014년 현재는 리움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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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관장의 아버지는 서울 출생으로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제시대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지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법무부와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4,19혁명 때 발포 명령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기소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가 5.16 이후 부정선거 원흉 처단이라는 군사정부의 방침에 따라 다시 구속되어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복역 2년만인 1963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납니다. 이후 이병철 회장과의 친분으로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사장과 회장을 지냈습니다. 장남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고, 차남은 홍석조 현 보광그룹 회장으로 전 광주고검 검사장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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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관장은 이러한 아버지와 이병철 회장의 친분으로 1967년 이건희 회장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건희 회장으로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1971년부터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주인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두 형님 (이맹희, 이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이인희, 이숙희, 이덕희, 이순희 씨) 이나 있어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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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금의 삼성이 있기까지 홍 씨 가문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과 홍진기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진기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전 국무총리 신현확 씨의 소개로 이루어졌습니다. ‘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60년대 이병철 회장은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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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로서의 위상이 정치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정권에 따라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권의 희생양이 되는 현실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정치의 길은 단념하고 대신 언론사업을 시작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1년여간 숙려 끝에 정치가의 길은 단념했다. 정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한 끝에 종합 매스컴 창설을 결심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4년 국내 첫 민영방송인 동양방송(TBC)를 출범시켰고 그 다음 해 중앙일보를 창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맡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게 되자 홍진기 회장이 언론사업을 주도하게 됩니다. 홍진기 회장은 1968년 중앙일보 사장직에 취임하여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TBC가 강제 통폐합 당하는 등의 풍파를 겪으며 삼성의 언론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습니다. 2014년 현재는 장남인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와 JTBC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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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인 19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 라며 진한 애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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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홍 씨 가문의 공헌은 대한민국 검찰 라인과 정치계 인맥 관리에 있습니다. 홍진기 회장 스스로가 일제시대 때부터 법조계 출신으로 이후 둘째 아들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검찰 라인을 철저하게 관리해옴 으로써 삼성의 기업 경영의 그림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몇 년 전 삼성그룹 법무팀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홍진기 회장의 둘째 아들인 홍석조 현 BGF리테일 대표는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대검찰청 기획과장, 법무부 검찰국 국장, 인천지검 검사장, 광주고검 검사장 등의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2006년의 노회찬 의원의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현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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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회장은 삼성 이병철 회장뿐 만 아니라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과 사돈을 맺는데 신직수 전 검찰총장입니다. 홍라희 관장의 동생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이 신직수 전 검찰총장의 딸 신연균 씨입니다. 신직수 전 검찰총장은 군 법무관 출신으로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단장 시절 법무참모를 지내다가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법률고문, 중앙 정보부 차장 등으로 활약하고 1963년에 당시 36세의 나이로 검찰총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이후 무려 7년 반 동안 검찰총장 자리를 독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막전, 막후 최고 실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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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회장의 사돈 인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차녀를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냄으로 완성됩니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제 5공화국의 내각을 대표하는 인물로 제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 안기부장, 외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크게 신임을 얻어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기도 하였으나 군 출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홍라희 관장의 여동생 홍라영 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며느리 되겠습니다. (세간에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조력자로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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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홍 씨 일가의 인맥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정치, 사정 라인들을 관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라인들을 잘 관리해 온 홍 씨 일가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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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씨 일가는 이렇게 삼성의 언론과 정치, 사법에 관련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점점 삼성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넘보게 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보광그룹을 창설하여 점점 규모를 키워가게 되는데 보광그룹은 1983년 홍진기 회장이 설립한 TV 브라운관 부품업체를 모기업으로 1989년 훼미리마트로(현재 CU 편의점) 편의점 사업에 진출, 1990년 휘닉스파크 설립 등 사업영역을 확장하다 1999년에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어 현재는 휘닉스홀딩스, 휘닉스소재, STS반도체,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제이콘텐트리 등 여러 계열사를 두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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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관장과 이건희 회장은 1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알려진 대로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입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는 당연히 사촌 지간이 되겠지요. 삼성이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간 이후 최근의 형 이맹희 씨와의 상속권 분쟁까지 이 두 가족 간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씨 가문의 적통성을 잇는 장자가문인 CJ그룹은 언제든 삼성의 정통성을 회복하려고 들고 있고 삼성그룹의 실질적 후계자인 이건희 회장은 이제 자신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두 형제의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의 이면에는 맏며느리인 CJ그룹 손복남 고문과 삼성의 안주인인 홍라희 관장 그리고 그 뒤를 받치고 있는 보광그룹 홍 씨 일가의 치열한 복마전이 숨어 있습니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결혼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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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1] 아랫동서, 형님의 뒷통수를 치다 (삼성家와 대상家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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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삼성家의 후계자 이재용 씨는 대상그룹 임창욱의 장녀 임세령 씨와 전격적으로 결혼합니다. 삼성과 대상의 만남. 이것은 단순히 재벌 간의 정략적 혼사가 아닌 라이벌 간의 일종의 적과의 동침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상은 바로 조미료의 대명사 ‘미원’을 만든 회사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자식과 골프, 미원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 미원의 인기는 대단했으며 제일제당의 ‘미풍’과의 경쟁을 ‘조미료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식품업계 최대의 라이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라이벌 가문의 장남과 장녀 간의 결혼을 단순히 재벌 간의 정략혼으로만 볼 수 없는 이면이 있으니 바로 결혼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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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씨와 임세령 씨가 결혼한 1998년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제일제당이 삼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고 손복남 고문이 지분을 이재현 회장에게 모두 증여함으로써 이재현 회장의 CJ그룹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해입니다. 바로 그 즈음에 이재현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손복남 고문의 조카인 이재용 씨를 선대 회장의 평생 한이었던 라이벌 기업의 장녀와 덜컥 결혼을 시켜 버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려 버린 것이지요.
이재용 씨의 결혼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홍라희 관장의 작품입니다. 홍 관장과 임세령 씨의 어머니 박현주 씨는 같은 원불교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홍 관장이 먼저 결혼을 제안해서 1년 만에 성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임세령 씨가 불과 대학 2학년이었는데 학교를 중퇴하면서까지 결혼을 서두른 점을 보면 평범치 않은 결혼이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상은 호남 출신 기업으로 대표적인 영남 출신 기업과의 혼사로도 세간의 이목을 주목 시켰습니다. 이후 삼성은 대상의 계열사인 청정원에 투자하는 등 밀월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종합식품 회사로서 CJ와 지금까지도 경쟁하는 대상을 삼성이 지원한다는 사실은 CJ로서는 불편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대상과의 밀월 관계는 2005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비자금 사건 때 삼성과의 관계가 삐걱대면서 불편해졌고 이후 이재용, 임세령 커플의 이혼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혼 후 삼성은 대상에 투자했던 자금을 모두 회수했고 대상은 질세라 삼성에 비판적인 한겨레 신문의 자회사들을 인수함으로써 아직 앙금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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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홍라희 관장이 윗동서 손복남 고문을 한 방 먹인 셈이 되었습니다. 삼성家의 맏며느리로서 후계 자리를 시동생에게 빼앗긴 것도 분한데 이제 무언가 시작해보려는 찰나에 라이벌 기업과 사돈을 맺어 버린, 게다가 그 결혼을 주도해 버린, 아랫동서의 농간에 손복남 고문으로서는 심기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성공해 이 씨 가문의 영예를 다시 찾아 오겠다고 벼르고 별렀을 일입니다. 복수심과 분노는 사람을 늙지 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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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홍라희 관장은 불안했을까요? 조선시대 같았으면 이방원과 원경왕후가 신덕왕후의 자녀들을 암살했듯 위협이 된다고 느껴지는 존재를 어떻게 했었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존심 싸움 만이 아닙니다.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가족이라 할지라도 등을 돌렸다면 원수가 되어 먼저 칼을 꽂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삼성家의 장자 혈통을 두고 언제든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이재현 회장의 존재 자체가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삼촌인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자신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요, 삼성그룹을 위해 온갖 뒷일을 감당해 온 자신의 친정을 지켜내야 하는 장녀로서의 책임감 또한 막중했을 것입니다. 남자들이 연기하는 여인들의 피의 혈투.. 신덕왕후와 원경왕후의 환생처럼 전쟁은 계속됩니다. [Round 1] 에서 새롭게 촉발된 두 집안 간의 대결은 [Round 2]에 가서는 CJ그룹 대 삼성그룹이라는 그룹 간의 전쟁으로 비화됩니다.
[Round2] 싹 수를 밟아 놓지 않으면.. 삼성 VS CJ 무자비한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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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J의 폭풍성장 (이 씨 가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복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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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CJ그룹 출범 초기 매출은 1조 7,000억 원이었으나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에는 26조 8000억으로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합니다. 종업원 수는 6,800명에서 4만 명으로 늘어나고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물류/신 유통 등 4대 사업 군 체제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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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은 1953년 제일제당으로 출범한 이래 설탕, 밀가루, 조미료 등을 파는 식품 전문 회사에서 미디어, 물류, 홈쇼핑 등 사업분야를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습니다. CJ개발, CJ엔터테인먼트,CJ CGV, CJ홈쇼핑 등을 설립하고 해찬들, 하선정, 신동방, 한일약품 등을 인수하여 덩치를 키웠습니다. 2011년에는 대한통운을 인수하여 물류업체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CJ그룹은 현재 9개의 상장사와 66개 비상장사를 포함 총 7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2014년 4월 기준으로 자산총액은 약 24조에 달하며 공기업을 제외한 재계 순위는 14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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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사람들은 이재현 회장을 ‘리틀 이병철’로 부르며 삼성家의 3세가 아닌 CJ그룹의 창업주로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500조 원이 넘는 자산규모에 연간 400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삼성에 비할 바는 못되나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이 스스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의 입장에서는 무척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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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재현 회장은 삼성그룹의 장자의 지위를 내세우며 CJ 본사 로비에 이병철 선대 회장의 흉상을 세우고 중구 쌍림동의 CJ제일제당 사옥에는 3D 흉상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CJ그룹의 삼 남매는 보통의 재벌가의 관행과는 달리 모두 연애결혼을 하였는데 처가가 특별히 재산이 많거나 영향력이 있는 집안들은 아니었습니다. 손복남 고문의 동생인 손경식 회장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친인척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궈낸 성과라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한과 독기가 느껴집니다. 삼성家의 장손으로서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고 싶은 열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방황과 작은아버지의 지속적인 견제에 이재현 회장은 빨리 스스로 일어나 삼성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고 싶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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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삼성의 CJ에 대한 견제는 계속되어 2011년 대한통운 인수 시에는 대한통운이 인수 자문사로 삼성증권을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SDS가 뒤늦게 포스코와 손잡고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방해 작전이 심각했습니다. 결국 CJ가 대한통운을 품에 안았지만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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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와 삼성은 계열분리 초기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드림웍스’ 합작 프로젝트에서도 경쟁을 벌였으나 이번에도 CJ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사실 스필버그는 드림웍스 설립 직전 삼성 이건희 회장을 먼저 만나 투자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사 만든다고 투자 제안을 온 스필버그 앞에서 반도체 이야기만 해댔다고 진저리 치며 나왔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암튼 삼성영상사업단 등을 만들어 콘텐츠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삼성도 97년 IMF 때 관련 사업을 정리하고는 아예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서는 손을 떼게 됩니다. 그럼에도 CJ는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때 활약한 사람이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으로 CJ의 드림웍스 합작 프로젝트부터 이후 CJ가 국내에서 방송, 영화, 공연,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 되기까지 커다란 공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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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의 CJ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 IMF 이후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삼성, 대우 등이 모두 사업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CJ는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합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홍콩 골든하베스트, 호주 빌리지 로드쇼와 함께 CJ CGV를 설립,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를 선보이며 영화관 사업에 뛰어든 것을 신호탄으로 2000년에는 제일제당의 사업부였던 영화, 문화사업분야를 독립시켜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한국통신케이블네트워크’라는 지역유선방송사(SO)를 인수, 케이블 방송에도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현 CJ헬로비전) 우리나라 최초의 홈쇼핑 업체인 ‘39쇼핑’도 인수, 이름을 ‘CJ 39쇼핑 (CJ오쇼핑)’으로 바꾸고 채널 사업자(PP) 수도 꾸준히 늘려 tvN, 채널CGV, XTM, 올리브 등 총 21개 채널(PP)을 보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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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은 2012년 3월 1일 CJ엔터테인먼트, CJ인터넷, 온미디어, 엠넷미디어, CJ미디어 등을 합쳐 ‘CJ E&M’으로 종합 미디어 콘텐츠 그룹으로 재 탄생하면서 영화 분야에서는 108개 극장, 834개 스크린을 보유하고 연간 배급율 50%를 상회하는 영화계 최대 큰 손이 되었고, 케이블 방송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은 34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업계 1위로 17개의 지역 유선방송 사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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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CJ의 방송 영향력입니다.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이 10%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가구가 SO (지역 케이블방송 사업자)를 통해 TV를 봅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CJ헬로비전의 시장 점유율은 23.4%인데 현재 매각설이 돌고 있는 3위 업체 C&M을 CJ가 인수할 경우 점유율이 41.6%까지 높아집니다. 이는 방송법에 규정된 점유율 규제를 넘는 수치인데 이를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위해 CJ는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전 국민의 반 이상이 CJ의 공급망에 의해 TV를 시청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뭔 상관이냐 싶겠지만 2011년 새로 출범한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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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중앙일보), 채널A(동아일보), TV조선(조선일보), MBN(매일경제), 종편 4사는 채널 배정과 광고 유선방송 수신료 배분 문제 등을 놓고 CJ와 갑과 을로 얽히는 사업 관계입니다. 종편 입장에서는 지배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쥐고 흔들어 유리한 채널을 따내고 재송신 수수료도 높여 받아야 합니다. CJ는 종편이 의무전송 채널로 편성돼 있는 데다 황금 채널을 공짜로 쓰고 있기 때문에 재송신 수수료는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CJ는 지상파들과도 재송신 수수료 문제를 두고도 지루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종편은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 CJ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특혜를 주문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종편채널들과 CJ의 갈등은 결국 최근의 CJ비자금 사건으로 분출되는데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종편 관계자들 비밀 회동 문건에 따르면 채널A 관계자가 “CJ를 무력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JTBC 관계자가 “CJ를 총체적으로 공략해서 어느 수준에서 CJ가 백기를 들면 그 이후에 각 사가 사정에 맞게 개별 협상을 벌이자”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한마디로 종편 입장에서는 CJ를 잡아야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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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CJ의 방송 사업자로서의 성장과정에는 고대 동문인 이명박 정부와의 밀월 관계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재현 회장은 늘 언론사에 목말라 했는데 MBC, YTN 등의 인수에 여러 차례 의지를 표현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특히 2012년 MBC 노조 파업 때는 직원들 사이에서 ‘MBC를 민영화하더라도 CJ그룹에 넘어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대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MBC 노조원들은 ‘MBC민영화 추진팀’에 있는 CJ출신 직원을 주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재현 회장은 한동안 일간지 창간을 준비하기도 했었는데 종합일간지로 정치, 경제, 문화, 뉴미디어, 국제 분야에 특화된 ‘프리미엄’급 종이신문을 만드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인터넷 뉴스 중심의 포털 구축을 구상했었다고 합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연예기사의 유인력을 감안하면 CJ의 엔터 산업 기반 인프라만 가지고도 뉴스 포털이 단숨에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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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과 CJ의 갈등, 종합일간지의 창간, 뭔가 집히는 대목이 있지 않습니까? 중앙일보, 이 씨 가문과 홍 씨 가문, 자산규모로 보나 매출 규모로 보나 비교가 되지 않는 조카의 사업에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 일가는 왜 사사건건 날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요? 조선건국의 이면에 강 씨 가문과 민 씨 가문의 보이지 않는 혈투가 있었던 것처럼 삼성가문의 갈등 이면에는 적장자 혈통을 이으려는 손복남, 이재현 일가의 응전과 쥐도 새도 모르게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처가 홍 씨 가문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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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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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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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