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해방전쟁과 스팀전쟁(전반전前反戰) _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2)

by mmerlin

[멀린’s 100] 2018.04.05 l M.멀린  

[전반전前反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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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리뷰를 보다가, 어떤 분이 <리니즈2>의 ‘바츠해방전쟁’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츠해방전쟁..

2004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 2년여간 벌어진, 인류 최초의? 가상현실 대전. 저도 이 전쟁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겜알못임에도 불구하고 저 전쟁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전개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떠올려 보니, 아.. 이것은 마치 곧 닥쳐올, 아니 지금 스티밋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상화폐전쟁의 교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 민족입니꽈~ 인류가 가상현실에 진입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가상현실의 전쟁 시나리오, 아니 참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민족이 아닙니꽈~ (국뽕 한 대 맞고 시작합시다.)

이 마법사는 갑자기 흥분되어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잊고 있었던 10년 전 그 전쟁사를 인터넷에서 찾아,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흥망성쇠, 인류사의 돌고도는 전쟁의 기승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가상현실세계의 징비록이자 난중일기. 혼자 알고 끝낼 일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 잊고 말아버릴 전쟁사가 아닙니다. 여기 어쩌면 가상세계 시스템의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같이 떠나봅시다. 함께 훑어 내려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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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의 탄생

2004년.. 때는 바야흐로, 2002년 붉은 악마의 열풍에 힘입어,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한지 1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리니지2>는 전작 <리니지1>과 달리 3D로 제작되었습니다. 3D MMORPG 게임의 개발은 리니지의 제작사인 엔씨소프트로서는 모험이었습니다. 안전하게 2D로 가자는 내부의 저항도 있었지만, 게임업계의 신화적 인물 송재경에 이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배재현 PD는 이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리니지2>의 경쟁사는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 블리자드.. 시작부터 글로벌한 경쟁이 예상되는 그림이었습니다. 블리자드의 야심찬 신작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와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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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세계관과 엄청난 콘텐츠로 무장한 <와우>에 대응하기 위한 <리니지2>의 전략은 개방형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와우~ 이게 진짜 와우네요. 개방형 스토리텔링이라니요. 그러니까 블리자드의 <와우>가 개발자가 정해 놓은 게임 시나리오 안에서 레벨업을 해가는 게임이라면, <리니지2>는 개발자가 규칙만 정해주고, 유저들이 알아서 게임을 진행해가는 개방형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서양 사람들이 보면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가 난장판에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문화가 한국 게임에서도 마찬가지 코드로 적용되는 것 같다”며 “리니지2는 자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제공하지 않는, 사용자들이 시나리오를 만드는 세계를 꿈꾸며 개발한 게임이고, 와우는 시스템적으로 멋진 게임 경험을 심어줄 수 있는 쪽으로 발전된 게임”이라며 두 게임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_ [엔씨소프트 3부작. 온라인게임 혁명 ‘리니지2와 바츠 해방전쟁’]

시나리오를 개발자가 정하지 않고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 이건 마치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이 정면으로 승부를 건 셈이네요.

2003년 7월, 드디어 <리니지2>가 오픈되었습니다. 오픈되자마자 <리니지2>는 대박이었습니다. 동시 접속자가 5만 5천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초창기의 유저들 중에는, 전작 <리니지1>에서 억압받던 피지배 계층들이 대거 이주했다고 합니다. 타 블로그에서 블라인드 처리되고, 블랙 먹은 블로거들이 스티밋에 대거 이주하듯 말이죠.

2008년 그레시아 업데이트 때 최대 동접자 15만 명을 돌파했다. <리니지1>이 이루지 못했던 해외 수출 쪽도 활발했다. 2004년 미국을 시작으로 대만, 중국, 일본, 미국, 유럽에 깃발을 꽂았다. <리니지2>는 2011년 1분기 전 세계 해외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1>에 이어 <리니지2>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다. _ [엔씨소프트 3부작. 온라인게임 혁명 ‘리니지2와 바츠 해방전쟁’]

불타오르기 시작한 <리니지2>.. 유저들이 만들어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현장은 마침내 거대한 전쟁의 서막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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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해방전쟁의 서막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벌어진, 연인원 20만명이 참여했다는, 온라인 게임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다는 바츠해방전쟁은, ‘DK혈맹’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 혈맹의 무자비한 독재로부터 시작됩니다.

‘Dragon Knight (이하 DK)혈맹’은 <리니지1>에서부터 독재로 악명이 높았던 혈맹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리니지2>의 서버가 오픈되자마자, ‘제네시스혈맹’과 ‘신의 기사단’이라는 타혈맹들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며 서버를 장악해 버렸습니다.

서버를 장악한 ‘DK혈맹’은, 상점에서 거래되는 아이템의 세율을 올려, 저레벨의 유저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사냥터에서 오토플레이를 하거나,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등 독재정치를 감행합니다.

경제적으로, ‘DK혈맹’은 2004년 2월, 상점에서 거래되는 아이템의 세율을 올려 저레벨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었다. 고레벨 아이템은 상점에서 구입할 수 없어 세금 인상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정령탄처럼 저레벨 유저에게 필요한 물품은 가격이 올라, 저레벨 사용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다. 이는 세금을 매기는 지배 혈맹을 타도하자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빌미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DK혈맹’은 독재 정치를 펼침으로써 다른 혈맹을 탄압하였다. 본래 ‘DK혈맹’은 <리니지1>에서도 다른 플레이어의 접근을 막는 ‘통제령’을 통해 사냥터를 독점하였다. 그러나 <리니지2>로 넘어온 뒤 ‘제네시스’, ‘신의 기사단’과 동맹을 한 뒤, ‘통제령’은 다른 게이머를 PK로 무차별 학살하는 ‘척살령’으로 바뀌었고, 사냥터에서는 노골적으로 ‘오토 플레이’라는 불법을 자행하였다. 학살의 대상은 ‘DK혈맹’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게이머도 해당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DK혈맹’은 하루 종일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었고, 이들을 막을 제도적 장치와 혈맹은 하나도 없었다. 이 같은 독재 체제는 세율 인상과 더불어 일반 유저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_ [위키백과]

어.. 쫌 많이 익숙합니다. 스티밋의 셀봇, 보팅봇, 다운보팅.. 뭐 비슷하게 저기도 막 있었네요.

바츠서버를 장악한 ‘DK혈맹’은, 다른 유저들의 플레이를 마구 방해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서버 내의 이익도 독차지해버렸습니다. 이를 막을 만한 대항세력도 없고, 서버에서의 제재도 없었기 때문에 일반 유저들의 불만이 한없이 커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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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DK혈맹’의 독재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선 50명의 정의로운 유저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붉은혁명혈맹’. 이들은 ‘DK혈맹’의 독재에 대항하여 바츠 서버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로, ‘DK혈맹’에 대한 대항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2004년 5월 9일, ‘DK혈맹’의 소유였던 기란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세율을 0%로 선언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뿐.. 50명의 유저들로 기란성을 지켜내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열을 정비한 ‘DK혈맹’의 탈환전에 속수무책으로 밀려 2주 만에 다시 성을 빼앗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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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혈맹의 전열
 

그러나 이러한 ‘붉은혁명혈맹’의 분투에 도전을 받은 바츠 서버 내 연약한 유저들은, ‘DK혈맹’에 대항할 ‘연합군’을 조직하게 됩니다. ‘더킹혈맹’, ‘해리포터혈맹’ 등의 군소 길드와 소식을 듣고 모여든 저레벨 유저들의 연합군은, 오로지 쪽수로 ‘DK혈맹’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전투력과 레벨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연합군’은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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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단의 등장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다른 유저들, 심지어 소식을 듣고 구경하던 타서버의 유저들이 속속들이 연합군에 가담하게 되고.. 마침내 조선시대 동학 농민군처럼 대규모 민간 연합군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이들은 기존 서버 간의 레벨 연동이 되지 않아, 1레벨의 캐릭터로 전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내복만 걸친 것 같다고 해서 ‘내복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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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연합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맹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_ <리니지2> 자유게시판에 오른 ‘내복단’ 궐기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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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현장입니다. 내복만 입은 의용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맨몸으로 ‘DK혈맹’의 거대한 군단을 막아서는 이 장면은, 마치 뉴비들이 자신의 명성도, 재산상의 피해를 감수하고, 맨몸으로 고래들과의 다운보팅 대전에 참여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내복단’은 인해전술로써 ‘DK혈맹’을 압박했다. 이들은 고레벨 사냥터인 용던으로 수십 명씩 몰려가 진을 쳤다. 그 뒤 DK 길드의 파티가 출현하면 떼를 지어 공격했다. 공격력과 레벨의 차이가 컸기에 ‘내복단’은 ‘DK혈맹’을 공격할 때, 체력이 가장 약한 힐러를 먼저 집중 공격하여 쓰러트린 뒤, 나머지 전투 부대를 굴복시키는 전법을 써서 승리하였다. 인해전술로 상대 캐릭터에게 버그를 유발하면서, 자신들은 머리 위에 ‘파티원 구함’이라는 글씨를 띄움으로써 아군을 식별하기도 했다. 또한 채팅창 글자 제한 등 의사소통의 한계나, 작전이 가능한 인원은 사실상 9명이 최대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복단’은 제한된 수단으로 수백명에게 작전을 지휘하고 명을 받았다. 엔씨소프트는 ‘내복단’이 최대 800명까지 동시에 활동했다고 말했다. ‘내복단’의 활약은 6월 14일~19일에 두드러졌으며, 7월에는 ‘DK혈맹’의 군주인 아키러스가 ‘내복단’에게 패배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_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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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혈맹’은 노련하게 적을 둘러싼 학익진 전술과 압도적인 전력으로 연합군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내복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자라는 전력을 지략으로 맞서, 마침내 아덴성의 혈투에서 적의 궁수 부대를 전멸시킴으로써 아덴성을 탈환하고 맙니다. 이 소식을 들은 ‘DK혈맹’은 허겁지겁 아덴성으로 돌아오지만, 퇴로를 막아선 ‘내복단’의 인해전술과 전사한 ‘내복단’의 시체가 진입을 가로막아 아덴성을 재탈환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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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단’은 ‘용의 계곡’에서 인간 바리케이트를 치고 거대 혈맹을 상대로 시위를 계속했다. 당시 바츠 서버를 주름잡았던 ‘DK혈맹’은 내복단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른 게임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온라인 시민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이 사건은 온라인 게임을 하던 많은 유저들로부터, 게임 내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최초이자, 최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바츠 이야기는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다. 많은 매체에서 ‘사이버 세계의 시민혁명’이라 보도했으며, 학자들도 이 사건을 표본 삼아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연구했다. _ [엔씨소프트 3부작. 온라인게임 혁명 ‘리니지2와 바츠 해방전쟁’]

이 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포되었고, 전국의 PC방에서는 이 대전에 참여했던 ‘내복단’ 유저들의 감격의 환호와 눈물이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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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봉기의 혁명은 언제나 감동스럽습니다. 공포의 외인 구단의 9회말 역전 만루홈런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습니다. 약자의 자기극복 스토리. 게다가 그게 루저 그룹의 기득권 전복 스토리까지 확장된다면 이만큼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은 없습니다. 심지어 관객 본인이 기득권 재벌 권력자라 할지라도 말이죠.

바츠해방전쟁의 ‘내복단’ 혁명 스토리 텔링은 이후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한국의 MMORPG <리니지2>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다.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했던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을 출현시켰다 _ 게임학 석학 에스펜 아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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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전복의 스토리텔링은 2002년의 에너지로부터 기인했는지 모릅니다. 4강의 역사를 쓴 월드컵 붉은악마 그리고 온갖 장애물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된 고졸 노무현의 신화.. 승리의 기억은 개개인에게 각인되고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승리의 방정식은 <리니지2>의 가상현실 세계에서도 또 한 번 재현되었습니다.

거대 독재세력에 맞서 민중들만의 힘으로, 하나로 연합된 에너지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이 엄청난 스토리텔링은,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저력이었으며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우주는, 얻은 것을 모조리 빼앗아 버립니다.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에게 역사는,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교훈을 안겨 줍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전쟁은 이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승리의 감격 이후에 찾아오는 갈등. 거대담론이라는 대의에, 어쩔 수 없이 감춰지고 미뤄져 있던 개별 혈맹, 소수 집단, 개개인의 이해득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결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관계로부터 승리를 지켜 낼 수 있어야, 진짜 승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개방형 스토리텔링 시스템이었던 <리니지2>의 바츠 서버. 그렇기에 가능했던 바츠 해방전쟁은, 그것이 개방형이었기에 작가의 일방적인 해피엔딩 스토리로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반전이 ‘내복단’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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