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인간은 잠시 대기! _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5)
2018.04.10
윤리라는 약속
윤리란 무엇입니까? 사람들 간의 약속이 아닙니까? 물론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그러니까요.. 그게 뭐냐구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그 도리, 도리가 뭐냐구요?
그건 약속입니다.
얘들아, 우리 함께 살아야 하니까, 우리 이건 꼭 지키자..
하고 서로 약속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동의하고 합의하여야 하는 겁니다. 그게 쌓이고 시간이 흘러, 도리가 되고 윤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수천 년이 지나도록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서야, 도리가 천리 같고, 윤리가 진리 같지만.. 실은 그것도 그 사회, 농경사회, 대가족 가부장제 사회 등이 시작될 때, 여러 진통을 겪으며 동의와 합의에 이르고, 그것이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착되어 윤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진리, 천리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격변하는 사회에서 윤리는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에 맞추어 우리의 도리, 우리의 약속 또한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남녀가 유별한대, 카페에서 저거저거 뭐 하는 짓입니까? 나란히 앉아서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인데, 머리카락을 상놈처럼 댕강댕강 잘라대니, 상투는 어쨌는가 말입니다. 양반이 체통 빠지게 어디를 뛰어다닌답니까? 여자가 어디 집 밖을 나다닌답니까? 겸상이 웬 말입니까? 게다가 남자가 요리에, 설거지까지..
어르신 뒷목 잡고 쓰러질 일입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기로소니, 남녀칠세부동석이거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이거늘.. 칠거의 지악이 있거늘..
세상이 말이죠. 많이 변했습니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막대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양놈의 얼굴이 뜹니다. 하이루~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서로 떠들어 댑니다. 남자와 여자가 말입니다.
순식간에 밀려든 이 변화를 도리가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도리도리 얼굴을 흔들어 대는 건, 자동차 대시보드에 매달린 인형이 아니라,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우리네 조상님들일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주말연속극을 보고 와서는 서로 이런 질문들을 해대었습니다. ‘너 중매결혼할 거야? 연애결혼할 거야?’, ‘너 분가해서 살 거야? 부모님 모시고 살 거야?’ 이거이거 지금은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너 혼자 살 거야? 결혼할 거야?’, ‘넌 대체 언제 독립할 거니?’를 묻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고, 윤리도 변합니다. 심지어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던 자연의 법칙도 바꾸어 버립니다. 중력을 거스르고, 우주는 심지어 동시에 존재한다고도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날아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 윤리는 어쩔까요? 우리 불쌍한 윤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윤리의 전면 수정
윤리의 수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헌법개정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윤리의 전폭적인 개정이 필요합니다. 남녀의 윤리관이 달라지고, 노소의 윤리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직업의 윤리가 달라지고, 사회의 윤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윤리가 바뀌니 상식이 바뀌고, 상식이 바뀌니 서로를 대하는 습관과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넋 놓고 가만있다가는, 청학동에서 내려온 정글북 소년 취급을 받습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변화하는 시대상을, 우리의 윤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는 어떻게 이 윤리관을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거야!’ 하고 고정을 해주어야, 비로소 윤리라고, 지키라고, 말할 텐데. 기존 것들은 모두 폐기처분 될 처지이고, 새로운 윤리상은 말도 못 꺼내겠습니다.
수천 년을 유지해온 농경사회, 가부장제의 윤리관이, 급격한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마구 폐기되고, 우리는 새로운 윤리관을 설정할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돈만 된다면, 가족이고, 부모고, 고향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시로, 공장으로, 회사로 달려왔습니다. 그 사이에 기존의 윤리는 간데없고, 새로운 윤리는 안갯속에 갇혀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습니다. 남들 뛰는 데 나라고 걷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윤리의 중심에 돈이 놓입니다. 돈을 중심으로 윤리가 형성됩니다. 예전 같으면 일한다고 제사 빠지는 일이 경을 칠일이었지만.. 지금은 일단 예외, 당연히 예외, 무조건 예외가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공부한다고, 명절 때 인사드리러 오지도 않는 손주들이 상전이되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매우 공손하게 일정을 여쭙고, 직접 상경하여 알현하지 않으면, 손주 꼬빼기도 보기 어려운.. 아니 그것이 예의이자 윤리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 물론 재벌 할아버지, 부자 할머니는 예외입니다. 호출도 안 했는데 상시 대기입니다. 그래서 돈이 윤리입니다.
그러다.. 그 금권에 대한 가속도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안 보이던 너와 내가 보입니다. ‘어.. 이 새끼 그동안 내 발 밟고 있었네. 야! 사과 안 해!!’, ‘어쭈, 쥐뿔도 없는 새끼가 어따대고 반말이야. 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굽니까.. 그러는 너는 누굽니까?
그러나 그러는 너가 누구냐에 따라 ‘앗 죄송합니다. 몰라뵀습니다. 꾸벅’하든가, 이판사판 경찰서부터 가자고 드는 일이 결정됩니다. 차라리 그러기만 하면 편하겠습니다. 돈과 명성에 따라 딱! 계급이, 위아래가 결정되기라도 하면, 고민할 것은 없어 편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새 시대의 윤리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 변화되는 분위기도 모르고 대갈통을 후려치는 꼰대도 있고, 별것도 아니면서 설설 기는 쫄보들이 마구 섞여 있습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니, 기준도, 잣대도 없고.. 누구를 만나도, 어디서 만나도, 일대일 다이다이를 붙어야 합니다. 아주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Would you?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의와 동의입니다. 도대체 네놈의 기준은 무엇이냐? 네놈의 윤리관은 무엇이냐? 묻고 또 맞추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기준과 네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기준들이 모두 모여, 하나하나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끝도 없는 끝장토론을 벌여야 한다 이 말입니다.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나는 농담인데, 너는 미투랍니다. 나는 상식인데, 너는 듣도 보도 못했답니다. 이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맞추어 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갈게 아니라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기준을 정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적어도 파란불은 직진, 빨간불은 스톱, 이거 하나는 건졌지 않습니까? 차량은 차도, 사람은 인도, 이거 하나는 건졌지 않습니까? 우측통행, 좌측통행은 아직도 헷갈리지만 말입니다.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한 줄 서기는 도통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좀 시끄러워야겠습니다. ‘너는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매번 물으려면 골치 좀 아파야 합니다. 그렇다고 소홀해서도 안됩니다. 어쭙잖게 펜스룰 따위를 들먹이며 도망가 봐야, 엉뚱한 데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복잡하다고, 외면하고 도망치다간, 일방통행 도로에서 혼자 역주행하는 불상사에 반드시 걸려들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지도자가 딱! 등장해서.. ‘이 새끼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 따지는 새끼는 바로 영창이야!’ 이래주면 편하겠죠? 이래주면 막 세상이 아름다워지겠죠? 그걸 바라는 겁니까? 파파 스머프가 도끼 들고 나타나, ‘아가리 닥치고 일렬종대 헤쳐모여!’ 해주길 바라는 겁니까?
그러니 21세기의 문명인, 현대사회의 문화인이 되려면.. 우리는 매번 물어야 합니다 ‘우쥬라잌섬띵투드링크?’해야 합니다. ‘닥치고 물이나 처마셔’, ’10분간 휴식, 물 마실 사람은 열외’ 이딴 명령을 받고 살지 않으려면, 매사에 ‘Would you like..’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동의해 가야 합니다. 합의해 가야 합니다.
윤리적 인간은 잠시 대기
그래서 윤리적 인간은 일단 대기해야 합니다. 변화된 사회를 인식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나타나 지팡이로 대갈통을 휘갈기며 ‘어른이 왔는데 안 일어나!’ 하고 다니다간, 미투 지팡이에 바로 응징입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구세대 윤리관을 들이대다간, 국물도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날카로운 잣대로, 눈을 게스츠레하게 떴다고 성추행범이 돼버리는 서슬 퍼런 윤리관에 맞닥뜨려야 합니다.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기억도 안 나는 사건들이 막 부활해서, 뒤통수를 마구 후려갈기는 겁니다. 동의와 합의에 게을렀던 우리 모두의 업보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거지’ 하고 반격을 개시하면, 이거야 말로 막장 개싸움이 되는 겁니다. 앞도 뒤도 안보고 팔만 휘저으며, 머리카락 끄뎅이 잡고 뒹구는 진흙탕 싸움이 되는 겁니다. 독재자! 시대의 괴물! 은 바로 이 때에 등장하는 겁니다.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단의 모든 윤리적 인간들을 잡아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버리는 것입니다. 역사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수천 년 왕조사회, 가부장 사회를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4.19, 5.18, 6.10에 촛불까지.. 수많은 댓가를 치르며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그깟 일들로 민주주의를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겨우 70년을 해보았을 뿐입니다. 민주주의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어설픈 게 당연합니다. 돈만 버느라 다들 미쳤었을 뿐입니다. 남들만큼 살라고 남들 쫓다 그랬을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정신 놓고 달린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고, 당신 조상이나 내 조상이나 매한가지니, 그러니 여기 잠시 멈춰서서, 누가 다쳤는지, 누가 희생했는지.. 사과도 하고 상처도 치료하고, 필요하면 보상도 하고, 위로도 하고 해서.. 마음을 풀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윤리를, 도리를, 논해야 할지.. 변화하는 세상 속 윤리관을 다시, 새로, 정리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서로 발목 잡아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그러려면 일단, 너와 내가 가진 윤리관은 모두 폐기 처분하고, 다시 하나하나 묻고 또 동의를 얻읍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따져 묻지 말고, 자신의 윤리관만 강요하지 말고, 일단 우리는, 매우 정중하게, ‘Would you?’, ‘넌 어때?’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말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엄마아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도리도리 곤지곤지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시작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변화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릅니다. 그래서 블록체인.. 합의의 알고리즘.. 합의의 작업 증명 기술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 급변하는 사회의 의사결정, 서로 다른 윤리관의 소통을 위해, 이 블록체인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습니까? 아무리 파파 스머프라 할지라도, 저 혼자 70억 인구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스머프 마을이라 할지라도, 이 빠른 변화 속도로는 개판이 되고 말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블록체인이 필요합니다.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를 실현시켜줄지도 모를.. 적어도 변화하는 사회의 윤리관을, 합의 증명을 통해 빠르게 도출해 주고,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줄 이 신기술이 필요합니다.
민民이 주인主人이 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동업자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실행하기 이전에 꼼꼼하게 계약 조항을 따져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주식회사의 주주로서 우리는, 계약서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경영인을 선임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라면 보스 같은 전문경영인을, 신사업이 필요하다면 탁월한 리더 전문경영인을, 보수적으로 회사를 안정시켜야겠다면 관리에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주입니다. 우리는 주인입니다. 서로 간에는 예의를 지켜야 하고, 주주로서의 윤리를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주로서의 유일한 윤리는 서로 묻는 것입니다. ‘Would you?’, ‘넌 어떻게 생각해?’ 묻지 않는 자, 민주주의 사회의 주주가,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지멋대로 블랙리스트를 막 써대는 인간은 CEO는커녕, 주주가 될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만 부르지 말고.. 수천 년 이래, 처음 해보는 민주공화국의 주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부터 다시 밀린 숙제를 해가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윤리관을 합의해 가야 합니다.
합의적 인간이 먼저
그 전에 먼저 지팡이부터 내려놓읍시다. 대쪽같은 자기만의 윤리관을 마구 들이대지 말고, 일단 분노를 가라앉히고 대화를 시작합시다. 변화해 온 세계를 되짚어 보고,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누구의 인식이 뒤떨어져 있는지.. 차근차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또 받아들여 봅시다. 간격이 좁혀지지 않거든, 어쨌든 일단 올 스톱입니다. 좁은 골목에서 서로 맞닥뜨렸으니,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양보하더라도, 앞으로는 이 골목길 어디로 일방통행을 낼지, 아니면 도로를 확장할지, 논의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닥치고 비켜!’ 해봐야 지루한 대치국면만 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다 지쳐 나동그라지는 겁니다. 될 대로 돼버리는 겁니다.
합리적 인간, 아닙니다. 합의적 인간입니다. 합리에 대한 정의도 모두 제각각이니, 합의적 인간이 우선입니다. 동의한 윤리에 대해, 합의한 도리에 대해, 합리를 따질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정의에 대한 합의와 동의가 있어야, 합리적인지 아닌지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인간은 당분간 잠시 대기. 일단은 먼저 합의적 인간이 됩시다. 매사에 합의적, 동의적 태도를 유지합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이 블록체인 위에서 최적화된 도리, 공감대가 형성된 진짜 윤리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시스템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미투도, 펜스룰도, 꼰대도, 양아치도.. 모두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도 다시, 동방의 예의지국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지도자를 고용할지 말지, 어떤 지도자를 고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민주주의, 좀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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