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 많던 ‘게이코’ 상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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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연인, ‘게이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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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는 게이샤를 ‘게이코’상이라고 부릅니다. 견습생은 ‘마이코’상이라고 부르지요. 현재 교토에는 196명의 ‘게이코’상과 77명의 ‘마이코’상이 있다고 합니다. 전성기였던 에도 시대에는 ‘게이코’ 상과 ‘마이코’상이 1,000여 명 이상 활동했다고 하네요. ‘게이코’ 상들이 공연을 하고 술자리 시중을 드는 곳을 ‘오차야[お茶屋]’ 라고 하는데, 에도 시대에는 교토의 ‘오차야’가 500여 곳에 달했고, 문인이나 정치가 등이 주로 드나드는 문화, 정치의 심장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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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드북에서는 ‘게이코’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군요.

 

‘게이코’는 무용이나 음악 등으로 연회 자리에서 흥을 돋우며 손님을 접대하는 여성을 말한다. 도쿄에서는 ‘게이샤’, 교토에서는 ‘게이코’ 상이라 부른다. ‘게이코’는 사랑은 해도 性은 팔지 않는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춤과 노래, 악기 연주, 매너와 화장법, 다도, 서예는 기본이며 최근에는 영어 회화 실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화술과 교양이다. 일본의 전통문화부터 정, 재계 핫이슈까지 두루두루 폭넓은 교양을 쌓아, 남성 고객들의 말동무가 되어 마음을 달래주어야 노련한 ‘게이코’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이 말한 대화 내용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아야 하는 특유의 침묵은 역시 ‘게이코’가 평생 지켜야 할 숙명이다. [1]

 

‘사랑은 해도 性은 팔지 않는다.’, ‘말동무가 되어 마음을 달래주어야..’ 인상적이네요. 몸이 아닌 마음을 달래주는 존재.. 천사가 아닌가요? 천사가 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마치 아이돌의 훈련과정을 보는 듯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마이코’로 입문하고 스무 살이 되면 ‘게이코’로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 ‘마이코’를 수련시켜 ‘게이코’로 데뷔시키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모노만 해도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니 한 명의 ‘마이코’를 ‘게이코’로 데뷔시키기까지 수억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 오키야라고 부르는 ‘마이코’들의 숙소에서 수련생들과 한방에서 생활해야 하며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자리 잡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데, 가체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정수리가 벗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마이코’들은 이를 ‘영광의 상처’라 부르는데, ‘게이코’로 데뷔할 즈음이면 영광의 상처도 사라진다고 한다. 옛날에는 한겨울에 문 밖으로 쫓아내 손가락에 피가 날 때까지 사미센 연주를 시켰다는 등의 혹독한 일화도 많다. ‘마이코’는 ‘게이코’가 되고 나서도 가냘픈 체구에 18킬로그램이나 되는 가체와 너무 무거워 걷기조차 힘든 공포의 기모노를 차려 입고 춤을 춰야 하며,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나무 베개만 써야 한다. 본명은 사라지고 ‘게이코’로서의 이름만 남으며 신상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이렇게 데뷔한 ‘게이코’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며, 돈만 많다고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게이코’의 고객들은 주로 일본 정, 재계의 실력자들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평균 한 사람당 200만 원이 넘는다) ‘오차야’ 출입은 일본에서는 출세한 남자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메이지 시대에는 오유키라는 ‘게이코’가 미국의 재벌 조지 모건과 결혼하여 ‘모건의 유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 나츠메 소세키나 다자키 준이치로 등의 문학계 인사와 교류를 하며 ‘문학 ‘게이코’’라는 별명을 가진 ‘게이코’도 있었다.  대부분의 오차야에서는 소개한 이가 없으면 오차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처음 온 손님은 사양합니다.’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이러한 풍습은 단골손님과의 깊은 신뢰 관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손님 역시 다니는 오차야는 한 곳만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신용이 생명인 하나마치에서 가게를 바꾸는 것은 가게를 배신하는 의미와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한 ‘게이코’의 춤과 노래에 매료된 영국 찰스 왕자는 그녀의 부채에 사인을 해 주었다. 그러나 그 ‘게이코’는 왕자가 신성한 부채를 더렵혔다며 그가 떠나자마자 부채를 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게이코’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는데 ‘단나상’(旦那さん)이라는 존재입니다. 일종의 스폰서로, ‘마이코’는 평생 주군으로 섬기게 되는 ‘단나상’이 정해짐으로써 ‘게이코’로 데뷔하게 됩니다. 머리를 올린다고 하며 이 의식을 ‘미즈아게’라고 합니다. ‘단나상’은 일종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로 ‘게이코’상에게 생활비, 의상비 등등 경제적 지원을 하지만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건전한 관계가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사랑은 해도 性은 팔지 않는다.

 

한국에도 이런 기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황진이. 황진이도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서경덕을 흠모하며 그의 제자가 되었지요.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이라 불리던 황진이에게 넘어가지 않았던 유일한 남자. 주군을 찾는 여자들에게 ‘미동 없음’이란 최고의 마력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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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경덕과 황진이의 사랑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시인 ‘백석’과 기생 ‘진향’의 사랑이 있습니다. 16세에 기생이 된 진향은 문예에 능하여 잡지 ‘삼천리’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조선어학회 신윤국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백석 시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으나 기생이라는 신분을 못마땅해한 백석 집안의 반대로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됩니다. ‘백석’은 ‘자야’(子夜)에게 (백석이 부르던 진향의 애칭으로 이백의「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옴) 만주로 함께 도망치자고 했으나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거절합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두 사람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평생을 이별하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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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향은 오매불망 백석을 기다리며 요정을 열어 일로써 마음을 채웠는데, 그 요정이 유명한 ‘대원각’입니다.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은 말년에 진향이 법정스님에게 헌정하여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습니다. 1997년, 진향은 ‘백석 문학상’을 제정하고 ‘백석,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회고록을 통해 백석을 향한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내 나이 어언 일흔셋 / 함께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은 내 생애의 전부 / 내 가슴속의 그리움은 / 쏟으려 해도 쏟기지 않는 물병 / 서러움만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2년 뒤, 진향은 백석을 그리워하다 영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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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군이 될 것인가? 魔(마)나님의 남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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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마나님들에게 주군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건 돈 잘 벌어 오는 인간 ATM, 애 잘 보는 남자 보모, 시장 잘 따라다니고 짐 잘 들며 재활용 쓰레기 잘 버리는 공짜 가사도우미, 알아서 먼저 잘 자고 잘 깨서 혼자 아침 먹고 출근하는 안 귀찮은 하숙생, 그래서 마나님들에게 필요한 건 남편뿐..

 

*남편 (男便) : 男 사내 남, 便 편할 편, 똥오줌 변 1.편하다(便–), 아첨하다(阿諂–), 쉬다, 휴식하다(休息–), 익히다, 익다, 말 잘하다, 소식(消息) a.똥오줌 (변), 오줌을 누다 (변), 곧 (변), 문득 (변)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편한 남자, 내 기분 맞춰주는 아첨 잘 하는 남자, 쉴 수 있도록 시중 잘 드는 남자, 가사일도 잘 배우고 익혀 뭐든 잘 하는 남자, 자상하고 말 솜씨 좋은 남자. 아니면 그냥 똥, 오줌 같은 존재일 뿐. 그리고 마나님의 마음은 왕 같은 나쁜 남자에게로, 아니 신성한 욘사마, 뵨사마, 수현사마에게로.. 그들은 사마(神), 신적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자상한 나쁜 남자, 까칠하고 나쁜데 나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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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들의 주군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찌도 현실에는 없는 허망한 神들만이 그녀들의 가슴을 흔들고 있는 걸까요? 時 한 수로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영웅호걸들은 다 어디로 가고 드라마 속,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들만 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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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자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착한 노예로 남거나, 초식남으로 남은 생을 풀 뜯으며 살거나.. 시대와 역사를 논하며 풍류를 즐기던 주군들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트를 끄는 절대신공을 발휘하느라 집 밖으로 나오질 못하게 되었습니다. 광고 속 4인 가족의 단란함을 연기하느라 베란다에서 숨어 담배 피우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판타지, (사마)들에게 밀린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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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도 원하는 현실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누구도 이렇게 나약해진 남성을 원하지 않습니다.이렇게 드세진 여성을 원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천하를 호령하는 주군이 되고 싶고, 여자는 그의 사랑을 받는 ‘자야’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석의 5명의 여자 중 한 명이었던 진향이 저렇게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없습니다. 재벌과 정치인의 아내로 다른 여자의 아이를 거두어 키우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까칠하고 나쁜 남자, ‘도 매니저’가[2] 인기 있을 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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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카리스마와 진정성으로 수많은 여인들이 기꺼이 무릎 꿇고 싶어 하는 주군과 무한한 존경과 우러 나오는 섬김으로 스스로 기꺼이 무릎 꿇는 여인. 그 둘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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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음.. 남자와 여자가 모두 원하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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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하고 싶은 욕망, 지배당하고 싶은 열망.. 그래서 性은, 사랑의 행위는, 무릎 꿇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상위와 후배위, ‘커닐링구스’와 ‘펠라치오’, 심지어 페미니스트적 체위라는 여성 상위에서조차 무릎 꿇음을 기본자세로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천하를 호령할 꿈을 꾸며 애국가를 부르고 여자는 1절, 2절, 3절, 4절이 넘어갈수록 환희에 넘칩니다. 육체의 환희를 넘어 주군의 그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한 존재적 환희와 영적 기쁨의 대폭발입니다. 그래서 ‘도돌이, 도돌이’를 외칩니다. 남자가 지배하나 여자가 만족하는 性은 남자와 여자의 존재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자는 침대 위에서만큼은 자신을 지배해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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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복종과 지배적 섬김. 그것은 이제 남자와 여자 모두의 판타지가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판타지가 되었기에 변태적 성행위에서나 충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현대의 남자들이 카리스마와 힘을 잃어버렸고 덕분에 아마조네스가 되어 버린 현대의 여자들은 여성으로서의 기쁨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 어찌할까요. 이 안타까운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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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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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입니다. 여성이 경제의 주체로 등장하게 된 것. 여성이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 유사 이래로, 인간이 농경사회를 시작한 이래로 이런 시절은 처음입니다. 여자가 경제권을 스스로 갖게 된 시대가 말입니다. 아니 태초에 에덴에서조차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었습니다. 헤게모니를 쥔 여인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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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자들이 경제권을 가지게 된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폭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경제권 회복은 구원의 횃불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그녀들은 헤게모니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들은 그저 남자들이 하던 그대로를 따라 할 뿐입니다. 남자처럼 남자를 부리고 남자처럼 남자를 무시합니다. 그녀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망각한 채, 남자 같은 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자 역할을 해 줄 남자들을 찾습니다. 여자처럼 가정을 돌보고 여자처럼 곰살 맞게 구는(자상함으로 포장된) 여자 같은 남자들을 아내 같은 남편으로 맞습니다. 그리고는 편안하게 부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를 남편(便:똥오줌) 취급합니다. 자신들은 주군 행세를 하며 남자에게는 ‘게이코’ 상처럼 굴기를 요구합니다.

 

사랑은 해도 성을 요구해선 안 된다. 말동무가 되어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

 

그랬으면, 돈은 당신들이 벌어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주군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진정성은 누구한테 팔아먹고 돈벌이까지 시키는 걸까요? ‘단나상’이 되고 싶으면 스폰서 역할은 확실히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아이들을 볼모로 앵벌이 짓까지 강요하는 건 너무한 일입니다.

 

 “아빠! 힘내세요더 벌 수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더 벌어오세요.”

 

이래서는 누구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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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용기 있는 도 매니저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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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은 그것이 아닙니다. 주군으로서의 남자의 역할과 사랑 받는 여자의 권리를 이렇게 함부로 포기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본성이 아니라면, 남자 같은 여자에게 나쁜 남자가 절대 로망이 될 리 없습니다. 성질 드러운 ‘도 매니저’가 그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습니다. 남자에게 뜨거운 밤을 요구해서도 안되고 11분이 아니라, 11초에도 ‘좋았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이 이렇게 불합리하니, 남자 같은 여자들과 여자 같은 남자들이 ‘썸’ 만 타려고 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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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있습니까? 어떻게 여자는 여인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고 남자는 주군으로 다시 태어날까요? 서양의 주군이 검 쓰는 기사였다면 동양의 주군은 時 쓰는 시인이었습니다. 서양의 여자들은 몸 쓰는 글래디에이터에 열광한 반면 동양의 여인들은 말없는 영혼의 권력자들을 흠모했습니다. 황진이에게는 서경덕이 있었고 진향에게는 백석이 있었듯이 그들은 몸이 아닌 時 한 수로도 여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남자들이 ‘몸 짱’이 아니라 ‘카리스마 짱’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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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러면 그러러면, 용기 있는 남자들이 먼저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여인들이 아마조네스가 되어버린 지구란 지옥을 떠나, 남자로서의 인생을 선택한 고향의 그 별로 다시 돌아갈 꿈을 꾸어야 합니다.설거지도 할 수 있지만 설거지를 하러 남자로 태어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아이 먹이느라 찬밥 신세 되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나마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욕만 먹으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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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러면 이 이상한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400년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남자로서의 자신을 각성해 내야 할 것입니다. 죽을 고비도 넘겨 보고, 전쟁 같은 현실과 군대 같은 일상을 벗어나, ‘톰 크루즈’처럼 모험하고, ‘맥가이버’처럼 탈출하며, ‘이소룡’처럼 싸우고 ‘록키’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 봐야 할 거 아닙니까. 남자에게 필요한 건 ‘의~리’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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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러면, 여자들은 다시 여인들이 되어 줄 것입니다. 남자같이 남자를 부리던 ‘천송이’가[3] 그랬던 것처럼 지구 끝, 별나라까지라도 그대를 쫓을 것이며 예고 없이 사라져도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입니다.물론 그렇게 강력해진 주군의 선택을 받으려면 여자들도 ‘마이코’ 상처럼 자신을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합니다. 그녀들은 더 이상 남자에게 기생(寄生) 하지 않은 채 남자들의 기를 북돋워 주는 진정한 기생(氣生)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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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세상에 그런 남자 없고 그런 여자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돈 많은 상대만 찾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돈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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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택권은 남자에게로 ‘단나상’에게로 돌아갑니다. 착한 노예로 남은 인생을 버텨낼지, 용기 있는 도 매니저로 변신할지는 그들의 선택입니다. 쇼파 벌레, TV 벌레, 술 벌레, 코골이 벌레, 버러지 취급을 받으며 전동차 컨베이어 벨트를 왔다 갔다하는 인생을 멈추고 분연히 고치 같은 집을 박차고 나와 병만 족장이 기다리는 진짜 남자들의 정글 속으로 인생을 던질 수 있다면, 다시 주군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 ‘단나상’을 사랑하는 여인은 요정 같은 사원을 짓고 언제까지라도 주군을 기다릴 것입니다. 오직 주군의 가슴 떨리는 時 한 수를 듣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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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역설적이게도 평생 주군을 찾아다니다 가슴 아픈 생을 마감한 ‘마츠코의 일생’이 생각나네요 ‘게이코’ 상들이 사라져 버린 교토의 기온 거리에서 말입니다.

 

[4]

 

 

 

 

2014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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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


[1] 조경자, 『때때로 교토』, 상상출판
[2]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
[3]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자 주인공
[4]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2006년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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