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
[코인이즘 Koinism] Feb 6 2021 l M.멀린

1,
요즘 <클럽하우스>가 핫한가 보다. 안드로이드는 아직 오픈도 안 했는데 하루에 신규가입자가 200만이라고. 이번 게임스탑 공매도 사태 때 일론 머스크가 이곳에서 5,000명의 청취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해서 더 핫해졌다고 한다. ‘음성 기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앱’이라는데 일종의 컨퍼런스 형식이기도 하고 작은 살롱 같기도 한가보다. 진행자와 패널이 있고 즉석에서 참여한 사람들에게 질의응답도 받고. 대신 라이브라 녹음/편집된 것을 듣는 건 아니고 또 클럽 인원도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빠른 발품이 필요하거나 네트워크 역량이 필요해 보인다. 오피니언 리더나 셀럽들에게는 매력적이고 그들의 의견과 직접적 소통이 흥미로운 사용자들에게는 좀 더 친밀한 경험을 제공해 줄 듯하다. 그나저나 이러다 보면 각종 컨퍼런스, 세미나는 다 문 닫게 생겼다. 마법사는 안드로이드라 아직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워낙 빠른 성장세라 유튜브와 페북 이용자 수가 줄어들고 전 세계 광고시장이 들썩일 정도라고. 정말?

음성 기반 서비스로 토종은 <스푼 라디오>가 있다. 이것도 지난해 연간 아이템 판매액이 837억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년대비 70% 성장을 했다고. 1인 누적 청취 시간은 44% 증가하고 채널은 82%가 늘었다고 한다. 이건 한 번 써봤는데 실시간 야설 듣는 느낌이 좀 있다. 뭐든 온라인 플랫폼은 성인 서비스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니까. 클럽하우스도 시작은 그럴듯하지만 진짜 클럽하우스로 종결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나저나 유튜브의 아성에 도전하는 음성 기반 서비스가 대두되는 걸 보니, 이제 사람들은 보는 것에 지친 걸까? 아니면 보는 시간 이외의 시간마저 플랫폼에 점령당하고 있는 걸까?
2,
플랫폼의 사업의 한계는 그 연속성에 있다. 마치 전 세계를 지배할 듯 맹렬히 성장하다가도 금세 시들해지고 대중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한다. 변천사를 살펴보자. 삐삐부터 시작해볼까? 삐삐(음성)-이메일(텍스트)-카페(텍스트)-블로그(텍스트)-미니홈피(텍스트+이미지)-팟캐스트(음성)-트위터(텍스트)-페이스북(텍스트)-인스타그램(이미지)-유튜브(동영상)-틱톡(동영상)-클럽하우스(음성)? 이게 맞는 분류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흐름이라면 돌고 도는 중일까? 삐삐를 빼고는 모두 운영되고 있으니(심지어 싸이월드도 서비스를 재개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플랫폼을 찾은 이들은 남고, 못 찾은 이들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것이겠지. 고인물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 서비스에 나름 만족한 이들이 아닌가.
시작되는 서비스에 불붙듯 몰려가 보는 건, 일종의 오픈 빨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남들도 다 한다니 일단 시작해 보기는 하는데 그 인기가 영원하지 않고, 막상 써보면 별 볼일이 없으니 영혼을 갈아 넣을 것까지는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게다가 10~20년 사이의 잦은 변화는 하나의 플랫폼에 쉽게 마음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마치 계속되는 소개팅에 지쳐버린 연애 세포 같달까? 그러니 플랫폼의 변화가 잦아지면 사람들은 더이상 몽창몽창 이사 다니는 짓을 하지 않을 거다. 취향과 기능에 따라 각각의 플랫폼을 활용하겠지. 그러다 보면 광고 매출에 의존하는 수익 모델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모든 플랫폼의 숙제가 되는 건 당연한 얘기. (그런 의미에서 <스푼 라디오>의 아이템 매출은 고무적이다. 상장은 했나? ㅎㅎ)

스팀잇은 어떤 플랫폼일까? 텍스트 기반이고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점은 암호화폐를 준다는 것. 돈 벌자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플랫폼일지 모르나 돈 쓰겠다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인다. 돈 쓰겠다는 사람을 유치하려면 유행에 민감해야 하는데 여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스팀잇은 돈 벌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 그러나 돈 쓰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돈을 벌 수 있겠는가? 누가 스팀을 사줄까? 방법은 돈 벌겠다는 사람이 돈을 쓰는 수밖에, 서로서로 사주는 수밖에 없다. 그게 독특한 포인트이긴 한데.. 어쨌든 기존 플랫폼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뻘짓을 하고 있는지, 혁신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시간이 알려주리라.
3,
쓰고 싶었던 얘기는 이게 아니다. 왜 사람들이 듣는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총체적이고 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궁극일 텐데. 아, 인터랙티브가 부족해서일까? 클럽하우스는 실시간이고, 질의응답도 채팅으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현장감이 더 강하니 인기를 얻는 것일까? 유튜브도 라이브 방송이 있는데. 음, 경제적으로 보자면 데이터를 덜 잡아먹어 그런지도. 의외로 한국 밖에서는 이게 더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만큼 모바일 인터넷 사정이 좋은 곳도 없으니. (<스푼 라디오>도 Z세대 중심이라고 한다. 얘들이 아직 돈이 없다. 데이터 기근에 시달리는 아이들)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자. 만일 그대에게 보든지, 듣든지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무얼 선택하겠는가?
4,
보이기는 하는데 들리지는 않는 세계. 들리기는 하는데 보이지는 않는 세계. 장애를 가진 이들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세계이기는 하나, 그들도 두 세계를 다 경험해 보지는 않았을 테니 일단 상상해 보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느낌은? 어떤 것이 덜 외롭겠는가? 덜 불편하겠는가?
덜 불편하자면 보이는 세계가 덜 불편하겠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답답하겠지만 들리지 않는 것은 외로울 것 같다. 눈앞에서 모두 나를 쳐다보며 찬사를 읊어대도, 그 눈빛에서 갈망과 끌림이 느껴져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적막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하지 않을까? (아, 물론 필담을 나눌 수도 수화로 소통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제한된 두 세계를 상정해보자)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겠지만 처음부터 보지 못했으면 답답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내비게이션 없이도 잘 찾아다녔듯이) 보이다 못 보게 되는 것도 점차 적응하고 나면 오히려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수 있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들리던 것이 들리지 않으면 그것은,
플랫폼의 변화는 인류의 결핍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너의 모습이 보여.’ 면회가 허락된다면 음성 전화와 소리가 제거된 영상통화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외롭다.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삐삐에 녹음된 너의 목소리에 나는 설레였다. 카톡에 지워지지 않는 1은 공포스러운데 말이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동상이몽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너의 말이 퉁명스러워도 진심이 느껴졌고 짓궃은 농담에도 진의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럴듯한 핑계와 거짓말도 기가 막히게 속이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구구절절한 팩트를 동영상과 이미지, 텍스트를 총동원해 나열해도 돌아오는 건 오해뿐이다. 소통에서 음성을 제거한 뒤로는 계속, 더욱, 그렇게 되고 있다.
5,
인간은 시각에 의존해 진화해 왔다. 천적으로부터 빠르게 도망치고 대응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분별하고 처리하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러나 시각 정보는 인지기능을 분산시킨다. 전체를 볼 수는 있으나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음으로 부분적으로 기억한다. 즉각적 판단에는 효율적일지 모르나 지난 기억에 대해서는 선택된 정보의 한계로 왜곡된 판단을 하게 된다. 시각 정보는 관심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채집되고 집중된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 보았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넌 왜 기억력이 그 모양이냐’고 타박한다. 물론 이 왜곡은 시비와 송사의 시작이다.

그러니 속삭여라.
6,
플랫폼의 변천사를 보자면 삐삐 이후로는 음성 기능이 제거되거나 약화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인류는 편리를 선택하는 대신 외로움을 대가로 지불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쳤을까? 너무 외로워진걸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음성 기반 서비스는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온종일 라디오를 끼고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은 내내 듣고 있으니까. 눈을 감았더라도. 보고 듣는 것보다 듣기만 하는 것이 좀 더 친밀감을 강화시켜 준다.
시각 정보는 유효기간이 짧다. 시각은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한다. 반면 청각은 경로 의존성이 강하다. 익숙한 소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한번 자리를 잡은 MC, 아나운서들이 장수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듣던 목소리, 친숙한 목소리를 더 선호한다. 그것은 주파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지는 조작이 용이하지만 소리는 조작이 용이하지 않다. 주파수는 파동이라 파형이 조금만 달라져도 쉽게 변화를 인식할 수 있다. ‘너 오늘 기분이 안 좋니? 목소리가 왜 그래?’ 그래서 신념은 표정과 목소리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둘 중에는 목소리가 더 확실하다. 포커페이스라 얼굴 표정을 숨길 수는 있어도 긴장한 목소리는 떨리게 되어 있다. 미세하게라도. 막귀라도 그건 느끼게 마련이다. 무슨 얘기인가? 이 진정성의 시대 가 목소리까지 검열하려 들고 있다는 말이다. ‘본인이 한 말을 지켜야지!’ 글로 쓴 건 문맥을 제거해 조작하거나 쉼표와 마침표를 거론하며 핑계를 댈 수 있으나 말은 그렇지 않다. 어조에서 이미 감정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은 사진보다 최종적이다. 사진은 조작 여부를 가려야 하지만 말은 뭐.
7,
어제오늘 판관의 거짓말로 시끄럽다. 녹취가 나와버렸으니, 쉴드를 친다고는 하지만 힘이 빠진다. 글이었으면 좀 더 쉴드 치기가 용이했겠지. 사람들이 글을 찾아보지는 않으니. 주어가 없다는 핑계도 대보고. 그러나 음성녹취에는 귀가 쫑긋해진다. 관음증에는 시각 정보보다 청각 정보가 더 짜릿한 법이다. 음성이 제거된 포르노보다 폰섹스가 더 자극적인 것처럼.
빠른 이들은 벌써 이걸 정치에 활용하려 드는가 보다. 한국의 정치인 몇몇도 발 빠르게 <클럽하우스>에 방을 차렸다고 한다. 벌써 정치적 활용으로 인한 선거법 저촉 여부까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 라디오 연설이 아니고서야 히틀러가 어찌 철권통치를 했을까?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수많은 유튜브 방송이 라디오 진행자 하나의 영향력만 못하니 말이다. (누굴 말하는지는 알 거다) 처칠의 반격도 라디오 연설로부터였다. 그러나 그러자면 문제는 진정성이다. 목소리는 숨길 수가 없으니. 강한 영향력만큼 진정성에 기반한 강한 신념을 갖추지 못하면 역풍을 맞게 될 거다. 게다가 라이브가 아닌가? 대본에 없는 질문에 대처할 능력, 정보이해와 명확한 입장, 설득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 않으면 현장에서 난도질 당할거다. 자신 있다고? 거짓말이어도 좋으니 자신의 말을 믿어야 한다. 마음과 글은 따로 놀 수 있어도 마음과 말은 따로 놀 수 없다. 글은 고칠 수가 있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8,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법사도 이제 글이 아니라 말을 해야 할까? ‘Video Killed Radio Star’라고 하더니 정반대가 되게 생겼다. 들리는 세계의 반격이라니. 어쨌거나 비디오도 오디오도 안되는 글쟁이는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이나 할 일이지만.
에잇,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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